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 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원장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 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 원장

‘압축 성장’으로 표현되는 한국의 현대 경제사를 보면 자부심이 넘치지만 아찔함이 가득했던 경제위기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태생적으로 해외 의존도가 높았던 우리 경제는 잊을 만하면 찾아오는 글로벌 경제위기로 절망했던 기억이 생생하지만, 그때마다 불가능해 보이는 것에 대한 도전으로 연결되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도약의 디딤돌이 되었다.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이라는 구름이 짙은 상황에서 과거의 글로벌 경제위기 극복 사례를 조망하여 지혜를 찾는 것은 더없이 값있어 보인다. 반 토막 국토와 비좁은 내수 시장으로 해외 시장에서 번영의 해법을 찾아야 하는 것이 숙명이기 때문이다.

지난해 7월 전미경제연구소(NBER)는 보고서를 통해 1800년대 이후 최근까지 약 200년 동안 42건에 달하는 글로벌 차원의 경제위기가 있었다는 흥미로운 자료를 내놓았다. 1800년대에 27건, 1900년대에는 15건이 사이클을 그리며 침체의 늪으로 세계 경제를 내던졌다면서 경제위기 건수를 구체화했다. NBER은 지속 기간이 1년 이상이면서 국내총생산(GDP)의 감소율이나 실업률이 10% 이상인 경우로 경제위기를 정의하였다. 이런 위기는 우리에게 치솟는 유가와 급증한 실업자 그리고 국제통화기금(IMF) 구제금융으로 경제 주권을 넘겨주는 등 뼈아픈 상처로 다가온 바 있다.


글로벌 경제위기 역사의 교훈

글로벌 차원에서 가장 길고 심각했던 경제위기는 대공황으로, 1929년에 시작하여 1933년까지 계속된 것으로 정리된다. 이 위기는 속칭 ‘검은 목요일’이라 불리며 주가 폭락이 도화선이 되었다. 원인에 대한 진단은 다양하지만 과잉 설비에 따른 상품의 공급 확대와 통화 긴축에 따른 주식시장 위기가 겹친 것으로 해석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글로벌 차원에서 6000여 개 은행이 파산하여 엄청난 예금이 사라졌으며, 미국 GDP는 반 토막이 날 정도로 충격이 지대하였다. 공공 분야 지출의 확대에도 불구하고 1932년에는 미국 실업률이 25%까지 치솟았다. 전체 통화량을 묶어 두는 데 일조했던 미국에서 금본위제가 폐지되고 개신교 세력이 주도해 1920년에 제정한 금주법도 소비를 진작하고 주세로 재정을 튼튼하게 할 수 있다는 논리가 힘을 얻으면서 역사의 뒤안길로 사라졌다.

경제 교과서에 잘 등장하지 않지만 1937년과 1945년의 불황도 그 파장이 적지 않았다. 대공황의 터널을 막 빠져나온 상황에서 미국 정부는 균형 재정을 이유로 씀씀이를 줄여 GDP 감소율과 실업률이 각각 20% 전후를 넘나들었다. 인플레이션보다 경제 성장에 무게를 둔 정책이 힘을 얻으면서 다행스럽게 위기 발생 다음 해인 1939년에 마무리되었다. 제1차 세계대전 후에 전역한 군장병들이 대거 민간 부문에 투입되면서 조직화(노동조합)를 통한 연대로 일자리 안정과 복지 확대에 나서는 계기가 되었다. 노동자가 단결권을 행사하여 최저임금을 급속히 올리면서도 완전고용 지향이라는 정책적 이슈를 주도하였다. 더불어 주택 지원과 사회 보장 등 복지 강화도 얻어내면서 ‘노조를 위한 경제위기’였다는 닉네임도 획득하였다.

경기침체를 넘어 ‘오일쇼크’라는 자극적인 용어로 회자되는 석유파동은 1970년대 초반과 1980년대 초에 두 번에 걸쳐 글로벌 경제계를 강타하였다. 모든 산업의 동력원이었던 석유 가격이 중동전쟁으로 네 배 이상 폭등하자 1970년대 초반 닉슨 행정부는 석유 절약에 전력을 경주하였다. 원자재 가격의 상승으로 물가 상승과 마이너스 성장이 공존하는 스태그플레이션이라는 생소한 용어가 이 시기에 처음으로 등장하였다. 처방도 복잡하여 한편에서는 통화를 풀어 경기를 진작(소비 증대)시키고 다른 한편에서는 소비 억제(석유 절약)에 나섰다.

2차 오일쇼크 때에는 미국의 실업률이 두 자릿수에 진입하면서 물가 상승이 극에 달했다. 이를 치료하기 위해 은행의 금리가 20%를 웃도는 현상이 일상화되었다. 당시 레이건 행정부는 실업률을 낮추기 위해 정부 재정을 푸는 정책에서 물가 안정을 위해 돈을 조이는 방향으로 정책의 일대 전환을 도모하였다. 특히 기업의 생산량 확대가 국가 경쟁력 제고는 물론 경제 체질 강화를 위해 절실하다고 보고 세금 감면 정책을 골자로 한 공급 주도 경제학이라는 새로운 조류를 만들어 내었다. 소위 레이거노믹스(로널드 레이건 전 미 대통령의 경제 정책)로 명명된 이 이론은 감세를 통해 민간(소비)의 활동을 진작시키면 기업도 살고 결국 선순환을 통해 세수도 늘어난다는 논리다.

2007년에 시작된 글로벌 금융위기는 자산 버블론과 밀접하게 관련돼 있다. 금융 및 부동산 시장이 실물경기와 달리 호황을 구가하는 가운데 아프가니스탄과 이라크전쟁에 따른 재정 적자 감축을 위해 갑자기 금리를 올리자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면서 이를 담보로 돈을 빌려준 금융 회사에 부메랑이 날아들었다. 주택을 담보로 신용 상태가 좋지 않은 고객에게 대출이 몰린 상황에서 담보 가치가 하락하자 금융회사의 손실은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그 태풍은 거의 모든 나라를 휩쓸고 지나갔다. 이에 따라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가 발족되면서 국가 간의 협력 분위기가 만들어지고 외환 부족에 대비하기 위한 통화 스와프가 보편화하는 전례 없는 글로벌 협력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코로나19,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 압박

지난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초래된 글로벌 위기는 현재 진행 중이다. 거의 모든 나라가 돈 풀기 경주에 나선 것처럼 재정 확대가 일상화하고 있다. 경제위기를 대하는 관점에서는 다시 1930년대의 대공황으로 돌아간 느낌이다. 정부가 만능 구원투수로 나서서 일자리도 만들고 생활비도 주는 시대로 수정자본주의가 대세다. 또한 별칭인 ‘록다운 위기’가 상징하듯 물건과 사람의 이동을 막는 전대미문의 현상이 전개되고 있다.

이런 위기 극복을 위한 대안으로 디지털이라는 새로운 처방전이 나돌고 있다. 디지털은 코로나19로 처음 등장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들의 이동 없이 경제가 돌아가게 만들고 산업 간 융합을 통한 새로운 가치 창출에 원동력이 되고 있다. 이 과정에서 국가 간에 물고 물리는 밀접한 거래로 협력과 포용이 필요하지만 보호무역주의를 통해 각자도생에 몰두하고 있다. 금융위기 이후 일상화되었던 실질적인 협력을 위한 국제 회의도 찾기 힘들어 경제위기 탈출 메커니즘이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고 있다.

경제위기가 주는 분명한 교훈은 위기를 벗어났다고 과거 상태로 회귀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특히 새로운 기술과 상품이 출몰하고 회복 속도에서도 국가별로 경제 주체별로 완전히 다른 ‘K 자 회복’이 예외 없이 나타났다는 점이다. 코로나19 팬데믹에도 인도는 두 자릿수 경제 성장을 기대하고, 중국처럼 일찌감치 수출이 폭증하는 나라가 있는가 하면 여전히 마이너스 수렁에서 빠져나오지 못한 나라가 있다. 기업 차원에서 디지털 흐름에 올라탄 스타 기업이 하루아침에 탄생하는 반면 기존 관행에 안주해 사라지는 기업이 적지 않다. 경제위기는 조금 후에 큰 변혁이 온다는 전령인 셈이다. 코로나19 해법은 겉으로는 재정 투입을 통한 개인과 기업의 지원인 것처럼 보이지만 실제로는 새로운 조류인 디지털 전환과 친환경 요구 그리고 글로벌 차원의 새로운 협력 방안에 대한 시험지를 우리에게 내밀고 있는 셈이다. 답안에 따라 경제위기 충격을 딛고 새로운 성장 엔진을 장착할 수 있느냐가 결정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