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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전 한국산업은행 산은경제연구소장, 전 한국산업은행 중국본부장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전 한국산업은행 산은경제연구소장, 전 한국산업은행 중국본부장

1992년 8월 24일, 대한민국과 중화인민공화국이 역사적인 수교를 하면서 국교가 정상화된 날이다. 중국 베이징에 소재한 영빈관인 조어대에서 당시 이상옥 외무부 장관과 첸지천 중국외교부장이 한·중 수교 공동성명에 서명함으로써 두 나라 관계의 새 장을 열었다.

30년 전의 중국과 지금의 중국은 글자 그대로 상전벽해(桑田碧海)다. 수도 베이징은 곳곳에 첨단건물이 들어선 가운데 톈안먼을 중심으로 원형으로 건설된 환상도로(環狀道路)가 3환(環)에서 7환으로 늘어나 편리한 교통망을 갖춘 거대한 도시로 탈바꿈했으며, 경제 중심지인 상하이는 진흙투성이 밭에 장화를 신고 다녔던 불모지의 푸둥지구에 상하이타워(632m·128층), 상하이세계금융센터(492m·100층), 진마오타워(422m·88층) 등 맨해튼 못지않은 고층빌딩이 들어섰다. 와이탄 지역에서 바라보는 푸둥의 야경은 홍콩이 부럽지 않다.


한국의 대중 경제 의존도 증가와 부작용

급성장하는 중국을 이웃 국가로 둔 우리 경제도 어느 정도 중국과 성장 과실을 공유한 측면이 있다. 그러나 중국의 성장 속도에 비하면 한국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느려 경제력 격차가 더 크게 벌어졌다.

1992년 수교 당시 중국의 명목 GDP(4920억달러)는 한국(3560억달러)의 1.4배에 불과했다. 그러나 약 30년이 흐른 2020년 중국(14조7230억달러)은 한국(1조6310억달러)의 9배에 달했다. 한·중 간 교역 규모는 2020년 2450억달러(약 297조4300억원)로 1992년(63억달러)에 비해 약 38배 증가했다. 2020년 기준 중국은 한국 무역액의 약 25%를 차지하는 최대 교역국이다.

중국에 대한 과도한 의존도는 우리 경제의 아킬레스건이 되고 있다. 중국에 대한 교역 의존도가 너무 높아 2000년에 발생했던 마늘 파동은 우리의 일방적인 패배로 끝났으며, 2016년 발생한 사드(THAAD·고고도 미사일 방어 체계) 보복 사태는 아직도 해결되지 않고 있다. 음으로 양으로 가해지는 각종 차별 정책에 우리 기업들은 시장을 잃을까 노심초사할 뿐 제대로 항의나 이의를 제기하지 못하는 실정이다.

세계적 투자은행인 골드만삭스는 중국 GDP가 1%포인트 하락할 경우 한국 GDP는 약 0.35%포인트 줄어든다고 분석한 바 있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큰 감소 폭으로, 한국이 중국의 경제 변동에 가장 큰 영향을 받는 국가라는 것이다.


중국은 10년마다 큰 변화

중국은 한⋅중 수교 이후 10년마다 큰 변화가 있어 왔다. 1992년은 1월에 덩샤오핑(鄧小平)의 남순강화로 개혁⋅개방에 박차를 가하기 시작했으며, 8월 한⋅중 수교가 이뤄졌다. 이후 약 10년이 지난 2001년 12월에는 중국의 현대 경제사에서 가장 중요한 사건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는 WTO 가입이 이루어졌다. 중국은 WTO 가입 이후 국제통상면에서 눈부신 발전을 이룩해왔으며, 중국 경제 발전의 상당 부분이 중국을 세계 경제에 편입할 수 있도록 도와준 WTO 가입 덕택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그리고 10년이 지난 2012년에는 시진핑(習近平)이 정권을 잡으면서 덩샤오핑의 도광양회(韜光養晦⋅재능을 감추고 참고 기다린다)는 물러나고 시진핑 국가주석의 중국몽(中國夢)이 출현했다. 이는 미⋅중 간 무역전쟁, 기술 패권 전쟁의 도화선으로 이어졌다.

이제 다시 10년이 지나 2022년이 되었다. 올해는 어떤 큰 변화가 나타날 것인지 궁금하다. 아마도 10월쯤 개최될 제20대 전국대표대회에서 시진핑 공산당 총서기의 3연임이 확정되고, 작년부터 시작한 공동부유 정책이 본격화할지 주시해 볼 대목이다.


1992년 8월 2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한·중 수교 소식. 사진 조선일보 DB
1992년 8월 2일 자 조선일보에 실린 한·중 수교 소식. 사진 조선일보 DB

한⋅중 국민감정 악화

한⋅중 관계에 있어 한 가지 우려되는 대목이 양 국민의 상대국에 대한 호감도 하락이다. 한국인의 중국 호감도가 급속히 악화하고 있다는 각종 여론 조사 결과가 잇따르고 있다. 그 원인으로는 환경 오염, 중국 어선의 서해 불법 조업, 역사 왜곡, 중국의 북한 편향, 코로나19 발병 부인 등 헤아릴 수 없이 많다. 물론 중국인의 한국에 대한 호감도도 악화하고 있다.

양 국민 간 악화된 감정의 원인을 경제적 측면에서 보면, 양국 간 경제가 상호 보완적 관계에서 경쟁 관계로 전환된 것이다. 우선 중국 측 입장에서 보면 그동안 우리가 중국에 대해 가졌던 제조업 등에서의 우위가 사라져 한국 경제의 대중국 매력도가 급격히 하락했다. 1990년대 중국에서는 삼성의 애니콜이 자부심의 상징이었으며, 삼성과 LG의 가전제품이 중국 소비자의 사랑을 받아왔다. 그러나 중국의 경제 발전으로 시장 점유율이 20%를 넘었던 삼성 스마트폰이 지금은 1%에도 못 미치는 처지로 추락했으며, TV·냉장고 등 가전제품도 가성비 넘치는 중국 제품으로 바뀐 지 오래다. 중국인의 일상에서 한국 제품이 사라지면서 한국에 대한 호감과 관심이 동반 하락한 것이다. 삼성 스마트폰이 신제품을 출시해도 그 관심도를 나타내는 트래픽에 큰 변동이 없다. 한국 입장에서는 중국의 경제 발전과 애국 소비 등으로 한국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하락하는 것은 어쩔 수 없지만 그 과정에서 중국이 보여온 불법적 기술 탈취, 무분별한 모방 등이 반중 정서로 나타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한·중 관계 미래 과제

한·중 수교 30년이 지나고 미래 30년이 펼쳐지고 있다. 한·중 양국은 30년 전 수교 당시의 초심을 잃지 말고 좋은 관계를 회복할 필요가 있다. 한국과 중국은 지리적으로 인접한 이웃 국가다. 좋은 이웃으로 미래의 30년을 맞아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양국 경제 구조가 경쟁 관계에서 보완 관계로 전환해야 한다. 한국은 기술 혁신을 강화해 우리의 기술 자산을 확대하고, 반도체 등 첨단 영역에서는 기술 초격차 전략을 통해 기술적 우위를 지속해 나가야 한다. 미·중 간 기술 패권 전쟁과 공급망 분리 등은 한국에 주어진 위기이자 기회다. 우리는 이를 천금 같은 기회로 잘 활용해야 할 것이다.

또 하나는 공정의 실현이다. 한국 2030세대가 중국을 불신하는 가장 큰 이유는 이들 세대가 가장 중시하는 공정이 구현되지 않기 때문이다. 중국은 개방 정책 기조하에서 외자 기업에 대한 내국민 대우 원칙을 천명하고 있다. 그러나 현실은 전혀 딴판이다. G2 국가로 부상한 중국은 전기차 배터리, 게임 등 각 산업에서의 차별 대우를 철폐해 양국 간 기울어진 운동장을 공정하게 바꾸도록 노력하는 것이 바람직할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