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유가로 인해 미국 휘발유 가격이 지난 1년간 50% 올랐다. 사진 블룸버그
고유가로 인해 미국 휘발유 가격이 지난 1년간 50% 올랐다. 사진 블룸버그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 전문기자온라인 칼럼 ‘최원석의 디코드’ 필자, ‘테슬라 쇼크’ ‘왜 다시 도요타인가’ 저자, 전 ‘이코노미조선’ 편집장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 전문기자
온라인 칼럼 ‘최원석의 디코드’ 필자, ‘테슬라 쇼크’ ‘왜 다시 도요타인가’ 저자, 전 ‘이코노미조선’ 편집장

글로벌 인플레이션(인플레) 위기가 잦아들 기미를 보이지 않는다. 미국에선 인플레 지표인 소비자물가지수(CPI) 상승률이 작년 12월에 전년 동월비 7%나 됐다. 2차 오일쇼크 이후 물가 급등이 이어진 1982년 여름 이후 39년 만에 가장 높았다. 독일·프랑스 등 유로화 사용 19개국의 CPI도 작년 12월에 전년 동월비 5% 상승했다. 종합 통계 작성이 시작된 1997년 이후 최고치였다. 브라질에선 10% 이상의 물가 상승이 계속되고 있다.

인플레 상황에선 보유 자산 중 현·예금 비중이 낮은 기업·개인이 이득을 보고, 반대로 현·예금 보유 비중이 높은 기업·개인은 손해를 보는 경향이 있다. 인플레가 되더라도 명목 채무 금액은 변하지 않기 때문에, 보유 자산에서 부채 비율이 높은 기업·개인이 이득을 보는 반면 채권을 많이 보유한 기업·개인은 손해를 보기 쉽다.

국가 경제는 물론 개인의 경제 생활, 투자 판단에도 매우 중요한 인플레가 올해 세계적으로 지속할까 아니면 잦아들까? 그 여부를 가늠할 포인트 5가지를 분석했다.


1│미국 물가와 유가

인플레 동향은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의 지지율과 직결된다. 올해 11월 중간선거에서 민주당이 참패하지 않으려면 어떻게든 인플레를 잡아야 한다. 그러나 미국이 금융긴축에 나선다 해도 물가가 쉽게 잡힐지는 미지수다. 수요가 강해 발생했다면 긴축으로 수요를 줄여 잡을 수 있지만, 지금의 인플레는 공급 부족에 큰 원인이 있기 때문이다.

우선 유가가 그렇다. 셰일 혁명을 거치면서 미국은 원유 가격 상승을 두려워할 필요가 없었지만, 최근 채굴에 대한 제약이 많아지면서 셰일 굴착장치가 2006년 피크의 절반밖에 가동되지 않고 있다. 고유가로 인해 미국 휘발유 가격도 지난 1년간 50% 올랐고 중고찻값도 37%나 올랐다. 고유가는 옷·고기·채소·과일 등 모든 물건의 생산 비용을 높였다. 여기에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사태로 인한 일손 부족과 물류 정체, 주택 가격 급등 같은 요인이 가세해 물가 상승 압력은 당분간 수그러들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 현재 서부텍사스산원유(WTI) 기준 유가가 92달러(약 11만2240원)로 고공행진 중이다. 100달러(약 12만2000원)를 넘어간다면 인플레와 경기 악화가 동시에 진행되는 스태그플레이션 우려가 커지면서 거시경제 전망이 급격히 어두워질 수 있다.


2│유럽의 가스 위기

유럽의 천연가스 가격은 2020년 5월 역사적 최저가인 100만BTU(열량 단위)당 1.2달러(약 1464원)까지 떨어졌지만, 불과 1년 반 사이에 두 번이나 사상 최고치를 기록하며 현재 25달러(약 3만500원) 안팎이다. △생산 차질 △코로나19 사태로부터의 급속한 수요 회복 △석탄 가격 상승에 따른 대체 수요, ‘탄소 가격’ 상승에 따른 천연가스 활용도 주목 등이 복합적으로 가격을 끌어올렸다.

러시아는 급등하는 유럽 가스 시장에 즉각적인 해결책을 제시할 수 있는 유일한 나라다. 파이프라인이 유럽에 직결돼 있고 세계 최대의 가스 공급 여력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러시아가 유럽에 가스 공급을 추가할 징후는 아직 보이지 않는다.

여기엔 수요·공급 양측 모두의 사정이 있다. 수요국 유럽도 과도하게 오른 가격으로는 가스를 더 많이 사려 하지 않는다. 러시아로선 2021년 9월 완성됐지만 일부 유럽 국가의 반발로 가동을 멈춘 가스관 ‘노르드스트림 2’를 가동하고 싶어 한다. 가스 가격 상승과 수급 압박의 상황을 이용할 심산이다. 노르드스트림 2가 가동되면 과열된 가스 가격이 내려갈 가능성이 크지만, 여전히 독일 정부와 유럽위원회의 심사 결과를 기다리는 상황이다. 또 하나 큰 위험 요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가능성이다. 확률이 낮다고는 하지만, 전쟁이 터질 경우의 가스 가격 급등은 상상을 초월할 것이다.


3│그린 인플레

기후 변화 대책이 촉발하는 물가 상승을 뜻하는 ‘그린(green) 인플레이션’도 세계적인 물가 상승을 부추긴다. 발생 요인은 세 가지다. 첫 번째는 탄소 중립(net zero·이산화탄소를 배출하는 만큼 흡수량도 늘려 대기 중 이산화탄소 농도가 늘어나지 않는 상태)에 급격하게 대응하면서 발생하는 수급 압박이다. 온실가스 배출이 많은 제품의 생산을 억제하고 있지만, 아직 불완전한 탄소 중립 기술에 의존할 수밖에 없기 때문에 공급 부족이 발생하고 자원·제품 가격이 상승한다.

두 번째는 탄소 중립을 향한 기술 개발이나 설비 투자에 드는 비용이 가격으로 전가되는 것이다. 탄소 중립에는 막대한 투자가 필요하다. 그것이 반드시 생산 능력이나 매출 향상으로 연결되지는 않기 때문에, 기업은 가격을 올려 비용을 상쇄할 수밖에 없다.

세 번째는 탄소 가격의 도입·인상이다. 온실가스를 배출하는 기업·소비자 등에 과세함으로써 온실가스 배출이 적은 생산 방법·제품으로 유도하기 위한 것인데, 탄소 배출 비용이 부과되는 만큼 해당 제품·서비스 가격이 오른다. 기후 변화 리스크와 관련한 금융 당국 네트워크(NGFS)에 따르면, 2050년 탄소 중립을 위한 조치가 전면 시행될 경우, 주요국의 인플레율이 매년 최대 2%포인트 오르게 된다.


4│장기 국채 금리

세계적 인플레는 본질적으로 중앙은행 자산의 팽창이 가져온 결과다. 공급망 정체나 탄소 중립에 수반하는 자원 가격 급등은 계기에 지나지 않는다. 최근의 물가 상승이 일시적 현상이 아니라 구조적 문제일 수 있는 이유다.

관건은 미국의 장기 금리(10년 국채 이율) 상승이다. 미국 장기 금리는 인플레율에 좌우된다. 1960년부터 현재까지를 살펴보면, 대체로 미국의 인플레율보다 장기 금리가 높았다. 고인플레 발생 시 장기 금리 상승이 인플레율을 늦게 따라가긴 했지만, 결국에는 실질금리(장기 금리-인플레율)가 플러스였다. 현재는 CPI가 7%에 이르는 가운데 장기 금리는 1.8%대에 머물러 실질금리가 큰 폭의 마이너스. 따라서 미 장기 금리는 앞으로 크게 상승할 가능성이 있다.

시장이 주시하는 것은 작년 가을까지 ‘인플레는 일시적’이라며 금융 완화 해제에 신중했던 미국 중앙은행 연방준비제도(Fed) 동향이다. 미 국채 등의 자산을 구입하는 양적완화 축소(테이퍼링)를 애초보다 앞당겨 올해 3월 종료하고 연내 총 세 차례 금리가 인상될 전망이다.

지금 미국 채무 비율은 대공황 직전에 근접한 수준. 초저금리로 버텨낸 거액의 채무는 약간의 금리 상승으로도 지급 불능이 될 수 있다. 지금까지라면 금융위기에 빠져도 중앙은행이 돈을 풀어 구제했지만, 고물가 상황에서 같은 방식을 썼다간 위기만 증폭시킬 뿐이다. 장기 국채 금리 상승이 세계 경제를 대공황급 위기에 빠뜨릴 수도 있다.


5│중국·신흥국의 식료품 가격 불안

중국의 수입 확대가 계속되면서, 미국 시카고 곡물 시장에선 콩·밀·옥수수 가격이 2013~2014년 이후 가장 높은 수준이다. 장기간 침체했던 설탕 가격도 주요 생산국의 가뭄에 따른 공급 우려로 4년 만에 상승세로 돌아섰다. 육류 가격도 오르고 있다. 중국의 돼지고기 수입은 2018년 145만t에서 2020년 528만t으로 급증, 세계 교역량의 절반을 수입하고 있다. 공급 불안이 해소되지 않는다면, 올해 육류·곡물 가격의 고공행진은 멈추지 않을 가능성이 있다.

이렇게 되면 물가에서 식료품이 차지하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은 신흥국이 인플레 충격을 더 받게 된다. 게다가 신흥국은 달러화 강세로 신음 중이다. 신흥국의 통화 가치 하락은 수입 물가를 상승시켜 인플레를 심화시킨다. 경상적자가 커진 신흥국을 중심으로 자금의 해외 유출도 심해진다.

이미 중남미·러시아에선 인플레율이 중앙은행 목표를 웃도는 가운데 금리 인상이 반복되고 있다. 신흥국의 고물가·고금리가 지속된다면, 경기 회복이 어려워지는 것은 물론 국가 디폴트(채무 불이행) 선언 등이 잇따라 세계 경제에 큰 부담을 지울 우려가 있다.

최원석 조선일보 국제경제 전문기자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