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9월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2021년 9월 조 바이든(오른쪽) 미국 대통령이 백악관을 방문한 나렌드라 모디 인도 총리와 대화를 나누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전 중국삼성경제연구원 원장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전 중국삼성경제연구원 원장

미국의 조 바이든 행정부는 지난 2월 새로운 인도·태평양 전략을 발표했다. 주요 내용은 미국을 인도·태평양 국가로 정의하고 동북아시아로부터 동남아시아, 남아시아, 태평양 군도를 포함한 오세아니아까지 모든 방면에 집중하겠다는 것이다. 인도·태평양 지역의 전략적, 경제적 중요성을 인식해 동맹국들과의 협력과 연대를 강화해 나간다는 게 골자다. 취임 이후 줄곧 가치, 동맹을 강조해온 바이든 행정부는 역내 질서 구축을 위해 호주·일본·한국·필리핀·태국과의 안보적 토대를 마련하고, 미국·일본·호주·인도의 4자 안보대화(쿼드·Quad), 미국·영국·호주 3자 안보동맹(오커스·AUKUS) 그리고 한·미·일 3국 간 협력을 인도·태평양 지역의 중심축으로 활용하겠다고 했다. 특히 한·미·일 삼국 협력을 쿼드나 오커스와 동급으로 중시하겠다는 내용이 눈에 띈다.

그동안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전략이 중국의 도전에 대한 대응임을 여러 차례 강조해왔다. 미·중 간 대결 시 미국 일방주의에 의존했던 도널드 트럼프 전 미국 대통령과 달리 바이든 대통령은 지역 동맹, 소·다자 안보협력체, 아세안(ASEAN·동남아국가연합)을 비롯한 역내 우방국들과의 관계를 강화하고 현대화함으로써 더 정교한 틀을 구성해 가겠다는 것이다. 코로나19, 기후 변화, 북한 등도 포함되어 있으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은 미국의 대중국 견제 정책이다. 

인도·태평양 전략에서 주목할 점이 있다. 전통 안보 분야에서 사용되던 ‘통합적 억지력’의 개념을 경제·무역·기술 분야로 확장해 핵심·신흥 기술, 인터넷 그리고 사이버 공간에서의 위협에 대한 대응으로 전환했다. 그 실행은 이미 작년 10월에 발표한 IPEF(인도·태평양 경제프레임워크)를 통해서 구체화할 전망이다. 

IPEF는 통상협정의 성격이지만 기존의 통상에서 벗어나 통상과 안보를 모두 다루는 새로운 형태의 통상협정이다. 아직 구체화되지는 않았으나 IPEF는 무역 원활화, 공급망 안정화, 디지털 경제, 탈탄소와 탄소 중립, 인프라 협력, 노동기준 확립 등이 주축을 이룰 것으로 예상되고 있다. 이는 과거 단순한 시장개방을 골자로 추진해 왔던 통상협정과는 거리가 멀다. 인도·태평양 전략의 기조하에서 중국을 견제하고자 하는 요소가 다분하기 때문이다. 핵심품목과 원자재의 대중국 의존도를 낮추고, 중국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에 대응한 인프라 투자 계획(B3W·Build Back Better World)을 확산하고자 하며, 핵심·신흥 기술의 중국으로 유출을 통제하기 위한 역내국의 공조를 중시하고 있다. 과거 경제정책의 중심이었던 자유무역이 아닌 보호주의, 가치를 기반으로 하는 대중국 외교안보 전략에 가깝기 때문이다.

그러나 IPEF를 조망할 때 단순한 대중국전략이라는 측면만 보기보다는 미래 발전 방향도 주목해야 할 것으로 보인다. 미국의 인도·태평양 전략의 핵심국가 중 하나인 호주의 댄 테한 통상 장관은 IPEF에서 가장 중요한 부분으로 디지털 경제, 녹색 경제, 공급망을 꼽고 있으며, 그중에서도 핵심은 디지털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세계 경제가 디지털 경제로 발전해가는 것은 불가피하며, 통상에서도 디지털 통상이 갈수록 중요해지고 있다는 것을 반영하는 것이다. 현재 디지털 통상을 주도해가는 국가는 싱가포르, 미국, 일본 등이다. 싱가포르는 뉴질랜드, 칠레와 3국 간 디지털 경제 동반자 협정인 DEPA를 맺은 데 이어 호주와 SADEA, 영국과 UKSDEA, 한국과 KSDPA 등을 체결했다. 미국과 일본은 디지털 무역 협정인 USJDTA를 체결했다. IPEF가 지역 디지털 통상협정의 중요한 통로로 발전할 것으로 전망되는 이유다.

한편 미국은 전통적인 통상협정에는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미국이 그동안 공들여온 다자기구인 WTO(세계무역기구)에 여전히 소극적으로 대응하고 있으며, 중국이 주도해 올해 초 발효시킨 RCEP(역내포괄적경제동반자협정)에도 전혀 참여할 의향이 없다. 또한 미국과 일본이 주도하다가 보호주의를 주창하는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이 탈퇴를 선언하면서 일본이 주도해 설립해 발효된 CPTPP(포괄적·점진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 일본·캐나다·호주 등 11개국이 창립회원국)에도 관심이 없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미국의 공백을 노려 중국은 오히려 전통적 형태의 통상협정 가입에 적극적이다. WTO는 미중 관세분쟁에서 중국의 손을 들어줘 미국이 WTO 개혁을 요구할 정도로 중국의 입김이 강화되고 있다. 중국은 RCEP를 통해 영향력을 강화하고 있고, 작년 9월 CPTPP에 가입 신청서를 제출했다. CPTPP는 세계에서 가장 개방도가 높은 자유무역협정으로 국유기업 보조금, 데이터 현지화, 소스코드(컴퓨터 SW 제작에 사용되는 설계 파일) 공개 요청 등을 금지하고 있어 중국은 가입이 어려울 것으로 예상되어 왔으나 의외로 가입을 신청한 것이다. 이는 자유무역에 회의적인 입장을 보여 온 미국이 전통적 통상질서에 관심이 없는 기회를 이용해 중국이 세계 통상질서 확립에 주도적으로 참여하겠다는 의지의 표현이라고 해석된다. 특히 CPTPP가 디지털 통상 규범을 제정한 것을 감안하면 14차 5개년 규획(2021~2025)에서 디지털 경제를 표방해온 중국의 장기 구상과도 밀접한 관련이 있다고 하겠다.

최근 나타나고 있는 신통상질서의 부상은 결국 세계 무역 규범을 주도하려는 미국과 중국이 경쟁하는 가운데 나타나고 있는 새로운 변화라고 하겠다. 중국은 기본적으로 중화사상(中華思想)의 나라로서 2001년 WTO 가입 이후 급속한 성장을 거쳐 세계무대로 복귀하겠다는 생각을 점점 구체화하고 적극화하고 있다. 반면에 미국은 아시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을 배제한 미국 중심의 통상질서 확립을 주도하되 경제안보 개념을 도입해 통상, 기술, 공급망, 인권 등을 모두 아우르는 새로운 통상질서를 수립하고자 하는 것이다.

한국은 기본적으로 개방형 통상국가로서 원활한 무역이 중요하다. 특히 디지털 통상은 인터넷과 ICT 등 디지털 기술을 이용한 상품, 서비스, 데이터 등의 국가 간 교역 활동을 의미하는 바, 디지털 강국, IT 강국이라고 할 수 있는 한국은 이러한 디지털 통상 등과 같은 새로운 국제통상 규범 제정에 적극적으로 나설 필요가 있다. 디지털 경제 표준과 규범 제정에 주도적으로 참여하지 못하면 남이 만들어 놓은 규범을 헐레벌떡 쫓아가야 하는 수고가 수반될 가능성이 크다. 한국은 오는 4월 CPTPP 가입 신청서를 제출할 계획이다. 앞으로 협상 과정에서 우리는 CPTPP 주도국인 일본의 무리한 요구도 받아들여야 할 것으로 보인다. 이는 우리가 CPTPP 설립 초기 주도국 그룹에 들어가지 못했기 때문이다. 바야흐로 세계는 IPEF 등 새로운 통상질서가 설립되는 초입에 있다. 한국도 이러한 추세에 부응해 더욱 적극적이고, 선제적으로 대응해야 할 것이다. 룰 테이커(Rule Taker·규칙 수용자)가 아니라 룰 세터(Rule Setter·규칙 제정자)로서 한국의 역할 변화를 기대해 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