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향수 브랜드 치웨이투수관(센트 라이브러리)의 베스트셀링 제품인 량바이카이(L.B.K Water) 시리즈.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몰 안에 있는 치웨이투수관 매장. 김남희 특파원
중국 향수 브랜드 치웨이투수관(센트 라이브러리)의 베스트셀링 제품인 량바이카이(L.B.K Water) 시리즈.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몰 안에 있는 치웨이투수관 매장. 사진 김남희 특파원

“량바이카이(凉白开) 향수는 어릴 때 마시던 끓인 수돗물 맛을 담고 있다. 지역마다 물맛이 다르다는 데서 영감을 얻어, 베이징·상하이·광저우·청두의 물맛을 향으로 표현한 한정판 도시 시리즈다. 각 도시의 향을 맡아본 많은 사람이 1980~90년대 유년 시절의 기억과 추억을 떠올린다.”

중국 베이징의 한 쇼핑몰에 있는 향수 매장 치웨이투수관(氣味圖書館·Scent Libra-ry)의 직원이 제품을 소개하며 한 말이다. 치웨이투수관은 Z 세대(1997~2010년생)로 불리는 중국 20대가 열광하는 중국 향수 브랜드다. 2009년 베이징에서 뷰티 편집숍으로 시작한 후 자체 향수 제품을 만들며 브랜드를 키웠다. 량바이카이는 2017년 출시 후 지금까지 이 브랜드에서 가장 많이 팔린 향수다. 

이 회사의 또 다른 히트작은 중국 국민 사탕으로 불리는 다바이투(大白兔·White Rabbit)와 협업(컬래버레이션)해 만든 향기 제품이다. 중국인이라면 패키지의 하얀 토끼 그림만 보고도 어떤 향인지 짐작할 수 있다. 2019년 다바이투 설립 60주년 기념으로 제작해 폭발적 인기를 끌었다. 출시 당시 다바이투 사탕 포장지로 포장한 향수 샘플을 손에 넣기 위한 줄이 끝없이 이어졌다. 알리바바그룹 산하 온라인 쇼핑몰 티몰에선 10분 만에 15만 개가 팔려나갔다. 치웨이투수관의 50㎖ 들이 향수 가격은 모두 285위안(약 5만7280원)으로, 같은 용량의 외국 브랜드 제품보다 저렴한 편이다. 치웨이투수관은 최근 3년간 티몰에서 향수 판매량 1위를 기록했다.


궈차오 브랜드, 中 향수 시장 접수

외국 럭셔리 브랜드가 장악했던 중국 향수 시장이 새롭게 등장한 중국 향수 브랜드를 중심으로 빠르게 재편되고 있다. 치웨이투수관을 비롯해 싼투(三兔·Scentooze), 관샤(觀夏·To Summer) 등 젊은 중국 브랜드가 Z 세대 소비자의 코와 마음을 사로잡았다. 재미있는 패키지 디자인, 중국 문화 코드를 맞춘 마케팅, 뛰어난 가성비가 Z 세대의 인정을 받았다. 특히 요즘 중국 젊은층의 애국주의 소비 트렌드인 궈차오(國朝) 열풍이 향수 시장에서도 통했다. 중국인을 위해 중국에서 만든 ‘메이드 인 차이나, 메이드 포 차이나’ 브랜드가 중국 향수 시장을 접수한 것이다. 

중국 잉퉁그룹이 올해 1월 발간한 ‘2021 중국 향수 산업 연구 백서’에 따르면, 불과 몇 년 전까지도 중국에선 샤넬·디올·에르메스·구찌 등 외국 럭셔리 패션·뷰티 브랜드의 고가 향수가 가장 많이 팔렸다. 그러나 요즘 세대는 전 세계의 누구나 쓰는 유명 브랜드 향수로는 자신을 표현할 수 없다고 생각한다. 중국의 국가적 위상이 높아진 만큼 중국인이라는 정체성을 느끼게 해주는 향과 이미지를 원한다. 단지 유명하고 비싸다고 해서 지갑을 열지 않는다. 남들에게 보여주기 위한 과시용 제품보다 자신의 취향과 성향에 맞는 실용적이고 합리적 가격의 제품을 선호한다.

그동안 중국 향수 시장엔 중간 가격대라 할 수 있는 제품이 거의 없었다. 우리 돈 수십만원씩 하는 외국 고가 향수 또는 알코올 냄새가 코를 찌르는 중국 저가 향수로 극단적으로 나뉘어 있었다. 중국에서 향수를 포함한 수입 화장품은 높은 관세 때문에 다른 국가보다 비싼 편이다. 한 예로, 프랑스 샤넬의 대표 향수 N°5(넘버 파이브) 오 드 파르펭 50㎖ 제품은 한국에서 15만8000원에 판매 중인데, 중국 티몰 공식 판매가는 1150위안(약 23만원)으로 훨씬 비싸다.

 

빅테크도 향수 만든다

궈차오 향수는 중국풍을 앞세워 중국 Z 세대를 공략했다. 2020년 9월 설립된 예서우칭녠(野獸青年·Young Beast)은 제품 패키지에 ‘중국 제조(메이드 인 차이나)’ 문구를 내세웠다. 싼투는 중국인이 특히 좋아하는 차 음료인 버블티와 중국 화폐 런민비 냄새가 나는 제품을 출시했다.

궈차오 향수 브랜드는 Z 세대 소비자의 지지를 업고 투자금을 끌어모으고 있다. 클래시파이드(RE: CLASSIFIED)는 2021년 1월 시틱캐피털에서 추가 투자를 유치해 중국 매장 수를 100개 이상으로 늘렸다. 싼투는 2021년 4월 가오랑투자에서 투자받았다. 치웨이투수관은 2021년 9월 스페인 향수 회사 푸치(푸이그)로부터 투자금을 유치했다.

짧은 영상(쇼츠) 공유 플랫폼 틱톡·더우인 운영사인 중국 바이트댄스도 향수 사업에 뛰어들었다. 빅테크가 향수를 만들어 팔겠다고 나선 것이다. 바이트댄스는 이모티프(EMO-TIF)란 자체 향수 브랜드를 만들었다. 톰포드, 아르마니 등 외국 브랜드 향수를 만든 조향사들이 개발에 참여했다. 제품 용량은 2㎖, 9㎖로, 적은 용량을 선호하는 중국 10~30대 여성 소비자를 겨냥했다.


향수 사용자 1억 미만…잠재력 크다

중국 향수 시장은 급팽창 중이다. 중국 시장조사 업체 아이리서치 보고서에 따르면, 중국 향수 시장 규모는 2017년 61억6000만위안(약 1조2380억원)에서 2020년 125억3000만위안(약 2조5185억원)으로 두 배로 커졌다. 영국 시장조사 기관 유로모니터는 2022년엔 중국 향수 시장 규모가 400억위안(약 8조400억원)을 돌파할 것으로 전망했다. 중국 향수 시장이 날로 커지고 있지만, 아직 초기 단계로 평가된다. 2019년 기준, 중국이 전 세계 향수 소비량에서 차지한 비중은 2.5%에 불과했다. 향수 업계에선 중국 인구 14억 명 중 향수 사용자가 1억 명이 채 안 되는 것으로 본다. 스위스 향수 제조사 지보단(Givaudan)은 중국 인구의 5~7%(7000만~9800만 명)만이 향수를 쓰는 것으로 추산했다. 


plus point

중국 국민 사탕 ‘흰 토끼’의 진화

중국 치웨이투수관 (센트 라이브러리)이 판매하는 다바이투 (화이트 래빗) 향수 제품. 김남희 특파원
중국 치웨이투수관 (센트 라이브러리)이 판매하는 다바이투 (화이트 래빗) 향수 제품. 사진 김남희 특파원

‘중국 국민 사탕’ 다바이투는 다른 브랜드와 협업이 잇따라 성공하며 Z 세대 사이에 힙한 브랜드로 재탄생했다. 다바이투는 1959년 등장 후 중국을 상징하는 제품으로 자리 잡았다. 흰 토끼가 그려진 다바이투의 알록달록한 포장지는 중국에서 못 알아보는 사람이 없을 정도다. 저우언라이(周恩來) 중국 총리는 1972년 중국을 방문한 리처드 닉슨 미국 대통령에게 자신이 즐겨 먹던 다바이투 사탕을 선물로 줬다.

다바이투는 2018년 상하이 화장품 회사 메이자징(Maxam)과 협업해 우유 사탕 향 립밤을 출시했다. 코브랜딩(co-branding) 전략은 적중했다. 중국 온라인 쇼핑몰에서 30초 만에 첫 물량 920개가 모두 팔렸다. 다음 날에도 3시간 만에 1만 개가 모두 팔릴 정도로 히트를 쳤다. 어렸을 때 흰 토끼 사탕을 먹고 자란 20~30대의 유년 시절 향수를 제대로 건드렸다. 이후 다바이투가 향수·밀크티 등 다른 브랜드와 협업한 제품을 내놓을 때마다, Z 세대 소비자의 열광적 지지를 받았다. 다바이투는 최근 상하이에 ‘우유 사탕 나라’에 들어와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첫 플래그십 스토어를 열었다.

베이징=김남희 조선비즈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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