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도 성향의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이 극우 성향의 장 마리 르 펜 국민연합(RN) 후보(대표)를 누르고 재선에 성공했다. 2017년 대선에서 만 39세 나이로 최연소 대통령이라는 수식어를 얻은 마크롱은 프랑스 역사상 20년 만에 재선에 성공한 대통령이라는 기록까지 썼다.

마크롱 대통령은 4월 24일(이하 현지시각) 치러진 대선 결선 투표에서 58.5% 득표율로 41.5%를 얻은 르 펜 대표를 약 17%포인트 차이로 제쳤다. 앞서 4월 10일 12명의 대선 후보를 두고 진행된 1차 투표에서 마크롱(27.85%) 대통령과 르 펜(23.15%) 대표는 득표율 1, 2위로 결선 무대에 진출했다. 프랑스 대선은 1차 투표에서 과반수를 얻은 후보가 없을 경우 최다 득표자 2명이 결선 투표를 하는 형식으로 치러진다. 

마크롱 대통령은 승리가 확정된 후 아내 브리지트 여사와 함께 파리 에펠탑 인근 샹드마르스 광장에서 당선 인사에 나섰다. 마크롱 대통령은 연설에서 “1, 2차 투표에서 더 독립적인 프랑스와 더 강한 유럽을 위한 우리의 프로젝트를 신뢰해준 모든 프랑스인에게 감사를 표하고 싶다”고 밝혔다.

이어 “나를 지지해서가 아니라 극우를 막기 위해 표를 준 것을 잘 안다”며 “이제는 한 진영이 아니라 만인의 대통령으로서 모두를 위한 대통령이 되겠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그는 “르 펜 후보를 지지한 유권자들의 분노에 대응책을 찾겠다”며 “프랑스를 통치하는 새로운 방법으로 새 시대를 열어가겠다”고 덧붙였다.

프랑스 최고 명문 파리정치대학, 국립행정학교(ENA) 등 프랑스 정치 ‘엘리트 코스’를 밟은 마크롱 대통령은 프랑수아 올랑드 전 대통령 대선 캠프에 합류한 후 2012년 엘리제궁 경제보좌관으로 발탁돼, 정계에 본격 진출했다. 그는 2016년 ‘새로운 중도’를 표방하며 전진하는공화국(LREM)을 창당했고, 이듬해인 2017년 첫 대선에 도전했다. 당시 그는 66.1% 득표율로 르 펜(33.9%) 대표를 크게 앞지르며 대권을 거머줬다.

프랑스 대선 역사에서 현 대통령이 재선에 성공한 것은 샤를 드골 전 대통령, 프랑수아 미테랑 전 대통령, 자크 시라크 전 대통령에 이어 네 번째이자, 2002년 시라크 전 대통령 이후 20년 만이다. 2002년 당시 르 펜 대표의 아버지이자 원조 극우 아이콘으로 불리는 장마리 르 펜이 국민연합의 전신인 국민전선(FN) 후보로 대선 결선 투표에 진출했지만, 시라크 전 대통령에게 패배했다. 이후 집권한 니콜라 사르코지(2007~2012년) 전 대통령은 다음 대선에 재출마했지만 단임에 그쳤고, 프랑수아 올랑드(2012~2017년)는 재선에 도전조차 하지 못했다.

이로써 마크롱 대통령은 2027년까지 총 10년간 프랑스를 이끌게 됐다. 마크롱 2기 정부가 추진할 정책도 주목된다. 마크롱 대통령은 현재 62세인 퇴직 정년을 65세로 연장하는 연금개혁안, 연금을 물가 상승률과 연동하고, 자영업자에게 부과하는 세금을 줄이는 방안, 유류세 인상, 최저임금 인상, 근로소득세 인하, 저소득층 상속세 감면, 신규 원전 건설 등 공약을 내건 바 있다.

3월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보리스 존슨(왼쪽부터)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뉴스1
3월 24일 벨기에 브뤼셀에서 열린 주요 7개국(G7) 정상회의에 참석한 보리스 존슨(왼쪽부터) 영국 총리와 에마뉘엘 마크롱 프랑스 대통령,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 로이터뉴스1

연결 포인트 1
한숨 돌린 美·유럽 ‘反러 전선’
바이든 “재선 축하…민주주의 수호”

서방 국가들이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 성공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있다. 친(親)러시아를 지향하는 르 펜 대표가 당선될 경우 우크라이나를 침공한 러시아에 맞서는 미국과 유럽, 북대서양조약기구(NATO·나토) 간 연대 전선이 약화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

미 백악관은 4월 25일 “조 바이든 대통령은 마크롱 대통령과 통화에서 재선을 축하했다”며 “바이든 대통령은 민주주의 가치와 경제·안보에 기반한 오랜 동맹인 프랑스와 긴밀한 관계를 강조했다”고 밝혔다. 아울러 바이든 대통령은 트위터에 “(마크롱의) 재선을 축하한다. 프랑스는 미국의 가장 오래된 동맹이자 세계의 난제를 해결할 핵심 협력국”이라며 “우크라이나를 지원하고 민주주의를 지키자”고 썼다.

유럽도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을 환영했다. 샤를 미셸 유럽연합(EU) 정상회의 상임의장은 트위터에 “브라보 에마뉘엘”이라며 “격동의 시기에 강력한 유럽과 더 주권적, 전략적인 EU를 위해 전적으로 노력하는 프랑스가 필요하다”고 썼다. 

이 밖에 보리스 존슨 영국 총리, 마리오 드라기 이탈리아 총리, 올라프 숄츠 독일 총리 등 각국 정상들이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에 축하 메시지를 전했으며, 볼로디미르 젤렌스키 우크라이나 대통령도 “진정한 친구인 마크롱 대통령의 재선을 축하한다”고 밝혔다. 

한편,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은 4월 25일 축전을 보내 “국정 활동의 성공을 바라고, 건강과 안녕을 빈다”고 말했다.


연결 포인트 2

“승리 없는 승리” 시장 반응도 시들,
증시와 유로화 동반 하락 

마크롱 대통령이 자국 역사상 20년 만에 연임에 성공한 대통령이 됐지만, 반쪽짜리 승리라는 평가가 나온다. 결선 투표율이 53년 만에 최저치를 기록하고, 르 펜 대표와 득표율 격차가 크게 좁혀졌기 때문이다.

프랑스 내무부는 4월 25일 이번 결선 투표율이 72%라고 밝혔다. 이는 드골 전 대통령의 사임으로 대선을 치른 1969년 투표율 68.9% 이후 53년 만에 가장 낮은 수준이다. 기권율은 28%로 53년 만에 최고치를 기록했다. 

극우 세력인 르 펜 대표와 득표율 격차도 크게 줄었다. 5년 전 결선 투표 당시에도 맞붙었던 둘의 격차는 32%포인트에서 17%포인트로 좁혀졌다. 프랑스 극우 대선 후보 중 40%대 득표를 한 것도 이번이 처음이다. 프랑스 일간 르몽드는 결선 투표 당일 프랑스 곳곳에서 반(反)마크롱 시위가 벌어졌다며, 그의 당선을 “승리 없는 승리”라고 평가했다. 

이를 반영한듯 시장의 반응도 시들했다. 결선 투표 다음 날인 4월 25일 유럽 주요국 증시는 일제히 하락했다. 프랑스 CAC40지수는 전날보다 2.01% 내린 6624.91에 마감했고, 영국 FTSE100지수는 1.88% 내린 7380.54, 독일 DAX지수는 1.54% 내린 1만3924.17에 거래를 마쳤다. 범유럽 지수인 STOXX 600지수는 1.81% 하락한 445.11을 기록했다. 같은 날 유로화도 0.34% 하락한 1.07725달러에 머물렀다.

필립 구딘 바클레이즈 이코노미스트는 마켓워치에 “(프랑스) 야당은 마크롱 대통령이 ‘선택권 없는 기본값’으로 재선됐고, 여론의 지지도가 낮다고 주장할 것”이라고 말했다. 롭 카넬 아시아·태평양 리서치 책임자는 “마크롱 대통령의 승리보다 중국 코로나19 사태와 우크라이나 상황이 시장에 더 큰 영향을 미치고 있다”고 했다.

이선목 기자
이코노미조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