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5월 13일(현지시각) 워싱턴 D.C.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의 특별 정상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월 10일 베이징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AP연합
조 바이든(왼쪽) 미국 대통령이 5월 13일(현지시각) 워싱턴 D.C.에서 열린 동남아시아국가연합(ASEAN·아세안)과의 특별 정상회의에서 모두발언을 하고 있다.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이 5월 10일 베이징인민대회당에서 열린 중국 공산당 창당 100주년 기념식에서 연설을 하고 있다. 사진 블룸버그·AP연합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전 중국삼성경제 연구원 원장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중국사회과학원 경제학 박사,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 전 중국삼성경제 연구원 원장

2017년 12월 미국 국방부는 국가안보전략보고서에서 “경제적 번영과 성장이 국가안보와 직결된다”고 하면서 경제안보의 개념을 제시했다. 2018년 2월에는 USTR(Office of the US Trade Representative·미국무역대표부)이 통상 정책을 국가안보와 연계해 추진하면서 국제통상에서도 경제안보 개념을 도입했다.


미·중 갈등이 촉발한 경제안보

미 국방부가 경제안보 개념을 언급한 것은 ‘중국제조 2025’가 큰 영향을 끼쳤다. ‘중국제조 2025’는 반도체를 포함한 ICT, 첨단장비 제조, 신소재, 신에너지자동차 등 미래 산업에서 중국이 GVC(글로벌 밸류 체인)를 장악하겠다는 야심 찬 계획이다. 이에 대해 미국에서는 중국이 미래 첨단산업에서까지 주도권을 장악하게 되면 경제적 패권뿐만 아니라 군사적 패권까지도 위협받게 될 것이라는 위기의식이 나타났다. 경제안보를 경제 부처가 아닌 국방부가 제시하고, 백악관에서 열린 반도체회의를 경제보좌관이 아닌 안보보좌관이 주관한 이유다. 

‘중국제조 2025’가 나오자마자 당시 미국의 버락 오바마 행정부는 중국 반도체 기업인 칭화유니(淸華紫光)의 미국 마이크론 인수를 불허했으며, 이후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은 무역협상 과정에서 중국의 기술 도용, 지식재산권 문제 등을 집중적으로 거론하면서 관세 부과를 통한 무역전쟁을 개시함과 동시에 공급망 분리를 추진했다. 2021년 1월 출범한 조 바이든 행정부는 일각에서의 유연한 대중 정책 전망과 달리 인권, 동맹, 가치를 동원하면서 중국과 대결구도를 더 체계적으로 강화해 나가고 있다. 

 기술안보가 최우선

미 국방부의 경제안보 개념을 빌리면 경제안보는 ‘국가안보에 영향을 미치는 경제적 안정과 성장’이라고 볼 수 있다. 이런 측면에서 볼 때 경제안보에는 기술, 공급망, 환경, 자원, 물류, 인권, 사이버 등 많은 영역과 관계가 있다. 그러나 가장 중요한 한 가지를 꼽는다면 기술안보다. 좀 과장되게 말한다면, 기술안보가 곧 경제안보다. 

기술은 성장뿐만 아니라 군사안보에도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첨단 반도체, 컴퓨터, 통신, 항공우주 등은 군사 기술에 직접적 영향을 미친다. 미·중 간 갈등이 무역전쟁에서 기술 패권 경쟁으로 발전한 이유다.

미·중 간의 경제안보 갈등은 자국이 앞서 있는 것을 지키는 것부터 시작했다. 미국이 보유한 가장 강력한 기술 경쟁력은 반도체 산업에서의 절대적 우위다.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서의 기술적 우위를 지키고자 중국의 반도체 기업 인수합병(M&A)을 막아 기술 자산 지키기에 나섰다. 핵심 군사 기술에 대한 해외 이전을 철저히 통제해온 미국이 반도체 산업에서도 동일한 행보를 보인 것이다. 반도체 기술은 상업 기술이기도 하지만 군사 기술이기도 하다는 의미다.

미국의 기술 자산 지키기 측면에서 가장 뛰어난 활약을 보인 기관은 CFIUS(The Committee on Foreign Investment in the US·외국인투자심의위원회)다. 동 기관은 1975년 설립 초기에는 일본 후지쯔의 미 반도체 기업인 페어차일드 인수를 불허한 바 있으나, 미·중 간 갈등이 불거진 2015년부터는 주로 중국 기업의 미국 기술 기업 인수를 저지해왔다. 선진 기업을 인수해 기술을 이전받는 것이 기술 습득을 실현하는 용이한 방법 중 하나라는 것을 고려해 볼 때 CFIUS는 경제안보 측면에서 상당한 역할을 해왔다고 평가받을 만하다. 

반면에 중국은 데이터 산업 지키기에 들어갔다. 중국은 14억 인구를 바탕으로 미래의 석유라고 불리는 데이터 분야에서 상당한 우위를 보이고 있다. 미래 핵심 산업으로 꼽히는 AI(인공지능) 분야는 데이터의 양이 핵심이다. 작년에 중국이 미 증시에 상장된 디디추싱에 대한 조사에서 데이터안보를 통해 국가안보를 지키겠다는 명분을 내세웠으며, 제도적 측면에서 데이터보안법, 개인정보보호법, 인터넷보안심사방법, 인터넷데이터안전관리조례 등 데이터 관련법을 잇달아 제정, 강화한 이유다. 이러한 미국과 중국의 지키기 전략은 현재 자국이 경쟁력이 있는 산업 분야에서 우위를 지속하기 위한 단기적인 전략이다. 중장기적으로는 미래 산업에서 우위를 확보하는 것이 중요한 바, 양국은 모두 산업 정책을 통해 미래의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기술 개발 경쟁에 나서고 있다. 


공급망 재편과 혼란

기술이 확보되면 다음은 제품을 안정적으로 생산, 공급하기 위한 공급망이 중요하다. 바이든 대통령은 취임 후 곧바로 반도체, 배터리, 희토류, 의약품 등 4대 중점 산업에 대한 공급망 점검 지시를 필두로 공급망 분리를 추진하고 있는데, 이는 중국을 중심으로 구축된 홍색 공급망(Red supply Chain)에 의존하는 것이 미국의 국가안보에 위해가 된다고 판단한 데 기인한다. 

이에 따라 미·중 간 공급망 분리가 일부 진행되고 있는 가운데 예상치 못한 코로나19 사태, 우크라이나·러시아 전쟁, 차량용 반도체 공급 부족, 물류 대란 등으로 인한 공급망 혼란이 발생하면서 공급망 안정에 대한 중요성이 부각되었다. 또한 장기적 과제인 환경 문제에 대처하기 위한 ESG(환경⋅사회⋅지배구조) 공급망도 중시되고 있는데, 이는 탄소 배출에 있어서 당해 기업의 탄소 배출뿐만 아니라 원자재, 부품, 중간재 등을 공급받는 과정에서 발생하는 공급망 전체의 탄소 배출까지 포함될 가능성이 커지고 있기 때문이다. 해외로 이전할 이점이 사라지거나 공급망 안정화 측면 등에서의 리쇼어링(reshoring·해외 생산 기지 본국 회귀)도 중요한 이슈다. JIT(Just-In-Time·적기 생산) 시대에서 JIC(Just-In-Case·비상 대피) 시대로 바뀌고 있는 것이다.


IPEF 출범…동맹 간 신통상협력 대두 

미·중 간 갈등으로 통상도 다자간 교섭형 통상에서 동맹 간의 신통상협력으로 변화하고 있다. 바이든 행정부는 인도·태평양 지역에서 중국의 부상을 견제하고 인도·태평양 지역에서의 핵심적 이익을 지킨다는 명분하에 일본, 호주, 인도, 한국 등 주요 동맹국과의 협력을 강조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IPEF(인도·태평양 경제 프레임워크)를 출범시켜 무역 촉진, 공급망, 디지털 경제, 인프라 투자, 환경 대응 등의 분야에서 동맹국 간 공조를 강화할 계획이다. 금명간 출범하는 IPEF는 기존 통상협정과 달리 무역뿐만 아니라 비무역 분야까지 포괄하는 것으로 자유 통상 개념이 동맹국 간의 협력체 성격으로 변화되는 것도 새로운 모습이다. 


한국의 대응 방향

미국의 경제안보 개념을 가장 빨리 받아들이고 대처에 나선 국가는 일본이다. 이어 호주, 유럽연합(EU) 등도 발 빠른 행보를 보이고 있다. 다소 늦은 감이 있기는 하지만 우리나라에서도 경제안보 개념이 부상하면서 대응 방안이 나오고 있다. 주목할 점은 공급망, 통상안보, 산업안보 등 방어적 개념에 논의가 집중되고 있다는 것이다. 산업안보, 사이버안보 등이 취약해 우리의 자산을 잘 지키지 못한 것이 주원인이라고 하겠다. 그러나 중장기적으로는 미래 산업에서의 기술적 자산을 축적해야 미래 첨단기술 경쟁에서 생존하고 지속적으로 발전해 나갈 수 있다. 오늘날 반도체, 배터리 등에서 세계적인 경쟁력을 보유하게 된 것처럼 인공지능(AI), 양자 기술, 첨단 반도체, 바이오 등 미래 첨단기술 분야에서도 우리의 기술적 우위를 확보하기 위한 지혜를 모아야 할 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