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이라 칼리시딜로이트 투쉬 토마츠리미티드 수석 글로벌이코노미스트 배서칼리지 경제학,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박사
아이라 칼리시딜로이트 투쉬 토마츠리미티드 수석 글로벌이코노미스트 배서칼리지 경제학, 존스홉킨스대 국제경제학 박사

딜로이트 소속 경제전문가들은 미국 경기침체가 아직 시작되지 않았다는 데 모두 의견이 일치하지만, 경기침체 위험 자체는 충분히 인식하고 있다. 금리가 상승하면 자산 가격이 내려가고, 일부 자산의 경우 의무적으로 시가평가(mark to market)를 해야 한다. 이로 인한 자본 손실이 금융 시스템의 취약성을 드러낼 수 있고, 이러한 문제는 미국을 완만한 경기둔화나 온건한 경기침체가 아닌 심각한 경기 하락 사태로 내모는 시한폭탄이 될 수 있다.

시가평가란 금융기관과 기업의 재무 자산과 부채 같은 계정의 공정가치를 시장의 상황 변화에 맞게 평가하는 회계 방법이다. 금융기관 투자 자산의 경우 유가증권, 파생상품에 의한 채권 및 채무, 투자신탁 등 자본이득을 얻기 위한 자산의 가치를 매입가(장부가) 대신 그날그날의 시장가격(시가)으로 평가해 장부에 계상한다. 시가평가제를 도입하면 보유 자산의 공정가치를 적시에 평가할 수 있지만 가격이 매입가 이하로 떨어질 때 보유자의 장부에 손실로 반영된다. 금융기관은 보유 자산의 시가가 크게 하락해 손실 폭이 커지게 되면 줄어든 자본을 보충하기 위해 대출 자산 축소 및 회수에 나설 수 있다.

미국 연방준비제도(Fed·연준)가 연달아 자이언트 스텝(기준금리 0.75%포인트 인상)을 밟은 가운데, 미국의 경제 예측 및 모델링 책임자인 딜로이트 대니얼 바크먼(Daniel Bachman)은 연준의 연방기금금리(FFR) 인상이 이러한 구조의 미국 금융시장 뇌관을 건드려 미국에서 경기침체가 시작되는 개연성 있는 시나리오를 다음처럼 제시한다.


연준의 금리 인상이 경기침체로 이어진다는 전형적인 이야기는 대체로 금리에 민감한 부문들이 위축되기 시작하면 경제 전반이 위축세로 전환한다는 식으로 설명된다. 대학 수업 시간에 가르치는 내용이 바로 이것이다. 하지만 이런 설명은 지나치게 단순하지 않은가? 대부분의 경기침체, 특히 금융 여건 악화로 인해 초래된 경기침체는 결코 이렇게 단순하지 않다.

사실 경제의 금리 인상에 대한 민감도는 대부분 사람이 생각하는 것만큼 크지 않으며, 부동산 등 금리에 특히 민감하다고 알려진 부문도 알고 보면 민감도가 그렇게 크지 않다. 다른 요인들을 제외하고 연준이 혼자 미국을 경기침체로 몰아넣는다고 가정한다면, 연준이 브레이크를 인정사정없이 세게 밟아야만 가능할 것이다. 현재 비관론자들이 예상하는 실질 연방기금금리 수준이라고 해 봤자 2~3% 수준이다. 이들은 인플레이션 압력이 줄어들어 연준이 브레이크 밟는 강도를 줄일 수 있게 될 것으로 본다. 대학에서 가르치는 ‘금리 인상→경기침체’의 교과서적 이야기는 1980년과 1982년 경기 하강기에 해당한다. 당시 실질 연방기금금리는 각각 10%에 육박하는 수준까지 올라갔고, 이후로도 상당 기간 5%를 웃돌았다. 지금은 인플레이션이 큰 폭으로 완화되고 연방기금금리가 예상보다 가파르게 인상된다고 해도, 1980년대와 비교하면 실질 단기금리는 훨씬 제로 수준에 가까울 것이다. 전형적인 매파로, 물가 안정을 위해 1978년 취임 2개월 만에 4%포인트 금리 인상이라는 초강수를 시작으로 폭풍 금리 인상을 단행해 ‘인플레이션 파이터(inflation fighter)’로 불린 폴 볼커(Paul Volcker) 전 연준 의장이 유도한 것과 같은 1980년대의 이른바 ‘볼커 경기침체(Volcker recession)’가 지금 다시 발생할 가능성은 작다는 의미다.


하지만 금리가 상승하면 경제 상황을 훨씬 더 악화시킬 다른 문제들이 발생할 수 있다. 지난 몇 년간 미국 기업과 가계는 매우 낮은 이자율로 돈을 빌렸다. 미국 기업들은 6조달러(약 7962조원)가 넘는 규모의 회사채를 4%가 채 되지 않는 수준의 금리에 발행했으며, 그중에는 금리가 3%가 안 되는 경우도 허다하다. 같은 기간 미국 가계가 받은 주택담보 대출액은 8조6000억달러(약 1경1412조2000억원)에 달하는데, 대출 금리가 2017년과 2020년 평균 각각 4.5% 및 2.8% 수준에 불과했다. 이는 채무자에게는 매우 유리한 조건이다. 하지만 이러한 회사채나 모기지 증권을 보유하게 된 투자자들은 어떨까? 금리가 상승하면, 이 같은 투자 자산의 가치는 하락한다. 예를 들어 모기지 금리가 6%로 오르면, 3% 금리로 발행한 모기지 증권의 액면 가치는 반 토막이 된다.

금리가 상승하면 이들 자산을 보유한 투자자들은 시가평가를 해야 한다. 이런 일이 실제로 일어나는 방식은 순전히 기술적인 회계 처리 방식 및 규제 적용이 어떻게 되어 있는지에 달려있다. 일부 투자자는 아무런 고통도 받지 않을 가능성이 있지만, 대규모 손실을 감당해야 하는 투자자도 분명 적지 않을 것이다. 이럴 경우 대출 기관들이 유동성 확보에 혈안이 돼 장기 자산에 대한 투자를 꺼리면서, 경제 전반의 자본 가용성이 급격히 악화할 위험이 있다. 여기서 그치지 않고 국제 금융시장에 큰 영향을 미치는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금융기관(SIFI)’들이 이 같은 장기 증권에 대규모로 투자했는데 이러한 보유 자산을 시가평가해야 할 경우를 생각해보자. 이들이 기술적인 파산으로 판명이 나게 될 정도의 사태가 발생한다면 미국뿐 아니라 전 세계 금융시장에 더 중대한 위험이 발생할 수 있다.


여기서 유의할 점이 있다. 현재 문제는 결코 담보가 부실하다거나 상환에 어려움이 있기 때문에 발생하는 것이 아니다. 2008년 금융 위기 같은 사태가 똑같은 양상과 순서로 다시 발생하지는 않는다는 의미다. 대신 금리가 상승하면 양질의 부채도 시가에 맞춰 가치가 하락하기 때문에 전혀 다른 문제가 나타날 수 있다는 점에 유의할 필요가 있다.

아직은 그러한 문제가 발생할 징후가 나타나지 않았고, 미국 은행들이 최근 스트레스 테스트(건전성 조사)를 무난히 통과했다는 소식은 분명 긍정적인 신호다. 시스템적으로 중요한 이들 금융기관이 경기침체 같은 외부 충격에 대한 위기관리 능력 시험을 문제없이 통과했다는 사실은, 금리 인상으로 인해 금융자산 가격이 하락세를 보이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은행들이 재무 건전성을 꽤 훌륭하게 유지하고 있다는 의미다. 하지만 지난 2008년에 경험했듯, 파생상품과 주요 금융기관의 복잡한 조직 뒤에 숨어 도사리고 있는 문제들이 아직 표면화되지 않은 것일 수 있다. 미국 연방기금금리 인상이 미국 금융시장의 숨겨진 취약성을 드러낸다면, 완만한 경기 하락이나 온건한 경기침체가 돌연 급격한 경기하강 사태로 변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