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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최용민 WTCS 대표 광운대 경영학 박사, 한국무역협회 전 FTA통상연구실장·전 베이징 지부장· 전 국제무역통상연구원장

코로나19를 극복하기 위해 정부와 기업이 앞다퉈 혁신에 나서고 있다. 모두가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등 디지털 기술을 개발하고 있지만, 이것만으로는 부족하다. 특히 중장기적으로 기업 경쟁력을 제고하려면 탄소 배출량 감축이라는 큰 고비를 넘겨야 한다. 이는 단순히 ‘착한 경제’로 가는 수단으로 권장하는 것이 아니라 ‘기업의 생사’를 좌우하는 필수 요건이 되고 있다. 

‘탄소 중립’은 배출되는 탄소와 흡수되는 탄소량을 같게 해 탄소 순 배출이 제로(0)가 되게 하는 것으로, 넷 제로(net zero)라고도 부른다. 이를 위해 이산화탄소 배출량을 최대한 줄이고 배출한 탄소의 양만큼 나무를 심거나, 청정에너지(수열·풍력·태양력 등)를 늘려야 한다. 이런 노력은 유럽연합(EU)이 특정 수입품에 관세 성격의 부과금을 매기는 내용을 골자로 한 탄소국경조정제도(CBAM) 시행안을 발표하면서 발등의 불이 됐다. 2023년 1월 1일 발효 후 3년의 전환 기간(철강 등 5개 품목 시범 적용)을 거쳐 2026년부터 전면 시행된다. 탄소국경조정제도는 탄소 배출이 많은 방식으로 생산된 외국산 시멘트, 철강, 알루미늄, 비료 등이 1차 대상이지만 품목 확대를 골자로 한 수정안이 나왔다. 한국은 철강, 시멘트, 화학과 정유 산업, 반도체와 디스플레이 등이 한국 전체 산업계 탄소 배출량의 약 80%를 점하고 있는 데다 대표적인 수출 산업이어서 대응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EU는 내부적으로도 발 빠르게 움직이고 있다. 최근 유럽투자은행(EIB)은 탄소 감축 기술의 상용화를 위해 혁신펀드를 설립했다. 2030년까지 100억유로(약 13조5000억원)를 지원하되 필요 자금의 40%를 선지급하는 방식으로 첨단기술 개발을 독려하고 있다. 그 대상은 온실가스 저감 대책은 물론 자원 재활용을 위해 이산화탄소를 대량 발생원으로부터 포집한 후 압축하고 수송하거나 육상, 해양, 지중(地中) 등에 저장하는 기술을 포함하고 있다. 에너지 저장 장치인 배터리 및 관련 부품이 대표적이다. 또한 신재생에너지인 태양열, 바이오매스(생물 연료), 풍력·소수력·지열·태양광 등의 발전 기술에도 대규모 자금이 투입되고 있다. 

EU는 코로나19 경제 회복 기금 중 상당 부분을 그린 산업 발전에 투입하고 있다. 지난해 시작한 프로젝트를 통해 오는 2027년까지 회복 기금의 30%인 5500억유로(약 743조원)를 탄소 중립에 투자한다는 것이 골자다. 화석연료 의존도가 높은 산업에 대출을 중단한다는 방침과 함께 보조금 지급을 통해 그린화를 앞당기고 있다. 이 일환으로 유럽투자은행은 LG화학의 폴란드 리튬이온 배터리 공장의 증설을 위해 4억8000만유로(약 6490억원)를 대출하는 계약을 체결했다. 역내에서 최초로 배터리의 전극, 셀 모듈, 팩까지 일관 생산하는 공장이라는 점을 높게 평가한 것이다. LG화학의 폴란드 공장은 완공 후 연간 배터리 생산량이 35GWh에 달할 것으로 예상되며, 이는 매년 전기자동차 50만 대에 탑재할 수 있는 규모다. 대출금과 별개로 폴란드 정부도 해당 공장에 대해 9500만유로(약 1280억원)의 보조금 지원 계획을 세우고 있다. 프랑스는 에어프랑스에 그린 항공사로의 전환을 조건으로 70억유로(약 9조4000억원)를 지원하기로 결정했다. 2024년까지 탄소 배출량 50% 감축을 위해 에너지 효율이 높은 항공기로 교체하는 동시에 신재생에너지 사용 확대를 요구하고 있다. 

미국의 경우, 지난해 12월 조 바이든 대통령이 2050년까지 연방정부 차원의 탄소 중립 도달을 위한 행정명령에 서명했다. 이에 따라 미국은 최대 에너지 소비국으로서 2030년까지 온실가스 배출을 65%(2005년 대비) 줄여야 한다. 특히 연방정부 건물은 2030년까지 모두 친환경 전기만을 사용해야 한다. 2035년까지는 자동차와 트럭 등 수송 기기를 전면 전기차로 교체해야 한다. 이런 정부의 움직임은 기업에 압력으로 작용하고 해당 제품의 시장은 탄소 중립을 위한 혁신을 재촉할 전망이다. 또한 미국의 기후 온난화 위협의 대처를 촉구하는 초당파 비영리 기관인 기후리더십위원회(CLC)가 산하에 기후무역정책을 담당할 기구를 신설해 EU에서 시작된 탄소 중립 관련 무역장벽이 미국으로 번질 것이라는 우려가 나오고 있다. 

중국은 전력난으로 탄소 중립에 대한 속도 조절이 불가피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오고 있는 가운데 최근 탄소 중립을 위한 투자계획이 지방 정부별로 잇따라 발표됐다. 

저장성은 100만㎾급 신에너지 저장 프로젝트와 400만㎾급 태양광 및 풍력 설비에 대한 투자에 나선다고 밝혔다. 안후이성은 350만㎾급 재생에너지 생산에 나섰고, 상하이는 30만㎾급 태양광 발전기 건설에 착공한다고 밝혔다. 

중동 산유국들도 에너지 전환을 통한 탄소 중립에 대비하고 있다. 화석연료의 쇠락과 청정에너지 시대의 급부상에 따라 사우디아라비아는 지난해 3월에 그린 이니셔티브를 발표했다. 100억 그루의 나무 심기와 함께 재생에너지 분야에 2500억달러(약 331조원)를 투입하고 있다. 이를 통해 2030년까지 전력 부분 에너지원에서 재생에너지가 차지하는 비중을 50%로 높이겠다고 발표해 외국기업의 주목을 받고 있다. 

아랍에미리트(UAE)는 지난해 11월에 수소 산업 육성 정책을 발표했다. 글로벌 수소 시장 점유율을 2030년까지 25%로 끌어올린다는 목표하에 한국, 일본, 독일, 인도를 주요 시장으로 선정하고 자본력이 뛰어난 공기업들에 미션을 맡기고 있다. 대표적으로 두바이 수전력청은 태양광 발전 설비를 통한 그린수소(재생에너지가 만든 전기로 물을 분해해 얻는 수소) 개발에, 아부다비 국영 석유 회사는 블루수소(이산화탄소 포집·저장 기술을 통해 탄소 배출을 최소화한 수소)와 암모니아 생산에 전력 투구하고 있다. 

최근 국내외에서 탄소 중립을 위해 새롭게 떠오르는 혁신 방안은 하천수나 상수도 물(원수)을 사용해 에너지 사용을 줄이는 수열 시스템이다. 기존에는 탄소 중립의 대표선수로 태양광과 풍력이 주로 언급됐지만 대형 건물 열원 설비로 수열이 적극 검토되고 있는 것이다. 일본, 유럽, 북미 등 선진국에서 이미 수열에너지를 활용하기 시작했다. 하천수는 냉난방으로, 심층 호소수(댐과 둑에 고여 있는 물)는 냉방 전용으로 활용되고 있다. 프랑스는 파리에 있는 738개 빌딩이 수열(센강 활용)을 이용해 탄소 배출량을 통제하고 있으며 2024년 하계 올림픽 주경기장도 수열로 냉난방을 공급할 예정이다. 일본 도쿄의 하코자키지구 열공급센터는 일본 최초로 하천수를 활용하고 있다. 인근의 강물(스미다강)이 하절기에는 영상 5℃이고 동절기에는 영하 3℃인 점을 활용해 냉동기 등에 물을 순환시켜 기존 설비 대비 18%나 에너지를 절감했다. 캐나다의 에너지 기업인 엔웨이브(Enwave)는 연평균 4℃(연중 2.8∼5℃)인 인근 호수의 심층 원수를 냉방(7.8℃)에 활용 후 식수로 공급하고 있다. 이 물은 대형 건물 150개에 활용이 가능해 기존 냉방 시설에 비해 전력 사용량의 최대 90%를 절감할 수 있다고 한다.

수열 시스템은 국내에선 최고층 건물인 잠실 롯데월드타워가 시발점이 됐지만 아직은 걸음마 단계다. 롯데월드타워는 2016년 국내 처음으로 광역원수관(상수도관)의 15~17℃인 물이 건물을 통과하게 해서 여름에는 시원하게 하고 겨울에는 따뜻하게 하는 데 이용한다. 이런 과정을 통해 일부 에너지 비용을 60~70% 정도 줄인 것으로 알려졌다. 물도 다시 정수 과정을 통해 최종 수요처에 공급되기 때문에 자원 낭비는 전혀 없는 셈이다. 최근에는 대형 건물을 중심으로 40여 곳이 수열을 통해 에너지 비용도 줄이고 탄소 중립에 성큼 다가서는 효과도 거두려고 설계 중이다. 삼성서울병원과 영동대로복합환승센터 등이 수열 도입을 결정했으며, 강원도에는 대규모 수열 클러스터 조성도 확정 단계다. 더욱이 환경부가 최근 상수원수 활용을 재생에너지로 인정하는 법 절차를 마무리해 향후 새로운 탄소 중립의 디딤돌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