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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현 법무법인 덴톤스리 상임 고문,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중국삼성경제연구원장), 전 한국산업은행 산은경제연구소장
박기순 성균관대 중국대학원 교수 현 법무법인 덴톤스리 상임 고문, 전 삼성경제연구소 부사장(중국삼성경제연구원장), 전 한국산업은행 산은경제연구소장

세계는 바야흐로 반도체 패권 경쟁 시대에 돌입했다. 미·중 갈등 속에서 반도체는 이제 일반 상품이 아니라 4차 산업혁명을 맞이하는 핵심 부품이자 안보 상품이다. 반도체 전쟁에서 이기는 자가 미래 산업을 제패하고 첨단무기, 패권 경쟁에서 승리하기 때문이다. 


미국의 반도체 제조 능력 강화 필요

미국은 반도체 산업에서 가장 핵심적인 역할을 하고 있는 국가다. 세계 시장 점유율에서도 50.8%로 세계 1위(2위 18.4% 한국, 3위 9.2% 일본, 4위 6.9% 대만, 5위 4.8% 중국)를 차지하고 있다. 이를 세분해서 보면 메모리는 한국의 삼성전자와 SK 하이닉스가 주도하고 있지만, 팹리스(반도체 설계)는 퀄컴, 엔비디아(NVIDIA), AMD 등이 포진한 미국이 59.3%를 차지하고 있으며, 파운드리(반도체 위탁생산)는 TSMC, UMC가 포진한 대만이 60.4%로 1위를 차지하고 있다. 

문제는 제조 능력이다. 미국은 생산 능력으로만 보면 세계 5위(1위 21.4% 대만, 2위 20.4% 한국, 3위 15.8% 일본, 4위 15.3% 중국, 5위 12.6% 북미)다. 1990년 미국은 세계 반도체의 약 37%를 생산했지만, 지금은 12%만 생산하고 있다. 이는 미국이 부가가치가 높은 설계, 장비 등에 치중하고 제조는 해외로 이전했기 때문이다. 이러한 분업구조는 중국이 ‘중국제조 2025(2015년 5월 중국 국무원이 제조업 활성화를 목표로 발표한 산업고도화 전략)’와 ‘기술로드맵’을 발표한 2015년부터 미국에 경종을 불러일으켰다.


중국의 ‘중국제조 2025’와 반도체 산업 육성 전략 

중국은 그동안 글로벌가치사슬(GVC) 하단의 단순한 조립단계에서 벗어나기 위해 부품, 소재 등을 국산화하는 정책을 발표했다. 특히 반도체는 2025년까지 국산화율을 70%까지 끌어올려 세계 시장을 주도하겠다는 웅대한 계획을 세웠다. 이에 대한 미국 등 서방의 반응은 상당히 냉랭했으며, 그동안 중국이 경제발전을 거듭하는 가운데 습득한 기술 발전이 정당한 대가 없이 각종 압력과 불법행위로 이뤄졌다는 것이 부각됐다. 심지어 미국은 중국제조 2025가 미국에 대한 경제적 침략행위라고 규정했다.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 시대의 무역 협상 과정에서도 미국은 시장개방, 미국산 농산물 구매 확대 외에도 불법적 기술 침탈 행위 등에 대한 대응조치를 요구한 바 있다. 중국의 기술 사용료 지급액을 보면 중국의 고성장과 괴리가 커 미국의 주장을 뒷받침한다. 그리고 중국의 체제 변화에 대한 미국의 희망이 헛된 것임이 드러나면서 본격적인 미국의 대중국 견제가 시작됐다. 

중국제조 2025에서 명시한 10대 산업 가운데 가장 중요하고 중국이 가장 취약한 부분이 반도체다. 다른 산업과 달리 반도체만은 외국과의 협력을 희망했지만, 미국의 대중국 기술이전 금지로 물거품이 되고 있다. 2020년 40% 달성 계획을 이루지 못한 것은 물론 2025년까지 70%에 도달하겠다는 것은 너무 낙관적인 계획이었던 것으로 나타나고 있다. 순수 중국 업체(SMIC, Huahong 등)를 기준으로 한 국산화는 아직 6% 정도에 불과하고, TSMC, SK하이닉스, 삼성전자 등 중국 진출 외자 업체를 모두 합쳐도 국산화율은 16% 정도에 불과한 실정이다. 이러한 중국 반도체 산업의 기대 이하 효과는 앞으로 미국의 견제가 더 강화되면서 지금보다 훨씬 험난한 길을 걸어야 할 것으로 전망되고 있다. 

2020년 5월 이후 화웨이는 반도체를 공급받지 못하고 있으며, SMIC는 네덜란드의 ASML이 생산하는 첨단 노광장비(EUV)를 수입하지 못해 첨단 반도체 생산이 어려운 실정이다. 아울러 반도체 칩 제조에 필수적인 소프트웨어(EDA)의 수출 통제도 추진 중이어서, 중국이 그나마 강세를 보였던 설계 부문에서도 복병을 만나게 됐다. 



미국의 ‘칩 4’ 동맹 제안 

이러한 가운데 미국은 반도체 생산의 안정화를 위한 공급망 형성을 위해 ‘칩(Chip) 4’ 동맹을 추진 중이다. 트럼프와 달리 가치와 동맹을 중시해온 조 바이든 행정부는 동맹국인 한국(메모리, 파운드리), 대만(파운드리), 일본(소재, 장비)과 함께 미국(원천기술, 장비, 팹리스)이 주도하는 반도체 공급망을 형성하겠다는 구상이다. 미국의 제안에 일본과 대만은 이미 가입을 확정했고 한국은 중국과관계를 고려해 아직 검토 중인 상황이다. 미국도 중국의 반발을 의식해 ‘칩 4’는 중국을 배제하는 것이 아니라 안정적 생산을 위해 공급망을 안정화하기 위한 동맹이라고 언급하고 있으나 중국의 참여를 용인할 계획은 없는 것으로 보인다. 오히려 중국을 배제하기 위해 고안된 동맹으로 보는 것이 타당하다. 지금 전개되고 있는 미·중 간 기술 패권 경쟁의 핵심은 반도체인데, 미래 산업 주도권을 넘겨줄 수도 있는 반도체 산업에서 중국을 견제하지 않고 중국과 함께 간다면 논리적으로 맞지 않다. 

한국도 결국은 참여할 것으로 전망되지만 겉으로나마 신중한 태도를 견지하는 것은 삼성전자 반도체 수출의 60%가 중국 시장일 정도로 중국 시장에 대한 의존도가 크기 때문이다. 한국이 중국 시장을 위해서 ‘칩 4’ 동맹을 포기한다면 그것은 현재의 시장을 위해서 미래 시장을 포기하는 것이나 마찬가지다. 한국이 반도체 강국이라고 하나 비메모리보다 규모가 작은 메모리 반도체에서 1등일 뿐이며, 설계-제조-검사-포장 등으로 이어지는 가치사슬 가운데 메모리 반도체 제조 분야에서만 세계 최고인 셈이다. 미국이 마음먹고 한국 반도체 산업을 고사시키고자 한다면 우리도 중국 반도체 산업처럼 미국으로부터의 기술 도입이 끊겨 매우 어려운 상황에 놓이게 될 가능성이 크다. 따라서 한국의 ‘칩 4’ 참여는 선택의 여지가 없는 상황이며, 우리는 오히려 미국이 중국의 반도체 산업 부흥을 막아주는 것을 활용해 우리와 중국 간의 반도체 산업에서의 기술 격차를 더욱 확대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공급망 동맹 협상에서 한국의 독자적 이익 확보해야 

미국이 중국과의 공급망 분리에서 가장 먼저 강조한 것이 반도체, 전기차 배터리, 의료기기, 희토류 등 네 개 품목이다. 이어서 추가로 검토, 추진하고 있는 분야가 통신 기술, 운송, 에너지, 식품 생산, 국방, 공중보건 등이다. 따라서 반도체 산업에서의 ‘칩 4’ 동맹, 인플레이션감축법(IRA)에서의 배터리, 핵심 광물(희토류, 리튬 등)에서의 안보 파트너십(MSP)뿐만 아니라 위에 언급한 통신 기술, 운송, 에너지 등 2차로 분리 추진 중인 품목에서의 동맹 등도 추가로 거론될 가능성이 크다. 

요즘 미국의 IRA 통과로 대미 수출하는 한국 자동차가 보조금에서 제외됨에 따라 한국의 이익이 침해당하게 됐다고 난리다. 이제 중국뿐 아니라 미국도 자국 산업을 육성하고 지키기 위한 산업 정책을 사용하고 있다. 산업 정책은 자국 산업을 보호하고 자국 기업을 키우는 정책이다. 자국 이익이 우선이고 그다음이 동맹이다. 냉혹한 국제 환경하에서 우리의 독자적 이익을 확보하기 위한 노력을 배가해야 할 중대한 시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