덩샤오핑 ‘경제발전’ 지침 버리고

정치·군사적 패권화 ‘가속 페달’

- 중국 광둥성 선전시 시내에서 시민들이 덩샤오핑과 선전의 전경이 그려진 간판 앞을 지나가고 있다. 간판 왼쪽 위에는‘당의 기본 노선을 유지하며 100년 동안 흔들리지 말자’고 적혀 있다.



중국 권력 핵심인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들이 지난 2010년 10월 1일 중화인민공화국 건국기념일을 맞아 베이징 톈안먼 광장에 있는 인민영웅기념비에 헌화하기 위해 걸어가고 있다. 맨 앞이 후진타오 국가주석. 중국이 지금의 경제대국이 된 것은 1978년 12월 말에 열린 중국공산당 중앙위원회 전체회의에서 실용주의자 덩샤오핑이 권력을 잡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덩샤오핑은 전임자 마오쩌둥이 1976년 사망하자 마오의 후계자 화궈펑을 무력화시키고 권력을 잡은 다음 우선적으로 국가목표를 뜯어고쳤다. 마오 시대 중화인민공화국의 국가목표는 ‘사회주의 국가 건설’과 ‘초영간미 군사비전(超英美 軍事備戰·영국과 미국을 제압하기 위한 전쟁에 대비하는 것)’이었다. 덩샤오핑은 마오의 그런 허황된 국가목표를 버리고, ‘하나의 중심, 두 개의 기본점(一個中心 兩個基本点)’이라고 새로운 국가목표를 제시했다.

가장 중요한 하나의 중심이란 ‘경제발전’이고, 두 개의 기본점이란 ‘4개항의 기본 이념 유지’와 ‘개혁개방의 견지’였다. 중국 인민들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경제발전을 이루는 것이라고 각인시키고, 사회주의 견지와 프롤레타리아 독재, 중국공산당의 통치, 마르크스·레닌주의와 마오쩌둥 사상 같은 이념의 실현은 경제발전 다음에 생각할 문제라고 분명히 정리를 해주었다.

중국이 바뀌기 시작한 것은 그때부터였다. 덩샤오핑은 자신이 권력을 잡은 뒤에도 전임자 마오의 초상화를 천안문에 그대로 걸어놓았지만, 중국인민들의 머릿속을 ‘경제발전이 제1의 중심’이라는 새로운 생각으로 가득 채워 놓았다. 중국은 그때부터 달라졌고, 30년 만에 경제대국으로 올라섰다. 덩샤오핑이 중국 인민들의 생각을 바꾸어놓았기 때문에 중국이라는 나라의 모습과 경제가 달라진 것이다.

그러나 요즘 후진타오의 중국은 차츰 차츰 덩샤오핑이 제시한 ‘하나의 중심’, 다시 말해 ‘경제발전이 중국 최고의 국가목표’라는 생각에서 조금씩 멀어져 가고 있다. ‘하나의 중심’에서 조금씩 이탈해서 ‘사회주의 재건과 초영간미 군사비전’ 쪽으로 이동해가려고 하고 있다.

21세기의 두 번째 10년의 첫 해인 지난 1월11일 로버트 게이츠(Gates) 미 국방장관이 중국을 방문하고 있는 가운데 쓰촨성의 활주로에서 날아오른, 중국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라고 주장하는 ‘젠-20(J-20)’의 검은색 동체는 중국 국가목표의 현 주소가 과연 어디인가를 다시 생각해보게 만들어주었다. 일본 니혼게이자이에 따르면 한 대 가격이 1억9000만달러(약 2000억원)나 되는 미국의 스텔스 전투기 F-22 랩터(Raptor)에 맞서기 위해 중국이 랩터와 유사한 J-20 전투기 개발을 앞당기는 데 공을 들이는 것을 보면 현재 중국의 국가목표가 아무래도 경제발전이 제1의 중심이라는 덩샤오핑의 지시에서 이탈하기 시작했다는 관측을 하지 않을 수 없게 한다.

더구나 뉴욕타임스와 월스트리트 저널에 따르면, 중국에 각종 무기체제를 수출하는 러시아조차도 최초의 스텔스기 시험비행을 한 것이 2010년 1월에 불과한데, 과연 러시아 무기의 소비국인 중국이 스텔스 전투기 시험비행을 앞당기기 위해 서두르는 것이 중국에 어떤 의미를 지닌 일인가를 생각해보지 않을 수 없게 만든다.

세계 각국의 무기 수출입과 국방비 지출에 관해 중립적이면서도 권위 있는 수치를 매년 발표하고 있는 스웨덴의 스톡홀름 평화연구소(SIPRI)의 온라인 데이터 베이스에 접근해보면, 중국은 2009년에 988억달러의 국방비를 지출했다. 이는 2000년 국방비 312억달러의 3.16배, 1990년 국방비 175억달러의 5.65배가 되는 수치다. 중국 국방비가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2009년에는 2%, 2000년에는 1.8%, 1990년에는 2.6%였으며, 대체로 2% 안팎을 유지하고는 있다. 이에 비해 미국은 2009년에 6632억5500만달러, 2000년 3772억2800만달러, 1990년 5045억3400만달러를 지출했다. 전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2008년 4.3%(2009년은 미발표), 2000년 3.0%, 1990년 5.3%였다. 일본은 2009년 468억5900만달러, 2000년 474억9600만달러, 1990년 428억4600만달러를 국방비로 썼다. 2009년의 경우 중국은 미국 국방비의 6.71분의 1에 해당하는 국방비를 썼지만, 일본 국방비의 2.1배나 되는 국방비를 지출했다. 중국은 2004년에 531억달러를 국방비로 써서, 일본의 482억2500만달러를 앞지른 이후 현재는 일본의 2배나 되는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 두 나라의 GDP 규모가 2010년 서로 비슷한 규모였던 점을 감안하면 중국이 일본보다 2배의 국방비를 지출하고 있다는 계산이 사실로 성립한다고 판단할 수 있다. 중국이 비록 GDP의 2% 정도를 국방비로 지출한다지만 일본과 서로 GDP 규모가 비슷한 처지에서 2배의 국방비를 지출한다는 점은 앞으로 중국경제에 미칠 영향과 관련해서 주목하지 않을 수 없는 포인트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중국의 국가목표가 차츰 경제발전 위주의 사고에서 이탈하는 조짐을 보이고 있다는 것은 경제발전에 원동력을 제공한 덩샤오핑이 1990년대에 소련과 동유럽 사회주의 정치체제가 무너지는 것을 보고 후배 국가지도자들에게 당부한 ‘도광양회 결부당두(韜光養晦 決不當頭·어둠 속에서 실력을 기르고 절대로 머리를 내밀지 말라)’라는 방침을 요즘 후진타오 측근들이 버리려고 하고 있는 흐름으로도 나타나고 있다. 덩샤오핑은 최소한 2020년까지는 이 ‘도광양회 결부당두’의 방침에 따라 중국이 조용히 경제실력을 기르고 국제사회에서 정치 군사적 주도권을 쥐기 위해 분란을 일으키지 말 것을 희망했었다.

 그러나 2008년 가을 미국발 금융위기가 전 세계에 확산되는 것을 본 현 후진타오 지도부는 “G2라는 말은 우리에게는 어울리지 않는다”고 하면서도 차츰 차츰 자신들이 미국과 함께 세계를 이끌고 가는 ‘초급 강대국(超級 强大國·슈퍼 파워)’이라는 말을 즐기고 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게이츠 미 국방장관이 베이징을 방문해서 후진타오와 회담을 앞두고 있는 시간에 ‘중국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라고 주장하는 J-20 시험비행을 하는 것으로, 미국과 한 판 겨뤄보겠다는 자세를 보여주고 있는 것이다. 국제정치를 전공하는 중국 지식인들과 3억명이 넘는 중국 네티즌들도 “이미 미국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슈퍼 파워가 된 마당에 도광양회 결부당두는 이제 버려야 한다”는 걱정스러운 흐름을 만들고 있다.

중국 최초의 스텔스 전투기라고 주장하는 J-20 개발이나, 우주공간을 통과하는 대륙간 탄도탄 개발, 위성 요격 미사일 개발 등 중국은 근년에 부쩍 미국의 군사력과 대립각을 세우는 국가전략을 과시하고 있다. 후진타오 국가주석 겸 중앙군사위 주석이 리드하는 국가목표 설정은 점차로 중국이 덩샤오핑의 평화발전 전략을 바탕으로 한 경제발전 우선 정책에서 떠나 마오쩌둥식의 ‘군사비전(軍事備戰)’ 쪽으로 이동하지 않을까 하는 걱정을 하게 만들고 있다.

중국이 이미 군사비를 GDP 규모가 서로 비슷한 일본의 2배나 쓰고 있다는 점이 중국경제에 부정적인 영향을 미치는 것 또한 우리 한국경제에 좋은 일이 아니라는 걱정도 안겨주고 있다. 역사는 시계추처럼 움직인다는 말이 있지만, 중국이 경제발전을 시작한지 30년 만에 시계추가 정점에 이르렀다는 오판에서 이제 다른 쪽으로 움직여가려 한다면 세계 경제에 앞으로 커다란 변화가 생기지 않을 수 없을 것이라는 예측까지 해보지 않을 수 없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