회사금고 ‘텅텅’ 비더라도

이익은 모두 직원과 나눈다



- 일본 안경체인 (주)21은 소비자에게도 이익을 간접적으로 나누기 위해 ‘최저가 정책’을 수년째 고집하고 있다. (주)21 안경매장.

‘성과(20%) 있는 곳에 보상(80%) 있다.’ 많은 CEO가 믿고 따르는 경영학의 기본원리다. 파레토는 이를 20대 80으로 봤지만 나날이 집중은 심화된다. 적자생존·승자독식의 시대인 것이다. 이런 이유로 일본에서도 1990년대 이후 미국식 성과주의가 대폭 수용됐다. 물론 성과주의엔 반발논리도 많다. 일본처럼 사회주의 이데올로기가 잔존한 국가에선 더욱 그렇다. 그럼에도 불구, 시각을 좀 넓히면 아직도 직원행복을 우선가치로 두는 기업이 많다. 안경체인점인 ㈜21도 이중 하나다. 

㈜21의 경영혁신은 상식파괴의 전형이다. 대신 그 자리엔 새로운 개념을 넣었다. 회사목표도 이익추구에서 직원행복으로 전환했다. 그러니 이익도 안 남기고 관리직도 없으며 노동목표(노르마)도 없다. 결과적으로 직원만족도는 일본 최고수준이다.

㈜21은 매출실적도 눈부시다. 2009년 결산연도(2009년 3월~2010년 2월) 매출액은 44억4876만엔에 달한다. 반면 당기순익은 2127만엔에 불과하다. 특이한 건 원가율 공개다. 2009년 매출원가는 32억702만엔으로 매출액의 72%를 차지했다. 상장기업 경쟁사(T사) 원가율(32%)보다 턱없이 높다. 

이는 ‘일본 최저가’를 추구하는 회사방침과 일치한다. 저가제공을 통한 고객만족이다. 회사에 이익을 남기지 않고 가격인하로 환원하는 전략이다. 회사 홈페이지에 소개된 판매가격 인하 노력은 한눈에 쏙 들어올 정도로 파격적이다. 가령 박막렌즈 가격추이를 보면 1988년 1만5000엔에 팔던 걸 2010년 5600엔까지 인하했다. 1990년대 이후 디플레가 있었고 엔고 환원세일 호재가 있었다 해도 상당한 노력이 분명하다. 무엇보다 경쟁사에선 뚜렷한 가격인하를 찾을 수 없다. 그러니 고객 발걸음이 문전성시인 건 불문가지다. 그 결과가 꾸준한 매출증대다. 그룹 전체로 따졌을 때 매출액은 86년 창업 당시 2억엔에서 현재 85억엔까지 늘어났다. 점포는 3개에서 130여개로 불어났고 종업원은 전체 550명에 달한다.

이익보다 직원 행복이 더 중요

㈜21이 직원행복을 최대가치로 둔 데는 창업 당시 경험이 한몫했다. 회사는 1986년 대형안경회사에 다니다 구조조정으로 잘린 4명의 퇴직사원이 설립했다. 구조조정의 경험은 가히 충격적이었다. 누구보다 열심히 일했지만 철저히 회사에서 버림받았기 때문이다. 다니던 회사가 경영 대물림을 단행한 게 단초가 됐다. 임직원의 존경을 한 몸에 받던 사장이 죽고 미국 유학을 마친 딸이 후계를 이으며 상당한 무리수를 뒀기 때문이다. 경영합리화를 이유로 강력한 구조조정을 단행한 것이다. 직원복리는 땅에 떨어졌고 고객만족은 후퇴했다. 이 과정에서 경영자의 중요성을 절감한 건 물론이다. ㈜21은 이에 대한 반발과 호구지책을 위해 퇴직사원이 출자해 만들었다. 10% 직원만 만족하는 미국형 경영보단 100% 전체직원이 행복한 경영모델을 실천하기 위해서다.

직원행복을 위한 장치는 곳곳에 설치됐다. 먼저 회사 사시(社是)부터 대놓고 직원·고객 최우선주의로 압축했다. 사원행복과 고객신뢰가 그 추구방향이다. 직원이 불행한데 고객행복이 실현될 턱이 없다는 이유에서다. 이는 세간의 고객만족 지상주의와는 다르다. 고객만족을 추구한다면서 정작 직원 노동 강도를 높이고 돈만 강조하는 회사가 적잖아서다.

때문에 ㈜21은 고객입장에서 판단할 수 있는 사원모럴을 보다 중시한다. 피부에 와닿는 직원·고객만족의 실현인 셈이다. 이를 위해 회사의 존재목표인 이익추구는 과감히 버렸다. 저가제공으로 이익을 덜 남겨 고객을 위하고 그래도 생긴 최종이익은 연간단위로 고스란히 직원통장에 입금한다. 회사금고엔 한푼도 남기지 않는다. “좋아하는 사업을 계속하기 위해 오히려 이윤을 남기지 않는다”는 게 최고경영자(CEO) 이케다 요시유키(池田義之)의 생각이다. 이익을 남기지 않는다는 경영방침은 사실 의심받기 딱 좋다. 믿기도 힘들거니와 꼼수일 수도 있어서다. 그래서 만들어둔 게 ‘완전한 투명경영’이다.

투명경영은 직원행복을 실현하는 ㈜21의 뼈대장치다. 실제 회사자료는 사내 웹에 100% 공개된다. 재무데이터부터 개별 점포매출·고객요구·불만사항 등 없는 게 없다. 여기엔 인사평가나 급여도 예외가 아니다. 경쟁사를 비롯해 외부로 사내정보가 유출될까 우려스럽기도 하건만 회사입장은 ‘쓸데없는 기우’란 의견이다. 되레 정보공개로 모든 걸 오픈하니 불만·갈등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직원행복을 위한 투명경영은 기업소유·지배구조와도 일맥상통한다. 회사는 사원에 의한 100% 공동출자·공동경영 형태다. 은행차입은 없다. ‘근로자=출자자’이기에 노사교섭도 없다. 본인 자금으로 직장을 떠받치기에 상사 눈치를 볼 이유도 없다. 인사평가도 전원 공개다. 인사는 금전적 리스크 부담정도와 개별업적으로 평가된다. 경영에 필요한 자금원이 되는 사내 예금에 출자한 금액과 업무내용·업적을 기초로 개별사원에 대해 절대평가를 실시한다.

투명경영은 비용절감에도 기여한다. ㈜21엔 영업일선을 지원하는 관리직이 없다. 인사·총무는 물론 사장실조차 없다. 여직원 8명이 그 역할을 전담할 뿐이다. ‘인사파괴’로 불리는 ㈜21의 핵심 경영전략이다. 대신 아웃소싱(하청) 및 인터넷조직을 가동해 인건비 등 경비절감을 실현한다. 재고관리는 개별점포에 위탁한다. 비생산적인 부문 해소를 통한 경영합리화다. 이때 본부 부문도 독립채산제로 운영된다.

이는 경영학계에서 최근 주목하는 첨단기법으로 자주 소개된다. 경영학계에선 “가격파괴가 되는 회사는 인사파괴도 가능하다”며 ㈜21의 발상전환에 힘을 실어줬다. 높은 원가율에도 불구, 거액상여를 제공하는 모순을 푸는 열쇠여서다. 의사결정도 꽤 파격적이다. CEO에겐 특별한 권력이 없다. 인·허가권을 소수가 쥐면 문제가 생긴다고 봐서다. 대신 중요 사안을 가상공간에 공개회의로 부쳐 부인·반론이 없으면 찬동으로 간주하는 ‘묵인제’를 채택했다. 인터넷에서의 공개와 질의응답으로 저렴하고 빠른 의사결정도 가능해졌다. 인사파괴는 피라미드식 기존조직의 부작용을 창업멤버들이 뼈저리게 체험했기에 가능한 발상이었다.

직원채용은 다소 엉뚱하다. 일반직 채용공고에 회사사정을 대놓고 모두 노출한다. 가령 30세로 승급이 멈추기에 세대주로 가족부양을 해야 할 경우 입사를 재고하라고 권한다. 연공서열을 기대해 들어왔다 추후 후회할 수도 있기에 애초부터 있는 정보를 모두 알려주자는 차원에서다. 이와 관련해 후생성의 법률위반(남녀기회균등) 지적까지 받았지만 회사실정을 감춰 혼선을 야기해선 안 된다고 반박, 일부 문구를 고치는 걸로 대체하기도 했다. 사원의 교육시스템도 꽤 엄격하다. 고객클레임은 모두 공개해 전체직원의 케이스 스터디로 삼고 해당점포엔 옐로카드를 제시한다. 경고건수가 증가하면 광고지 삭감 및 배포금지 벌칙이 부과된다. 그래도 안 되면 해당자를 전근시키고 점포이름도 변경한다. 고비용의 내부감사보다는 실효성이 높은 고객의견을 중시한다. 상사·부하거부권이란 것도 있다. 함께 일할 동료를 고를 수 있는 제도다. 상생붕괴로 일할 맛이 나지 않을 경우 전속·전근희망을 할 수 있다. 이때 잔류·전출자 누구에게도 책임은 묻지 않는다. 개인 가치관에 따라 근무형태(휴가·근무지·독립여부 등)를 고를 수 있다. 퇴직금이 없기에 중도 퇴직도 가능하다.

- (주)21 체인점 모습.
- (주)21 체인점 모습.

4년마다 꼬박꼬박 CEO 교체

영속적인 기업경영을 위한 장치도 마련됐다. CEO 4년 교대제가 그렇다. 창업 당시 초기멤버 중 부문별 경험자는 모두 갖춰졌었다. 하지만 사장 경험자는 아무도 없었다. 고민 끝에 결국 최고연장자가 사장을 맡았다. 물론 경험상 사장 역할이 업적향상에 그리 결정적인 변수가 아닌 걸 배웠기에 큰 부담은 없었다. 대신 ㈜21의 사장도 특별업무는 물론 특별권한·보수자체가 없도록 조치했다. 자연스럽게 4년 교대제가 발생한 배경이다. CEO 등장에 따른 폐해도 파벌도 없는 이유다. ㈜21의 경영권 위양구조는 이른바 MBO(Management Buy-out)로 설명된다. 후배사원이 정년퇴직하는 선배사원의 경영권을 순차적으로 받는 방법이다. 자금조달을 외부기관에 의존하지 않기에 가능한 시스템이다. 선배사원의 보유주식은 사내 매도로 후배사원에게 넘겨진다. 액면이지만 주식보유만큼 일종의 퇴직금으로 활용할 수 있다. 그만큼 근로의욕은 증대될 수밖에 없다.

무이자·무보증·무담보 ‘3無’ 프랜차이즈

㈜21의 MBO식 경영위양이 가능한 건 회사에 이익을 남기지 않기 때문에 가능하다. 회사 이익이 없는 관계로 원활한 경영이양과 권력투쟁 배제 등이 최대 메리트다. 돈 많은 우량기업을 남기면 후세대에 흔히 갈등이 발생한다. 반면 이익이 없으면 주가는 액면 이하로 평가돼 후계자로의 바통 터치가 손쉬워진다. 게다가 자본금은 5000만엔으로 홀로 상속받아도 상속세가 제로다. 누가 CEO가 되건 부담이 없단 의미다. 또 매년 이익이 모두 정리되기에 배수진을 친 심정의 근무환경도 만들 수 있다. 요컨대 무능한 사장이 이어받지 못하는 어려운 기업체질이다. 반면 경영판단이 잘못되면 사원소득도 급감하기에 해임압박은 순식간에 나타난다. 봉사정신이 왕성하지 않으면 ㈜21 CEO로서의 삶을 버틸 수 없다는 의미다. 그렇다고 직영점만 챙기는 기업도 아니다. 가령 프랜차이즈 가맹수수료는 매출의 1%뿐이다. 프랜차이즈 확장전략엔 무이자·무보증·무담보의 자금지원도 기여한다. 경쟁격화로 고심 중인 인근점포에도 ㈜21의 저가상품을 그대로 공급한다. 사내외 반발이 적잖았지만 “우리만 싸게 팔면 그 이상 노력하지 않고 기술·접객품질도 떨어질 것”이라며 설득했다. 

파격엔 늘 염려가 뒤따른다. ㈜21도 마찬가지다. 가령 내부유보가 없다는 우려를 해보자. 통상 내부유보가 없으면 실적악화 때 이를 저지할 자금여력이 없다는 걸로 해석된다. 곧 기업도산이다. 이에 ㈜21의 대답은 신축적인 대응전략으로 충분히 난국타개가 가능하단 입장이다. 워크셰어링 등으로 동료를 지키는 시스템에 기초한 인건비 관련 지출 삭감정책이 그렇다. 구체적인 4대 대응전략도 소개했다. △제1탄(연간 800만엔까지 설정된 최고상여 감축 및 사내예금이율 10%에서 0%로 인하)→△제2탄(잔업·휴일근무 줄여 1인당 평균수당 161만엔 절감)→△제3탄(파트사원 근무시간 삭감)→△제4탄(설비투자 중지로 정률의 감가상각비 절약) 등의 순차방어막이 그렇다. 특히 상여는 애초부터 워낙 상한을 높게 설정해 비상시 감축여지가 충분하다는 게 회사측 설명이다. 이런 점에서 회사는 “내부유보는 없는 게 아니라 실은 임직원 본인들에게 있다”는 답변이다. 신용등급 등도 신경쓰지 않는다. 신용등급 자체가 주가등락에 따른 투기용도란 이유에서다. 주가차익이 아닌 주주배당이 진정한 투자란 얘기다. 더욱이 평균 2000만엔을 출자한 100명의 주주그룹이 있어 추가적인 일반투자도 불필요할 정도로 ㈜21의 자금여력은 탄탄하다고 덧붙인다.

 

 

 |  Tip. ㈜21 상여시스템  |

이익 전부를 직원에게 돌려줘서인지 ㈜21의 연봉수준은 굉장히 높다. 매스컴에선 “실적압박이 없는데도 보너스만 500만엔이나 받는 즐거운 회사”로 소개되기도 했다. 이 연봉시스템 역시 ㈜21만의 독특한 구조다.

대졸신입의 경우 월 21만엔으로 연봉은 281만엔에 불과하다. 경력자 연봉도 많지 않다. 경영위기를 대비해 최고월급도 27만엔으로 묶어뒀다. 여기엔 잔업비용까지 포함했기에 숙련기술자의 경우 타사보다 턱없이 낮다. 퇴직금이 있는 것도 아니다. 이때 중요한 건 상여로 불리는 보너스다. 업적에 비례하는 거액보너스가 그렇다. 회사 순이익이 전부 보너스 형태로 지급되니 결과적으로 임금수준이 높을 수밖에 없다. 이익이 남으면 회사는 광고증액·비품구입 등으로 경상이익을 제로로 맞춘다. 그리고 최종적으로 장부수치가 제로가 되도록 순이익 전액을 기말상여로 지급하는 식이다. 과거 3년까지의 적자상각과 계산착오를 대비해 약간의 흑자는 남겨두지만 장부금액은 제로가 원칙이다. 이 때문에 세무조사도 있었다. 돈을 적잖이 버는데도 법인세를 내지 않는 의심스러운 회사로 보여서다. “급성장으로 큰돈을 버는데 그걸 모두 사원에게 돌려주니 의심을 받는 게 당연했다”는 게 회사 설명이다.

CEO의 연봉 욕심도 없다. 사장 연봉은 상한 1000만엔을 설정해뒀는데 2010년의 경우 780만엔에 불과하다. “돈 욕심이 없는 사람이 있겠냐만 1년마다 실적에 걸맞게 높은 상여를 받기에 불만은 없다”는 게 CEO의 반응이다. 상여 이외의 파격적인 연봉벌충 장치도 있다. 사내예금이 그렇다. 사내예금의 경우 임직원이 여윳돈을 회사 운영자금으로 맡기는 제도다. 연 10% 이자를 지급한다. 은행에 예금하듯 사내에 저축해 추후 퇴직금처럼 활용하란 배려다. 제로금리 시중은행에 비하면 상당한 매력이다. 회사도 운영자금을 사내에서 모아 불필요한 조달비용은 낮추고 복리수준은 높이는 장점이 있다. 그래도 염려는 남는다. 주주직원과 일반직원·비정규직과의 연봉격차 우려다. 이를 위해 회사는 다양한 복지정책을 실시한다. 공헌이 있는 임직원에게 렉서스를 지급하는 등 사원만족을 위해 노력 중이다. 파트사원 임금수준도 높게 설정했다. 입사 때 1330엔의 시급은 10년 근속일 때 1520엔까지 뛴다. 퇴직금 매년지급 형태처럼 파트사원의 임금을 보장하는 조치다. 특히 ㈜21은 일본 회사 치고 드물게 남녀는 물론 시급·일급 무관한 동일노동·동일임금도 실시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