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라보까를 만든 주역인 베니또 낀껠라의 동상.
- 라보까를 만든 주역인 베니또 낀껠라의 동상.

우리는 흔히 다양한 민족이 섞여서 살고 있는 다민족 국가를 지칭하기 위해 ‘인종의 용광로’ 혹은 ‘멜팅팟(melting pot)’이라는 용어를 사용한다. 인종의 용광로란 다양한 인종과 문화를 녹여 하나의 문화와 정체성을 가진다는 뜻이다. 여러 인종과 민족을 사회로 통합하기 위한 미국의 이민자 동화정책을 상징하는 용어였다. 그러나 최근에는 다양한 문화와 인종이 어우러져 조화를 이루되 각각의 고유한 특징은 존중해야 한다는 의미에서 ‘샐러드볼(salad bowl)’ 혹은 ‘모자이크(mosaic)’라는 용어가 더 많은 관심을 받고 있다.

중남미 국가들은 1492년 콜럼버스가 첫발을 내 디딘 이래, 원래부터 이 땅의 주인이었던 원주민들, 유럽의 정복자들과 이민자들의 후손들, 유럽인들에 의해 농장의 노예로 끌려온 아프리카 흑인들, 그리고 최근에는 아시아계 이민자들까지 다양한 인종들이 공존하는 사회가 됐다. 한편에서는 원주민과 백인의 혼혈인 메스티소, 흑인과 백인의 혼혈인 물라또, 원주민과 흑인의 혼혈족인 삼보가 만들어지고 또 다른 한편에서는 고유의 혈족이 유지되면서 중남미는 인종적으로 가장 다양하고 풍부한 지역이 됐다.

‘엄마 찾아 삼만리’의 부둣가 마을
섞이고 또 버티기를 반복한지 500년이라는 시간이 흐른 지금, 어느 한쪽에 빙점(섭씨 0도)을 찍어 이들의 정체성을 규정한다는 것은 의미가 없을 만큼, 이 지역에 오면 데자뷔처럼 다른 것 같으면서도 왠지 모르게 친숙하고, 새로운 것 같으면서도 왠지 오래된 익숙함이 느껴지는 창조적이면서도 고유한 문화와 사람들을 만날 수 있게 됐다. 멜팅팟 속에 빠진 샐러드볼이라고나 할까. 이러한 특징을 지닌 가장 대표적인 지역 중 한 곳이 바로 아르헨티나의 라보까(La Boca)라는 지역이다. 

스페인어로 ‘입’이라는 뜻을 가진 라보까는 리아추엘로(Riachuelo) 강물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젖줄이라 할 수 있는 리오 데 라 쁠라따로 흘러들어가는 입구에 위치해 있어서 붙여진 이름이다.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의 발전은 리아추엘로 강 입구에 항구가 번성하면서 시작됐다. 1970년대 유소년기를 보낸 40대들이라면 누구라도 당시 최고 인기를 누렸던 애니메이션 ‘엄마 찾아 삼만리’를 기억할 것이다. 라보까 지역은 바로 이탈리아에 살던 주인공 마르코가 돈을 벌기 위해 아르헨티나로 떠난 엄마를 찾아 헤매던 항구마을이었다.

비만 오면 쉽게 범람하던 지역이라 사람이 살기에 썩 좋은 곳은 아니었다. 그러나 항구를 중심으로 관련 산업들이 많이 생겨났고, 배의 이동이 많아지면서 항구 주변으로 가난한 노동자들이 몰리기 시작했다. 특히 이탈리아 제노바 출신의 항만 노동자들이 공동주택에서 모여 살기 시작하면서 라보까는 제노바의 색채가 짙은 뱃사람 마을이 됐다. 라보까는 비록 수면이 얕아서 큰 배가 진입하기에 어려움이 많았지만, 항상 부에노스아이레스 인근 천연의 항구였고 19세기 말까지 가장 중요한 항구로 기능했다.

이탈리아인들이 모여서 살게 되면서, 라보까는 이탈리아인들 고유의 특성과 문화로 채워졌다. 1860년대 세계경제에 통합된 아르헨티나는 대량이민을 받아들였다. 그러나 토지소유에 대한 보장을 하지 않음으로써, 애초 정치 지도자들이 희망했던 서부와 북부유럽 이민자들을 유치하고자 했던 이민정책은 실패했다. 대신 삶의 질이 낮았던 이탈리아나 스페인에서 이민자들을 모집했다. 자기 소유의 땅을 한 평이라도 갖는 것이 소원이었던 이민자들은 아르헨티나에 가면 당장이라도 지주가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있었다.

그러나 이미 토지는 소수에게 집중된 터라 이민자들이 지주가 될 가능성은 거의 없었다. 이들은 농장에서 노예와 같은 삶을 이어가거나 도시의 단순노동자로 일을 해야만 했다. 이들에게 아르헨티나의 지주는 동경의 대상이었지만, 땅을 뺀 아르헨티나 사회는 유럽보다 시시한 곳이었다. 그래서 유럽이민자들은 아르헨티나 사회로 동화되기를 꺼려했다. 그들은 유럽 국적을 그대로 유지하면서 ‘미니 이탈리아’ 그리고 ‘미니 스페인’을 만들었다. 자국의 언어와 지방언어를 사용했다. 교민 구호단체, 신문, 스포츠와 문화 클럽, 학교, 교회 등을 세웠다. 예술적 감성이 풍부했던 이탈리아인들은 이 지역을 노래, 음악, 시 그리고 미술과 조각으로 유명하게 만들었다. 또 나무와 양철 조각으로 만든 공동주택과 원색의 페인트로 칠한 형형색색 독특한 집은 다른 지역에서는 볼 수 없는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냈다. 이 집들은 주기적인 홍수에 대응하기 위해 쉽게 분해 조립할 수 있도록 만들어졌다.

- 라보까의 상징인 까미니또의 거리 풍경
- 라보까의 상징인 까미니또의 거리 풍경

가난에서 피어난 색채 예술
라보까의 집들은 금방이라도 부서질 것 같은 얇은 판자들이나 양철로 지어졌으며, 벽과 지붕 모두 강렬한 원색으로 칠해져 있다. 성의 없이 아무렇게나 칠한 듯하지만 묘하게 조화를 이룬 것이, 마치 색채 마술사의 손이 지나간 듯 황홀한 풍경을 만들어낸다. 이 집들의 색깔이 알록달록 할 수밖에 없었던 데에는 슬픈 속사정이 있다. 이 지역은 부에노스아이레스 시에서도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모여 사는 낙후된 지역이었다. 돈이 없어 자재를 살 수 없었던 노동자들은 배에서 쓰고 남은 나무와 양철 그리고 페인트를 가져와 집을 짓고 치장했다. 그러나 쓰다 남은 재료들을 사용하다보니 재료가 넉넉할 리 없었고 그 덕분에 집들은 나무판자와 양철로 얼키설키 이어서 만들었다. 페인트도 집 전체를 한 가지 색으로 칠하기에는 충분하지 않았다. 그래서 남은 분량만큼만 칠을 하게 됐고, 그 결과 라보까의 명물이 된 화려한 색채의 집들이 등장하게 된 것이다.

라보까는 화려한 색깔의 집들만큼이나 탱고의 발상지로도 유명하다. 돈을 벌어서 돌아오겠다는 약속을 하고 고향을 떠나왔던 이민자들의 일상은 고단했고, 생각했던 것만큼 많은 돈을 벌지도 못했다. 고향에 대한 향수, 미래에 대한 불안 그리고 노동의 고단함을 달래기 위해 밀롱가(선술집)에 모인 가난한 항구의 유럽노동자들이 아메리카와 아프리카의 리듬을 혼용해 만든 음악과 춤이 바로 탱고다. 그래서 탱고음악을 듣고 있으면, 가슴을 후벼 파는 듯한 반도네온(작은 아코디언과 같은 악기)의 처절하고 구슬픈 멜로디가 쓸쓸하고 고독하게 느껴진다.

탱고는 춤이라기보다는 스토리가 있는 연극에 가깝다. 라보까의 지저분하고 어두침침한 거리를 배경으로 한 가난한 사람들의 이룰 수 없는 사랑, 여자의 배신과 여자를 뺏어간 친구, 고향과 가족에 대한 그리움, 열심히 살아보고자 했지만 결국 사창가의 창녀로 전락한 여자의 슬픔 등. 탱고는 이렇듯 사랑과 슬픔 그리고 고독이 드라마틱하게 노래되고 있다. 가난하고 지저분한 라보까 태생이라는 ‘출신성분’ 때문에 그리고 교태스러운 몸짓의 ‘풍기문란 죄’로 한때 탱고는 아르헨티나 사회에서 철저하게 외면됐고 드러내서는 안 될 수치로 외면당했다.

그러나 아르헨티나에서 버림받고 전 세계를 떠돌던 탱고는 프랑스의 사교계에서 선풍적인 인기를 끌면서 다시 아르헨티나 상류층에 의해서 역수입됐다. 교태와 풍기문란이라는 죄목은 예술적 관능미 그리고 자유와 낭만이라는 이름으로 용서받았고, 아르헨티나의 문화를 상징하는 명물이 됐다. 탱고의 발상지답게 라보까 지역을 거닐다보면 탕게로(탱고무용수)들의 서로 주고받는 에로틱한 눈빛과 빠르게 엇갈리고 섞이는 현란한 다리동작, 한 다리를 높게 들어 올리고 나머지 한 다리로만 지탱한 터라 당장이라도 쓰러질 것만 같은 탕게라(여자무희)를 한 손으로 떠받치고 있는 남자 무용수, 흐느끼듯 애절한 반도네온 연주와 성악가의 멋진 탱고 노래를 노천카페에서는 물론 거리와 공원에서도 쉽게 마주칠 수 있다.

- 라보까의 집들은 아무렇게나 칠한 듯하지만 묘하게 조화를 이룬 색채가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 라보까의 집들은 아무렇게나 칠한 듯하지만 묘하게 조화를 이룬 색채가 독특한 풍경을 만들어 낸다.

노상박물관을 방불케 하는 문화예술지역
가난한 사람들이 울긋불긋 제멋대로 칠해 놓은, 자칫 도시의 흉물이 될 수도 있었던 이 마을이 부에노스아이레스의 대표적인 예술과 문화 그리고 관광지역이 됐다. 이는 이 지역 출신 화가 베니또 낀라(Benito Quinquela)가 불어넣었던 예술적 영혼과 생명력 때문이었다. 그는 부두, 선박, 선원 등 라보까의 일상을 화폭에 담았으며, 최초로 부에노스아이레스 모습을 화폭에 담은 화가 중 한 명이다.

낀라는 1950년대 방치돼 범죄와 악취가 풍겼던 이 지역을 청소하고 단장해서 ‘까미니또(작은 길이라는 뜻으로 탱고곡에서 유래)’라는 작은 동네를 만들어 노상박물관을 방불케 할 만큼 많은 예술가들의 조형 작품과 그림으로 거리를 채웠다. 까미니또 주변으로 많은 화실들이 들어서 있으며, 가난한 화가들이 그림을 내놓고 파는 노점상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길은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낡고 오래된 것은 새롭고 현대적인 것으로 바꾸고야 마는 요즘의 도시 미학과는 사뭇 다른 거리의 풍경이 큰 감동을 준다. 라보까는 보헤미안, 화가, 조각가, 음악가, 가수 그리고 전 세계의 관광객들이 어우러져 독특한 샐러드볼을 만들어 내고 있다.

까미니또 동네를 걷다보면 알록달록한 건물들 사이로 흘러나오는 오래된 반도네온의 구슬픈 멜로디, 가난 속에서도 저버리지 않았던 삶에 대한 희망, 이민자들의 고향에 대한 애절한 그리움이 느껴진다. 공동주택의 중앙에 위치한 마당에 들어서면 당장이라도 커피 한 잔 하고 가라며 손짓하는 그 시절의 이민자를 만날 것만 같기도 하다. 이 지역의 명물로 남아 있는 공동주택은 이제 기념품과 예술작품을 파는 쇼핑몰로 변신해 있다. 하지만 손잡이 하나까지도 옛날 그 정취를 그대로 유지하고 있다. 마당의 공동우물과 벤치도 그 옛날의 소박함을 그대로 담고 있다. 높은 담벼락에는 예술가들의 영혼이 깃든 벽화가 그려져 있고, 발콘에는 이 나라의 명물인 마라도나, 크리스티나 페르난데스 그리고 최근에는 프란시스코 교황이 손을 흔들어 관광객들을 맞이하고 있다.

라보까를 돌아보고 있노라면, 사람들의 마음을 끌기 위해 꼭 현대적이고 세련될 필요는 없다는 것을 느끼게 된다. 비록 낙후되고  후진적이라도 스토리가 있다면, 그리고 문화가 함께 한다면 얼마든지 최고가 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

가장 음산하고 어두운 지역에 예술적 영감을 불어넣어 스토리를 만들고 색깔을 입혀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최고의 명소로 만든 이들의 역발상은 낡고 오래된 것은 허물어내고 최첨단의 기술과 세련됨으로 단장하고야 마는 우리 방식에 적지 않은 교훈을 준다. 음악과 탱고 그리고 가난한 예술가들의 열정이 넘쳐나는 라보까 지역은 문화와 인종이 섞이고 어우러져 새로운 창조적 문화를 만들어내면서도, 그 안에서 본질적인 특성을 간직한 멜팅팟 속의 샐러드 볼이다.

1.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첫 번째 항구였던 라보까항구. 2. 가난한 화가들이 그림을 내놓고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길은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3. 라보까를 거닐다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탕게로(탱고무용수).
1. 부에노스아이레스의 첫 번째 항구였던 라보까항구.
2. 가난한 화가들이 그림을 내놓고 파는 노점상들이 즐비하게 늘어선 골목길은 이색적인 볼거리를 제공한다.
3. 라보까를 거닐다보면 쉽게 만날 수 있는 탕게로(탱고무용수).

 

※ 손혜현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 초빙연구원
아르헨티나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중·고교 시절을 보냈다. 중앙대 정치외교학과와 동 대학원을 졸업했고 이화여대에서 박사학위를 받았다. 2011년 재직 중이던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 연구교수직을 그만두고 아르헨티나 유학길에 올라 현재 아르헨티나 토르꾸아토 디 텔라 대학 정치학과 박사과정을 수료했고, 한국외국어대 중남미연구소 초빙연구원으로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