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대차그룹의 일관제철 사업에 대한 염원이 드디어 결실을 맺었다. 현대제철은 지난 1월5일 충남 당진에 건설하고 있는 일관제철소의 제1고로에 첫 불을 댕기는 화입식을 가졌다. 화입식은 철광석과 코크스가 장입돼 있는 고로의 하단부에 처음으로 불씨를 넣는 행사다. 이는 일관제철소의 심장인 고로가 본격적으로 가동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로부터 9일이 지난 1월14일, 쇳물이 여러 단계를 거쳐 최종 제품인 열연강판과 후판으로 처음으로 탄생했다. 철광석으로 쇳물을 만들어 철강제품을 만드는 소위 ‘일관제철’이 된 것이다.

여의도 2.5배 부지에

친환경 녹색제철소 우뚝

밀폐형 원료 처리로 환경오염 원천 차단가스 활용해 인천시민 1년 쓸 전력 생산
밀폐형 원료 처리로 환경오염 원천 차단
가스 활용해 인천시민 1년 쓸 전력 생산

지난 1월14일 오전. 1시간30분가량 달렸을까. 서해안고속도로 송산IC를 빠져 나오자 산업단지에 동부제철곂聘뵈퓖동국제강 공장이 보였다. 몇 년 전만 해도 텅 비었던 산업단지에 200여 철강 업체들이 입주했다고 한다. 현대제철소가 들어서면서 당진 지역이 ‘신철강벨트’로 부상하고 있는 것을 실감할 수 있었다.

도로 옆 주유소에는 ‘현대제철 직원 1ℓ당 40원 할인’이라는 커다란 현수막이 붙어있었다. 이 지역의 주유소뿐만 아니라 식당 등에서 ‘현대제철 직원 모시기’가 한창이라는 것이 짐작된다. 현대제철이 당진의 지역경제 활성화에 한 축을 담당하고 있다는 것을 엿볼 수 있었다.

충남 당진은 지리적 여건에서 철강 산업 입지로 최적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당진은 중부해안권의 중심에 있어 육곀滿?교통의 요지다. 서울에서 2시간 이내 거리에 있으며 중국과도 인접해 있다. 원료의 수입과 제품 수출에 유리한 여건이다.

특히 현대기아차에 자동차용 열연강판을 주로 공급하게 될 현대제철로서는 입지 조건이 이보다 좋을 순 없다. 오명석 제철사업단 전무는 “현대자동차의 아산공장과 기아자동차의 화성공장이 30분 이내 거리에 있어 물류비 절감도 상당할 것으로 기대한다”고 말했다.

제철소로 들어섰다. 부지는 740만 평방미터. 여의도의 2.5배 넓이다. 본관에는 제철소 전경이 한눈에 들어오는 항공사진이 여럿 걸려있었다. 염전과 갯벌이었던 곳은 메워져 공장이 들어섰고, 제철소 부지 가운데 휘돌아 관통하던 국도는 외곽으로 자리를 옮겨 일직선으로 곧게 뻗어 있었다.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는 오는 4월 완공을 앞두고 공사가 마무리 단계였다. 종합공정은 96%를 넘어섰다. 이 제철소를 짓기 위해 48만6000대의 건설장비가 동원됐으며, 월 평균 15만여 명의 건설인력이 투입됐다고 한다.

현대제철이 기존 일관제철소와 가장 크게 차별화되는 점은 세계 최초의 ‘녹색제철소’라는 것이다. 현대제철이 친환경 설비를 갖추기 위해 쏟아 부은 돈은 5300억원. 전체 투자비용 5조8400억원의 9%에 해당한다.

오염물질 배출 최대한 억제

현대제철은 일관제철 사업부지 조성공사에 돌입한 이후 2007년 7월 친환경 설비인 밀폐형 원료처리시설 착공식을 가장 먼저 시작했다. 이는 정몽구 회장의 강한 신념에서 비롯된 것이다.

정몽구 회장은 2006년 10월27일 일관제철소 기공식에서 “무엇보다 오염물질을 배출하는 기존 공장에 환경설비를 설치해 대응하는 사후적 개념이 아니라, 설계단계에서부터 최신의 친환경 설비와 환경오염 방지 기기들을 도입해 지역과 상생하는 친환경적인 일관제철소를 건설할 것”이라고 밝힌 바 있다.

해안에는 철광석과 원료탄겮?맑?등 원료 수입 전용 부두로 활용될 10만 톤급과 20만 톤급 각 1선석 부두가 새로 들어서 있었다. 기존 부두와 함께 총 4선석의 부두는 길이 1240m, 부지 34만3200평방미터의 규모다. 특히 최대 25만 톤급 대형 선박의 접안이 가능하며, 조수간만의 차이가 큰 서해안의 특성을 감안해 선박 접안 안벽의 높이가 33m에 달한다. 안벽 높이로는 국내 최고다. ‘서해안은 조수간만의 차가 심해 10만 톤급 이상의 대형 선박이 접안할 수 없다’는 통념을 깬 것이다.

제철원료를 하역겴抉?보관하는 시스템은 모두 밀폐형이다. 2000억원이 투입된 부두에는 거대한 하역기가 로봇처럼 서있었다. 하역기는 모두 5기. 가장 큰 하역기의 경우 시간당 3500톤을 하역할 수 있다고 한다. 20만 톤급 화물선의 경우 이틀이면 하역이 가능하다.

항만에서 밀폐형 연속식 하역기로 하역된 철광석과 유연탄 등 제철원료는 밀폐형 벨트컨베이어를 통해 이송된다. 사방이 막힌 터널에 벨트컨베이어를 설치해 먼지와 소음을 원천적으로 차단한 것이다. 총 연장길이가 35㎞에 달하는 벨트컨베이어를 따라 가자 거대한 원형돔이 나타났다.

제철원료를 보관하는 저장고로 역시 완전 밀폐형으로 건설됐다. 원형저장고 3동과 선형원료저장시설 4동의 건설이 거의 마무리된 상태였다. 3기의 원형저장고와 4기의 선형원료저장시설을 합칠 경우 철광석 192만 톤, 석탄 80만 톤, 부원료 25만 톤 등 약 45일분의 제철원료를 보관할 수 있다.

밀폐형 원형돔 지붕은 지름 130m, 높이 65m의 초대형 크기다. 흡사 관중석 없는 야구장을 닮았다. 높이 60m의 거대한 원료 적치겫櫓瘦璲?한가운데 버티고 서있었다. 원료 적치겫櫓瘦穗?원료를 쌓고, 적치해둔 원료를 다시 고로로 보내는 역할을 한다. 철광석이 거대한 산 모양으로 쌓여 있었고, 천장의 채광창으로 햇빛이 쏟아져 들어왔다.

일반적으로 일관제철소는 철광석과 유연탄 등 제철원료를 야외에 쌓아 보관한다. 제철소는 해안에 접해 있기 때문에 심한 바닷바람이 불면 이들 제철원료의 미세한 가루가 바람에 날려 인근 지역을 오염시키는 환경문제가 발생하곤 한다. 이 때문에 제철원료 표면에 경화제를 뿌리고 야적장 주변에 고가의 방진망을 설치하지만 완벽한 해결책은 되지 못한다.

밀폐형 저장시설은 야외에 적치해 두는 것보다 원료를 2.5배나 많이 저장할 수 있으며, 기상 조건에 따른 운전 제약도 없어 관리비용도 절감할 수 있다. 현대제철은 고정관념을 깨고 제철원료를 전량 옥내에 보관한다는 발상의 전환을 통해 일석삼조의 효과를 거두고 있는 것이다. 오명석 전무는 “벌써부터 석탄을 원료로 사용하는 발전소와 시멘트 회사, 해외 일관제철소에서 깊은 관심을 보이고 있다”고 말했다.

설계부터 친환경·재활용 시설 도입

최근 화입과 동시에 생명을 얻은 고로가 보였다. 한 번 불을 지피면 100년 동안 꺼지지 않는다는 제철소의 심장이다. 철광석을 녹여 선철을 만드는 제선공정의 핵심설비다. 현대제철의 고로는 내용적 5250㎥, 최대 직경 17m, 높이 110m의 대형 고로로 세계 최고 수준의 엔지니어링이 도입됐다.

고로는 소결광과 코크스를 원료로 사용해 쇳물을 만든다. 여기서 나온 쇳물은 다음 공정인 제강공장으로 보내져 불순물을 제거하고 강철로 만들어진다. 이후 연속주조 공장에서 슬래브(Slab)로 만들어진 뒤 열연공장과 후판공장으로 보내져 최종 제품인 자동차용 열연강판과 조선용 후판으로 탄생된다. 10m짜리 슬래브는 최대 2㎞까지 늘어난다.

1고로에는 새하얀 수증기가 뿜어져 나오고 있었다. 고로에서 쇳물을 받은 용선차가 제강공장으로 천천히 움직였다. 용선차는 어뢰를 닮아 토피도카(torpedo car)라 불린다. 최소 1500도가 넘는 초고온의 쇳물을 옮기는 특수차량이다. 쇳물이 가득차면 무게는 350톤에 달한다. 이 용선차에도 친환경 기술이 접목돼 있다. 이동 중 분진을 방지하기 위해 가스방지제를 첨가했다.

고로 역시 정몽구 회장의 환경경영 철학을 반영해 최신 친환경 기술이 적용된 설비로 만들어졌다. 오명석 전무는 “고로뿐만 아니라 일관제철소 개별 공장에도 설계단계부터 최신의 친환경 설비와 환경오염 방지기기, 재활용 설비 등을 도입겙〉옳構?있다”고 말했다.

배기가스의 경우 굴뚝에 자동측정장치를 부착해 실시간으로 오염 정도를 감시겙桓?構?있다. 특히 대기오염물질의 처리가 가장 어려운 소결공정 배기가스의 경우 미세먼지는 전기집진기로 제거하고, 오염물질인 황산화물은 2단계의 정화설비를 거쳐 규제치보다 훨씬 낮은 농도의 배기가스를 방출한다.

오폐수 또한 전처리 과정과 고도처리시설을 통해 재이용하고, 오염물질이 제거된 물을 해안선에서 300m 떨어진 해저에 방류하는 방식을 채택해 해양오염을 방지하도록 했다.

현대제철소는 고로 등 주요 생산 공정에서 발생하는 각종 가스와 열기를 최대한 모아 자체 발전소를 가동하는 동력으로 활용할 계획이다. 자체 발전소는 한창 공사가 진행 중이었다. 발전소가 완공되면 고로와 코크스 설비 등에서 발생하는 고온의 가스를 활용해 연간 270MW의 전력을 생산할 수 있다. 이는 인천시민 전체가 1년 동안 사용할 수 있는 전력이다.

고로 및 제강공정에서 나오는 부산물인 슬래그 역시 시멘트나 골재 등으로 재활용된다. 슬래그는 연간 354만 톤이 발생한다. 부산물 중 가장 양이 많다. 66㎡ 아파트를 짓는데 약 54톤의 골재가 소요되는 것을 감안하면 매년 66㎡ 아파트 6만5000가구를 지을 수 있는 양이다.

제철소 완공 따른 수입 대체 효과 80억달러

현대제철은 극심한 경기 침체로 전 세계 철강 업체들이 투자를 유보하거나 축소하는 상황에서도 과감하게 일관제철소 건설을 진행했다. 이로 인한 신규 일자리 창출 및 중소기업 육성효과는 엄청나다.

국내 한 연구소 자료에 따르면 현대제철 일관제철소의 직간접 고용유발 효과는 17만 명에 달한다. 800만 톤 규모의 일관제철소가 가동되면 총 1조7000억원의 중소기업 매출 창출효과가 발생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우리나라는 1인당 철강 소비량 세계 1위, 조강 생산량 세계 6위의 철강강국이다. 하지만 쇳물을 생산하는 상공정 설비의 부족으로 연간 2000만 톤이 넘는 소재용 철강재를 일본과 중국 등지로부터 수입하고 있다. 2008년에는 무려 조강 생산량 5526만 톤의 52.3%에 달하는 2894만 톤의 철강재를 해외에서 수입했다.

그 결과 대일 무역적자 327억달러 가운데 78억달러가 철강부문에서 발생했다. 중국산 철강재 수입량이 우리나라 전 철강재 명목소비의 24%를 차지할 정도로 심한 무역 불균형을 이루고 있다.

현대제철은 1고로의 본격적인 가동으로 연간 400만 톤 규모의 열연강판 및 후판 생산이 가능해졌다. 내년에 2고로까지 가동하게 되면 총 800만 톤의 고급 철강재가 국내에 공급된다. 이를 통한 수입대체효과는 80억달러에 달한다. 현대제철이 생산하는 고급 철강재는 조선겙÷?기계겴湄온?등 철강 다소비 산업의 안정적인 소재 조달은 물론 경쟁력 향상을 견인하게 된다. 현재 30위권에 머물고 있는 현대제철의 조강 능력은 2015년 세계 10위권에 들어설 것으로 기대되고 있다.

Interview   오명석 제철사업단 전무

“한 치의 오차 없이 공사 진행…운영도 성공적으로 할 것”

“화입식 100일 전부터 퇴근한 적이 없어요. 매일 아침 6시에 회의하고, 공사 진행과정을 점검했지요. 그렇게 전 임직원이 매달린 덕분에 2006년 기공식 이후 당초 계획에서 한 치의 어긋남도 없이 공사가 진행될 수 있었지요.”

오명석(52) 제철사업단 전무는 특히 최고경영자인 정몽구 회장이 일주일에 2~3번씩 건설현장을 직접 방문해 임직원들을 격려한 것도 큰 힘이 됐다고 강조했다. 정몽구 회장은 일관제철소 각 공장들이 윤곽을 드러내고 실질적으로 설비가 설치되기 시작한 지난해 하반기부터는 주말에도 수시로 건설현장을 방문해 임직원들에게 열정을 불어 넣었다고 한다.

오 전무는 일관제철소 건설 경험이 아주 없음에도 불구하고 고로 가동까지 당초 계획했던 공사일정이 한 치의 오차 없이 진행돼 왔다며 이는 현대제철이 일관제철소 건설은 물론 운영을 성공적으로 수행할 수 있는 능력을 충분히 가지고 있다는 사실을 입증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오 전무는 일관제철 사업 추진을 통해 현대제철이 수익성을 높이는 부분도 있지만 자동차용 강재의 개발을 통해 현대기아차와의 시너지를 극대화할 수 있을 것이라며 이를 통한 현대기아차의 경쟁력 제고도 기대된다고 말했다. 

“자동차 소재 개발이 이뤄져야 자동차 산업이 동반 발전할 수 있다는 것이 정몽구 회장의 신념입니다. 현대제철 일관제철소는 향후 자동차 소재 전문 제철소를 목표로 자동차용 강재의 품질과 가격 경쟁력 확보에 총력을 기울일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