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메릭 마케팅이 인기다. 특허청에 따르면 숫자 상표는 1999년 이후 연평균 1000건 이상 등록될 정도로 인기를 끌고 있다. 뉴메릭 마케팅은 생활 리듬이 빨라진 현대인들에게 이미지를 단번에 전달할 수 있다는 장점이 있다. 수리 인지 심리학(Numerical cognition) 전문가인 석관호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이미지는 연상의 집합이기 때문에 이미지를 각인시키는 데는 연상 속도가 빠른 숫자가 효과적”이라고 설명했다. 석 교수는 “제품 속성을 소비자가 좋아하는 숫자와 연결시키면 긍정적 이미지를 주게 된다”며 “숫자는 과학적 신뢰도를 높여주기 때문에 제품이 차별화됐다고 주장할 때도 숫자 정보를 제시하면 소비자들이 신빙성 있게 받아들이는 효과가 있다”고 말했다.
네 자리 이상 숫자, 기억 힘들어
그러나 실패 사례도 있다. 코카콜라는 2003년 성장기 발육 기능 음료 ‘187168’을 출시했다. 10대 청소년들이 선망하는 키가 남자는 187cm, 여자는 168cm라는 점에 착안한 제품명이었다. 하지만 소비자들의 반응이 냉담해 결국 생산을 중단했다. 뉴메릭 마케팅이 만능 열쇠는 아니라는 얘기다. 2005년 한국마케팅연구원 보고서에 따르면, 네 자리 이하의 짧은 숫자가 마케팅에 효과적이다. 긴 숫자는 단번에 기억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또한 사람들은 자신과 관련 없는 메시지에는 호기심을 가지기 어렵다. 그러므로 긍정적 지각 효과를 얻으려면 소비자와 유관한 메시지가 숫자에 담겨 있어야 한다. 이에 더해 숫자로만 이루어진 경우보다는 숫자와 문자가 결합된 알파뉴메릭(Alpha numeric)이 이미지 연상 효과가 크다. 2011년 중앙대학교 산업디자인학과 연구 결과에 따르면, 시각 기호가 숫자로만 이루어지면 숫자의 상징성에만 치중하게 해 소비자에게 혼란을 준다고 한다. 이제 ‘187168’이 왜 실패했는지 알 수 있다. 먼저, 제품명이 여섯 자리 숫자로 너무 길다. 또한 10대들의 암호처럼 보여 주요 타깃인 주부들에게 호응을 얻지 못했다. 마지막으로, 제품명이 숫자로만 이루어져 이미지 연상 효과가 떨어진다. 뉴메릭 마케팅 성공 조건을 정확히 반대로만 적용한 셈이다.

● 3초 보습 화장품
‘3초 보습법’은 지난 2010년 10월 한 공중파 예능 프로그램에서 처음 등장했다. 방송 중 유명 여배우들의 전속 메이크업 아티스트는 배우 김남주의 미용 비법이라며 3초 보습법을 소개했다. 세수를 할 때 피부를 감싸고 있던 기름막이 씻겨나기 때문에 세안 후 3초 안에 화장품을 발라 수분 손실을 막아야 한다는 내용이다. 방송 직후 ‘김남주 보습법’으로 불리며 화제가 되자 화장품 업계에서는 앞다투어 3초 보습 전용 제품을 내놓았다. 이 중 오휘 ‘셀파워 넘버원 에센스’와 이니스프리 ‘더 그린티 시드 세럼’이 대표적이다. 오휘 ‘셀파워 넘버원 에센스’는 출시 3년만인 지난해 매출 1000억원을 돌파했다. 이니스프리가 지난 2010년 선보인 ‘더 그린티 시드세럼’도 30초당 한 병씩 판매되며 올해 2월까지 총 판매수량이 200만 개를 넘어섰다. 이 가운데 아예 3초를 제품명으로 내건 제품도 나오고 있다. 이마트는 화장품 전문 제조기업 엔프라니와 손잡고 ‘솔루시안 3초 세럼’을 선보였다. 이 제품은 올해 1월 출시 이후 현재까지 6만 개 이상 판매됐고, 7월 말 기준 총 11억 이상의 매출을 기록했다.
● 46cm
문화 인류학자 에드워드 홀은 사람 사이에 친밀감과 유대감을 형성하는 거리가 46cm라고 발표했다. 그러나 상대방과 아무리 친해지고 싶어도 구취(口臭·입 냄새)가 있으면 가까이 다가가지 못하는 법이다. 이에 따라 LG생활건강은 숫자 46을 브랜드 네이밍에 활용해 구강 제품 브랜드 페리오의 하위브랜드인 ‘페리오 46cm’를 만들었다. 스토리텔링 기법이 가미된 브랜드명 ‘페리오 46cm’에는 다른 사람과 가까워질 수 있도록 구취를 제거한다는 이야기가 담겨 있다. 김기현 LG생활건강 홍보팀 사원은 “다른 구강 제품 브랜드 이름이 ‘화이트’, ‘클린’같은 단어로 기능적인 면을 강조하는 것과 달리 LG생활건강은 숫자를 차용한 감각적 브랜드명을 정해 차별화했다”고 말했다. 페리오는 46cm 제품이 6초당 1개씩 판매되는 대성공을 거두며 현재 국내 시장 점유율 1위를 지키고 있다.

2. ‘솔루시안 3초 세럼’은 이마트가 엔프라니와 합작해 출시한 3초 보습법 전용 제품이다.
● 7even
한국야쿠르트 세븐(7even)은 2012년 출시 이후 1년 만에 매출 1000억원을 돌파한 프로바이오틱스 유음료다. 프로바이오틱스란 건강에 도움이 되는 유익균을 말한다. 락토바실러스와 비피더스 등의 유산균이 대표적인 프로바이오틱스다. 특히 갓 태어난 아기는 엄마의 자궁에서 장속으로 공급받은 프로바이오틱스 덕분에 세균에 저항할 면역력을 얻는다. 이에 따라 한국야쿠르트는 신생아의 장에 존재하는 7종의 프로바이오틱스를 추출해 발효유 세븐(7even)을 개발했다. 이배영 한국야쿠르트 홍보팀 주임은 “해외에서 유산균주를 수입해 만들던 종래의 발효유와 달리 세븐에는 국내 기술로 추출한 프로바이오틱스 7종이 함유돼있다”며 “이를 강조하기 위해 7even이라고 이름 지었다”고 말했다. 한국야쿠르트는 7even 성공에 힘입어 ‘세븐 키즈’, ‘얼려먹는 세븐’ 등 제품군을 확장했다. 지난 8월 18일에는 저당 발효유 ‘세븐 허니’를 새로 선보이기도 했다. 또한 한국 프로야구 타이틀 스폰서십을 통해 2014년 프로야구 공식 타이틀 명칭을 ‘2014 한국야쿠르트 7even’으로 확정하는 등 적극적인 홍보를 이어나가고 있다. 한국야쿠르트는 올해 세븐 목표 매출액을 1500억원 이상으로 잡고 있다.
● 43203177
‘43203177’은 언뜻 봐서는 무의미한 숫자를 나열한 듯하다. 그러나 걸그룹 ‘레드벨벳’의 팬이라면 자연스레 ‘아이린, 슬기, 조이, 웬디’를 떠올리게 된다. 이들은 모두 레드벨벳의 멤버들이다. SM엔터테인먼트는 신인 그룹 레드벨벳 홍보를 위해 뉴메릭마케팅을 적극 활용하고 있다. 그 일환으로 멤버마다 아이린은 43, 슬기는 20, 조이는 31, 웬디는 77이라는 숫자를 무대 의상에 큼지막하게 넣었다. 이지선 SM엔터테인먼트 홍보팀 사원은 “신인 그룹이다 보니 대중들이 더 잘 알아볼 수 있도록 숫자를 정했다”며 “멤버들이 좋아하는 숫자를 각자 선택했기 때문에 멤버들의 아이덴티티를 구현하는 장치로 효과적”이라고 밝혔다. 레드벨벳은 데뷔곡 ‘행복’ 음원이 지난 8월4일 공개 직후 지니 실시간 차트 1위, 멜론 차트 7위에 오르며 인기를 끌고 있다. SM엔터테인먼트의 또 다른 그룹 엑소(EXO) 역시 1집 ‘으르렁’ 활동 당시 멤버 의상 마다 각각 다른 숫자를 새긴 바 있다.

2. CJ제일제당은 빅데이터를 이용해 2시16분 프로모션을 진행했다.
● 2시16분
CJ제일제당은 포털사이트와 SNS 게시물 6억 5000만여 건을 분석한 결과 월요일 2시16분에 ‘피곤하다’ ‘힘들다’ 등 부정적 내용이 평상시보다 10배 이상 많이 게시된다는 점을 알아냈다. 이어 피곤할 때 단 음식이 당긴다는 점에서 착안해 ‘피곤한 월요일 2시16분, 푸딩하자!’ 라는 메시지를 페이스북 댓글로 남기면 추첨을 통해 쁘띠첼 스윗푸딩을 증정하는 이벤트를 벌였다. 김현동 CJ제일제당 홍보팀 과장은 “주요 타깃인 20~30대 여성 대부분이 SNS 사용자이기에 온라인 이벤트 반응이 좋았다”며 “2시16분 마케팅은 쁘띠첼이 달콤한 디저트라는 이미지를 굳히는 데 도움이 됐다”고 말했다. 현재 CJ제일제당은 스윗푸딩 프로모션 성공에 힘입어 빅데이터 분석 프로젝트를 90건 이상 진행 중이다.
● 16°
오랄비 칫솔이 20년 넘게 업계 1위를 달리고 있는 비결 역시 숫자다. 한국P&G 오랄비는 60여 년의 연구 끝에 칫솔모가 16°(도)로 기울어졌을 때 가장 효과적으로 양치할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아냈다. 칫솔모가 빗살 모양으로 살짝 기울어지면 치아 틈새 깊숙이 침투할 수 있어 닿기 어려운 부분의 플라크도 제거해주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오랄비는 16°를 황금각도라고 부르며 강조하고 있다. 지난 7월부터는 배우 지성을 광고 모델로 기용해 16°의 차이가 치아 건강에는 큰 차이를 만든다는 내용의 홍보도 펼치고 있다.
[동·서양인이 좋아하는 숫자는?]
중국인 “숫자 8 보면 복 받는다”
롯데 ‘자일리톨 333’, 맥도날드 점심 3000원 프로모션, 맥킨지(McKinsey)의 매직 넘버 3. 이들의 공통점은 제품·서비스에 숫자 3을 적용했다는 점이다. 기업들은 3이 선호도가 높고 전달력도 뛰어나다는 이유로 마케팅 전략에 두루 활용한다. 3뿐만 아니라 5, 7 등도 자주 쓰이는 숫자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짝수보다는 홀수를 선호하기 때문이다. 홀수가 사랑받는 데는 이유가 있다. 음양오행에서 짝수는 음을 뜻하고 홀수는 양을 뜻한다. 또 서양 문화권에서 3은 완전함을 뜻하며 5는 중용의 의미가 있다. 7은 행운을 가져다준다고 알려졌다. 반면에 중국에는 ‘좋은 일은 겹으로 이뤄진다’는 속담이 있을 정도로 짝수를 선호하는 문화가 지배적이다. 그중에서도 가장 인기 있는 숫자는 8이다. 8의 중국어 발음 ‘빠’(ba-)가 부자가 된다는 뜻(發財)의 ‘파차이’(fācái)와 유사하기 때문이다. 베이징 올림픽 개막식이 2008년 8월8일 저녁 8시에 열렸던 사실만 봐도 중국인들의 8 사랑이 얼마나 큰지 알 수 있다. 이런 문화적 차이를 고려해 숫자 마케팅도 현지화(Localization) 할 수 있다. 기아자동차가 국내에서는 K시리즈를 홀수 모델명으로 출시했지만 중국 시장을 겨냥해 개발한 모델에는 ‘K2’라는 짝수 이름을 붙인 이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