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창업한 폴 앨런(왼쪽)과 빌 게이츠. 사진 블룸버그
마이크로소프트를 공동창업한 폴 앨런(왼쪽)과 빌 게이츠. 사진 블룸버그

“비호지킨림프종이 재발했다. 2009년 이후 치료법이 획기적으로 발전했기에 치료를 낙관한다. 당분간 공격적으로 치료할 예정이다.”

폴 앨런(65) 마이크로소프트(MS) 공동창업자 겸 벌칸 회장이 10월 1일(현지시각) 트위터를 통해 “개인적으로 새로운 도전을 시작한다”며 암 투병 사실을 알렸다. 비호지킨림프종은 림프조직이 악성으로 바뀌면서 생기는 종양으로 혈액암의 일종이다. 앨런 회장의 암 투병은 이번이 세 번째다. 1982년 호지킨림프종, 2009년 비호지킨림프종을 이겨냈다.


“우리의 영웅” 응원 쏟아져

그의 암 투병 소식이 언론을 통해 알려지자 각계의 응원이 쏟아지고 있다. 미식축구리그(NFL) 로스앤젤레스 램스 선수들은 지난 7일 그의 쾌유를 기원하는 녹색 리본을 달고 경기에 나섰다. 피터 캐럴 시애틀 시호크스 감독은 “우리의 영웅이 이번에도 거뜬히 이겨낼 것으로 믿는다”고 했다.

대서양 건너 영국에서도 아쉬운 탄성이 나왔다. 앨런 회장은 20억~30억달러로 추정되는 영국 프리미어 리그 첼시 구단의 유력 인수 후보였다. 과감한 투자로 성적을 끌어올리는 앨런 회장의 첼시 인수를 바라는 축구 팬들이 많았다.

러시아 석유 재벌이자 첼시 구단주인 로만 아브라모비치가 지난 3월 솔즈베리에서 일어난 러시아 이중 스파이 세르게이 스크리팔 암살 사건 연루자로 지목돼 영국 입국이 잇따라 거부되자 첼시 매각을 추진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MS 하면 흔히 빌 게이츠 회장을 떠올리지만 앨런 회장은 ‘마이크로소프트의 두뇌’ ‘아이디어 맨’으로 불리는 MS 공동창업자다.

1974년 12월 어느 눈 내리는 날, 그는 IBM의 알테어 8800이 출시된다는 소식을 커버 스토리로 다룬 잡지 ‘파퓰러 일렉트로닉스’를 손에 들고 빌 게이츠에게 달려갔다. 그리고 베이직 프로그램을 개발하자고 설득한 장면은 ‘IT 역사의 전설’이 됐다. MS 창업을 위해 하버드대생인 빌 게이츠를 자퇴시키고, IBM과 IBM 컴퓨터 운영체제인 도스(DOS) 개발에 합의한 주역도 앨런 회장이다.

각각 14세, 12세 때 만나 절친이 된 두 사람은 1975년 MS를 창업, 디지털 역사상 가장 영향력 있는 ‘환상의 듀오’로 정보기술(IT) 역사에 뚜렷한 궤적을 남겼다.

사업 수완이 뛰어난 경영자(빌 게이츠)와 천재 프로그래머(폴 앨런)의 결합은 ‘IT 기업의 성공 공식’으로 자리 잡았고 애플의 스티브 잡스와 스티브 워즈니악, 구글의 래리 페이지와 세르게이 브린 등으로 성공 신화의 계보를 이었다.

1979년 매출 100만달러를 돌파하며 승승장구하던 앨런 회장은 1982년 호지킨림프종 진단을 받고 이듬해 최고기술책임자(CTO) 자리에서 물러났다.

불치의 병에 걸려 친구와 창업한 회사를 떠나는 과정은 아름답지 않았다. 앨런 회장은 2011년 출간한 자서전 ‘아이디어 맨’에서 “빌 게이츠와 스티브 발머가 나를 빈털터리로 만들어 회사에서 축출하기 위해 음모를 꾸미는 대화를 직접 들었다”고 회고했다. 주식을 헐값에 넘기라는 빌 게이츠의 집요한 요청을 거부한 그는 현재 MS 주식 1억 주를 보유하고 있다.

그는 몇 달간에 걸친 방사선 치료 끝에 기적적으로 암을 이기고 MS 이사직을 2000년까지 유지했지만, 경영에서 배제되자 밖으로 눈을 돌려 손대는 사업마다 대박을 내는 ‘미다스 손’임을 증명했다.

1992년 실리콘밸리에 ‘인터벌 리서치’를 설립해 300개 이상의 특허를 획득했고, 1993년엔 2억4000만달러를 주고 ‘티켓마스터’를 인수했다.

33세이던 1988년, 프로농구팀(NBA) 포틀랜드 트레일블레이저스를 7000만달러에 인수, 미국 프로 스포츠 역사상 최연소 구단주가 됐다. 트레일블레이저스는 이후 플레이오프에 19번 진출하는 등, 구단 가치(9억4000만달러)가 급등했다. 1996년에는 프로 미식축구팀(NFL) 시애틀 시호크스도 인수했다. 당시 구단주가 근거지를 남부 캘리포니아로 옮기려고 하자 시애틀 지역 기업인을 대표해 구단을 매입했다. 시호크스는 이후 수퍼볼에서 3번이나 우승하는 등 우량 구단(추정 가치 13억3000만달러)으로 거듭났다. 미국의 4대 인기 프로 스포츠 구단 중 2개 이상을 소유한 구단주는 그가 유일하다.

1998년 설립한 ‘차터 커뮤니케이션’을 통해 2016년 타임워너 케이블을 인수, 미국 제2의 케이블 회사로 키웠다. 2013년 시애틀에 벤처캐피털 ‘벌칸’을 설립해 레드핀 등 IT 기업에 투자하고 있다.


20억달러 기부한 ‘미다스 손’

부동산 개발과 땅 투자에서도 톡톡히 재미를 봤다. 시애틀 북부에 93만㎡에 달하는 부동산 재개발 사업을 진행했는데, 2012년 일부 시설을 아마존에 11억6000만달러에 팔고 난 뒤 “예상 외로 돈이 됐다”고 했다.

그는 캘리포니아 베벌리힐스(45만㎡), 아이다호 농장(1600만㎡), 실리콘밸리 저택(2700만달러), 뉴욕 맨해튼 아파트(3500만달러), 말리부(2500만달러)와 하와이 별장(750만달러)을 가지고 있다. 시애틀 자택은 부지만 3만3000㎡가 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트레일블레이저스 구장(투자비 1억5000만달러), 시호크스 구장(투자비 1억4000만달러)도 소유하고 있다. 단골인 시애틀의 한 극장이 폐관 위기에 몰리자 구입한 뒤 최신 설비를 설치한 뒤 재개관해 지역 주민들의 박수를 받기도 했다.

컴퓨터 프로그래머 출신답게 혁신 기술에도 관심이 많아 2004년 모하비에어로스페이스를 창업, 우주항공 산업에도 진출했다.

그는 수천억원대의 통 큰 기부로도 유명하다. 뇌 과학과 인공지능 연구 등에 5억달러, 세포 연구에 1억달러, 에볼라 퇴치 연구에 1억달러를 기부한 것을 비롯해 고래 보호, 어종 연구, 스마트 시티 연구, 탄자니아 전기 사업, 제2차세계대전 침몰 함정 인양, 빈민 구호시설, 교육시설 건립, 팝 문화 박물관, 전투기 박물관, 컴퓨터 박물관 건립에 수백만달러에서 수천만달러를 기부했다.

중국 방문 중 탈북자들의 비참한 현실을 목격한 뒤 북한 인권 운동에도 관심을 기울이고 있다.

그는 ‘폴 앨런 가족 재단’을 통해 1500여 개 비영리단체에 4억9400만달러를 지원했고 2010년 빌 게이츠가 주도하는 ‘기부 서약(죽기 전에 재산 절반을 기부키로 하는 서약)’에도 참여했다. 지금까지 개인 재산 20억달러 이상을 기부한 것으로 알려졌다.


plus point

호화 파티 즐기는 독신남

앨런 회장은 1953년 워싱턴주 시애틀에서 케네스 샘 앨런과 에드나 페이 앨런 사이에 태어났다. 시애틀의 명문 사립 고등학교인 레이크사이드를 졸업한 뒤 대학입학시험(SAT)에서 만점을 받고 워싱턴 주립대에 장학생으로 입학했으나 2년 만에 자퇴하고 허니웰에 입사, 프로그래머로 일했다.

호화로운 사생활도 유명하다. 매년 칸영화제가 열리는 동안 연간 운영비가 2000만달러나 드는 초호화 대형 요트 ‘옥토퍼시’를 정박시키고 유명 연예인과 호화 파티를 즐긴다. 참석자들은 ‘비밀 서약’을 요구받는다고 한다. 전투기, 전기기타 수집이 취미다.

‘기타의 신’으로 불리는 지미 헨드릭스의 열성 팬으로 그를 추모하는 록앤드롤 박물관을 지어 기부하기도 했다. 앨런 회장의 연주를 직접 본 전설적인 프로듀서 퀸시 존스는 “지미 헨드릭스만큼 기타를 잘 친다”고 했다. 재산은 202억달러(2018년 8월·포브스 선정 억만장자 순위 46위)로 추정된다. 결혼하지 않은 독신이며 자식도 없다.

방성수 조선비즈 편집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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