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과 프랑스 국경을 따라 축성된 350㎞의 마지노선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하지만 독일이 이를 우회해서 침공하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독일과 프랑스 국경을 따라 축성된 350㎞의 마지노선은 그야말로 난공불락의 요새였다. 하지만 독일이 이를 우회해서 침공하자 아무런 역할을 하지 못했다.

거대한 전쟁이 끝나면 필연적으로 군사 분야에 커다란 변화가 벌어진다. 최우선 목표는 전쟁이 다시 발발했을 때 이전에 겪었던 어려움을 반복하지 않는 것이다. 베트남 전쟁에서 굴욕을 겪었던 미국이 연구와 훈련을 통해 새롭게 구축한 하이테크 전쟁 기법을 1991년 발발한 걸프전에서 선보여 세계를 경악시켰던 것이 대표적이다.

하지만 그렇다고 다음에도 반드시 같은 결과가 나오는 것은 아니다. 가장 큰 이유는 시대와 기술 여건에 따라 상황이 수시로 바뀌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스텔스기가 현재 최신 전투기의 지표처럼 여겨지지만 이를 무력화시킬 수 있는 방법이 탄생한다면 당연히 그 위상과 역할이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

기술의 진보를 고려한다면 시간이 문제일 뿐이지 언젠가 스텔스기를 요격할 수 있는 대응책이 등장할 것이 틀림없다. 따라서 군사적 우위를 계속 유지하려 한다면 획기적인 다음 기술을 확보해야 한다. 물론 그것이 무엇인지는 아직 개념조차 정립되지 않았지만 변화에 대처하는 노력을 기울이지 않는 한 영구히 안심할 수 있는 것은 하나도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마지노선(Maginot Line)은 변화를 예측하지 못하고 시대의 흐름을 따르지 않아 실패했던 대표적인 사례다. 흔히 ‘여야는 올해 말을 마지노선으로 정하고 원내 통과를 완료하기로 합의했습니다’ 하는 것처럼 마지노선을 최후의 보루처럼 생각하는 경향이 많다. 하지만, 정작 마지노선은 실패한 방어물이다.


불과 6주 만에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고 파리에서 승전 퍼레이드를 벌인 독일군. 사진 위키피디아
불과 6주 만에 프랑스의 항복을 받아내고 파리에서 승전 퍼레이드를 벌인 독일군. 사진 위키피디아

결국 실패한 철옹성, 마지노선

제1차 세계대전, 특히 4년간 쉼 없이 벌어진 지옥의 서부전선은 이후 군사 전략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1914년 9월 마른강에서 회심의 일격을 가한 프랑스의 반격으로 독일의 진격이 멈추면서 파기 시작한 참호는 시일이 갈수록 더욱 깊고 단단해져 갔다. 그리고 어느덧 양측 참호 사이는 끔찍한 살육의 장으로 바뀌었다.

참호를 뛰어나와 앞으로 내달린 수많은 병사가 난사된 기관총탄에 사라져가기를 반복했다. 불과 몇백 미터를 전진하기 위해 수년 동안 수백만 명이 죽거나 다치는 것이 일상이 됐지만 전쟁은 계속 제자리에 머물렀다. 그렇게 나폴레옹 전쟁 이후 계속돼 온 공격 제일주의가 종언을 고하고 방어가 최고라는 사상이 정립됐다.

이에 따라 전후 프랑스는 요새로 국경을 완전히 차단하기로 결정했다. 샤를 드골 대통령처럼 ‘장차 전쟁에서는 기갑부대와 공군이 주역이 될 것이므로 고착화된 구조물은 필요 없다’고 주장한 이들도 있었다. 하지만 지난 전쟁에서 워낙 끔찍한 경험을 겪었기에 대다수의 지지하에 1927년 건설이 시작돼 1938년 약 350㎞에 이르는 거대한 요새가 완성됐다.

프랑스 국민은 마지노선이 프랑스를 안전하게 지켜 줄 것이라 굳게 믿었다. 하지만 1940년 5월 10일, 전쟁을 시작한 독일은 전혀 예상 못한 마지노선 북쪽 끝의 아르덴 산악지대로 대규모 기갑부대를 통과시켜 연합군 주력을 일거에 포위하는 엄청난 기동전을 선보였다. 무려 150만 명의 연합군 주력이 갇혔다.

이때 마지노선에 주둔한 80만 명의 프랑스군은 현 위치를 포기하고 밖으로 나가 아군을 도울 수 없었다. 결국 6주 후에 프랑스는 항복했다. 이처럼 인류사 최고의 방어물이라 자부했던 마지노선은 프랑스를 보호하지 못했다. 제1차 세계대전 종전 후 20년 동안 공군과 기동화된 기계화부대가 전선의 주역으로 바뀐 것을 간과한 결과였다.


한국 문화, 개방으로 세계적 수준 도달

1990년대 중반 이후 정부가 단계적으로 영화 시장, 일본 대중문화 개방 정책을 실시하겠다고 했을 때 문화계의 반응을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공포’였다. 스크린쿼터제의 축소가 예고되자 영화계는 거리로 나가 반대 집회를 열었고 일본 대중문화의 경우는 반일감정 때문에 대중도 반감을 표시했을 정도였다.

그런데 근본적인 반대 이유는 산업으로서 경쟁력이 뒤졌기 때문이었다. 홈코트인 내수 시장에서조차 할리우드의 영화, 일본의 대중가요와 경쟁을 벌일 자신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었다. 그러나 마지노선에 안주하다가 패망한 프랑스처럼 정부가 배타적인 법률이나 정책으로 보호해 준다고 문화계가 살아남을 수 있는 것은 아니다.

우려와 달리 빗장을 연 효과는 놀라웠다. 경쟁에서 살아남기 위한 치열한 노력이 이어지면서 오늘날 한국의 문화 산업은 생존을 넘어 세계 시장에서 주목받는 분야가 됐다. 고사까지 거론되던 국산 영화는 비약적인 성장을 이뤘다. 덕분에 시장 자체가 비교할 수 없을 만큼 커졌다.

대중음악의 변화는 더욱 극적이다. 순식간에 세계 주류 음악계의 신성이 되어버린 방탄소년단의 사례는 차치하더라도 개방 20년 만에 일본의 청소년이 K팝(K-pop) 가수로 데뷔하고 싶어 한국으로 유학 오는 시대가 됐다. 만일 당시에 개방 대신 인위적인 보호를 선택했다면 오늘날 한국 대중문화 산업의 이러한 경쟁력은 없을 것이다.

중국이 한한령을 내려도 한국 문화를 소비하는 이들이 꾸준하다는 점에서 알 수 있듯이 문화의 소통을 막을 수는 없다. 물론 개방으로 어려움을 겪는 이들도 있다. 하지만 나라를 지키지 못한 마지노선의 사례에서 보듯이 완벽히 차단할 수 없다면 과감히 문을 열고 경쟁력을 갖추는 것이 진정으로 살 수 있는 방법이라 할 수 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