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기를 개발해 엄청난 부자가 된 미국 유진 스토너의 묘비. 사진 위키피디아
총기를 개발해 엄청난 부자가 된 미국 유진 스토너의 묘비. 사진 위키피디아

화살을 막는 것은 같은 화살이 아니라 방패다. 이처럼 방어를 위한 무기는 반드시 공격 대상과 대칭적이지는 않다. 그런데 국방 정책 담당자들은 대응 전력뿐만 아니라 눈에는 눈이라는 말처럼 보복 전력도 함께 확보하려고 한다. 즉, 방패뿐 아니라 화살도 보유하려고 한다. 이 때문에 군사적으로 대치 중인 국가들은 대등한 군비를 구축하려 드는 것이 일반적이다.

냉전 시기에 미국과 소련은 권총부터 전략 핵무기에 이르기까지 무기의 모든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펼쳤다. 지상전의 왕자인 전차를 예로 들면 소련이 T-54를 배치하자 미국이 M47로 대응했다. 이에 소련이 성능이 강화된 T-55로 반격하자 곧바로 미국이 M48을 선보였고 다시 T-62와 M60을 거쳐 오늘날 T-90과 M1으로까지 경쟁이 이어졌다.

이처럼 꾸준히 대응이 이루어지면서 냉전을 주도했던 미국과 소련의 무기 중에는 자연적으로 호적수들이 존재한다. 그런데 언제나 상대보다 좋은 무기를 갖고자 노력했기에 특정 모델이 최고의 자리에서 자웅을 겨룬 기간은 생각만큼 길지 않다. 앞에 소개한 전차들을 봐도 1991년 냉전이 끝나기 전까지 계속 새로운 전차들이 등장하면서 주인공이 바뀌었다.

그런 점에서 자동소총의 역사를 선도한 AK-47과 M16은 가장 많이 알려졌고 가장 오랜 기간 라이벌로 활약했던 대표적인 무기라고 할 수 있다. 이 무기들은 탄생 후 수많은 전쟁, 분쟁에서 교전을 벌였고 민수용으로도 많이 유통됐다.


AK-47은 후속작, 파생형을 포함해 무려 1억 정 이상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뛰어난 자동소총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AK-47은 후속작, 파생형을 포함해 무려 1억 정 이상 생산된 것으로 추정되는 뛰어난 자동소총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M16과 AK-47, 개선 모델 거치면서 미·러 군대의 소총 60년간 대표

현재 러시아군의 주력 소총은 AK-74이고 미군의 주력은 M4 카빈이다. AK-74는 5.45×39㎜ 탄을 사용할 수 있도록 개량된 AK-47의 파생형이고 M4 카빈은 M16과 같은 AR-15 계열이다. 메커니즘 상으로 이들은 각각 AK-47, M16은 커다란 차이가 없으므로 러시아군과 미군이 60년 가까이 같은 소총으로 대적하고 있다고 볼 수 있다.

두 소총이 라이벌이 된 이유는 성능 때문이다. 1947년 제식화된 AK-47은 뛰어난 안정성을 바탕으로 지금까지 개량형, 파생형을 포함해 총 1억 정 이상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덕분에 역사상 가장 많이 만들어진 총이라는 영예를 차지했지만 핵폭탄보다 더 많은 사람을 살상한 무기라는 불명예도 함께 가지고 있다.

M16의 원형인 AR-15는 1950년대에 개발되었으나 군부의 무관심으로 군용으로 채택되지 못했다. 그러다가 미군이 베트남 전쟁에서 AK-47에 곤욕을 치르며 군부가 자동소총의 필요성을 절감한 후 개량을 거쳐 1964년부터 M16이라는 이름으로 보급됐다. 함께 채택된 5.56×45㎜ 탄이 이후 등장하는 서방 소총의 표준이 됐을 만큼 많은 영향을 끼쳤다.

이러한 개발·배치 과정 그리고 수많은 실전에서의 활약 때문에 AK-47과 M16은 자연스럽게 라이벌이 됐다. 사용자나 보는 관점에 따라 호불호가 갈리지만, 명실공히 새로운 소총의 역사를 개막한 걸작들이라는 점에서는 크게 이의가 없을 정도다. 그런데 무기가 아닌 단순히 상품으로만 보면 이 둘이 라이벌이라는 점에서는 의문이 들 수밖에 없다.


채택이 거부되다 베트남 전쟁을 통해 데뷔한 M16 소총은 이후 AK-47의 라이벌로 자리 잡았다. 사진 위키피디아
채택이 거부되다 베트남 전쟁을 통해 데뷔한 M16 소총은 이후 AK-47의 라이벌로 자리 잡았다. 사진 위키피디아

AK-47 만든 칼라시니코프, 노동자 월급 4~5배 받은 게 전부

앞서 언급처럼 AK-47 시리즈는 1억 정 이상 만들어졌지만 M16은 약 800만 정 정도 생산됐을 뿐이다. 숫자로만 비교한다면 라이벌이라고 하기 곤란할 정도의 차이다. 그렇다고 이런 격차가 결코 성능의 차이를 의미하는 것은 아니다. 이처럼 양 진영을 대표했던 소총의 생산량이 엄청난 차이를 보인 이유는 미국와 소련의 상이한 경제 체제 때문이다.

소련은 동맹국·우호국에 대한 군사 지원의 일환으로 AK-47의 복제에 아무런 제한을 두지 않았다. 그래서 외형은 같지만 언제, 어디서 만들어졌는가에 따라 성능의 차이가 심할 정도이고 정확한 생산량도 파악할 수 없다. 반면 M16은 엄격한 품질 관리하에 면허생산을 허락받은 이들만 제작할 수 있었다.

당연히 개발자들의 삶도 차이가 크다. AK-47을 개발한 미하일 칼라시니코프는 수많은 훈장을 받고 소련의 영웅으로 추대되었다. 이와 더불어 많은 경제적 혜택도 누렸지만 일반 노동자와 비교한다면 4~5배 정도의 수준이었다. 반면 M16을 개발한 유진 스토너는 두둑한 저작권료를 지급받아 엄청난 거부가 되었다.

이 둘은 냉전 말기인 1990년에 만난 적이 있었다. 훗날 칼라시니코프는 자신은 총을 만들어 한 푼도 벌지 못했으나 많은 훈장을 받았다고 자랑하자 스토너가 부러워했다고 회상했다. 실제로 스토너가 그랬는지 알 수 없지만 라이벌로 언급되는 뛰어난 소총을 만든 두 사람의 생애는 이처럼 차이가 컸다. 기름과 물처럼 상이한 체제가 만든 모습이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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