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61년 베를린 위기 당시 바로 앞에서 상대를 조준하고 있는 미군의 M48과 소련군의 T-55. 제1세대 전차의 라이벌로 현재 국군과 북한군도 보유 중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1961년 베를린 위기 당시 바로 앞에서 상대를 조준하고 있는 미군의 M48과 소련군의 T-55. 제1세대 전차의 라이벌로 현재 국군과 북한군도 보유 중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1945년 8월 15일, 일본의 무조건 항복으로 6년 동안 무려 5000만 명의 사람이 비명 속에 죽어간 제2차 세계대전이 막을 내렸다. 이렇게 인류사 최악의 비극이 끝났지만 정작 뒤를 이어 찾아온 것은 평화가 아니었다. 자신이 믿는 이데올로기를 수호하기 위한 새로운 대결이 시작됐다. 미국과 소련이 주도한 냉전이었다.

20세기 후반 50년 동안 이어진 냉전의 가장 큰 특징은 강대국 간의 전쟁이 없었다는 점이다. 국지전을 배후에서 지원하거나 베트남 전쟁, 아프가니스탄 전쟁처럼 한쪽만 참전한 사례도 있지만, 미국과 소련이 직접 충돌한 적은 없다. 상대를 증오했는데도 전쟁이 발발하지 않았던 예는 사실 인류사 전체를 통틀어 볼 때 흔치 않다. 그렇게 된 데는 설령 전쟁에서 이긴다고 하더라도 감내해야 할 피해가 너무 크다고 예상했기 때문이다. 핵폭탄은 전쟁의 패러다임을 완전히 바꿨지만, 역설적으로 함부로 사용하기 힘든 무기이기도 하다.

나만 가지고 있다면 패권을 쉽게 장악할 수 있지만 남도 가지고 있다면 내가 입을 엄청난 피해를 감수해야 한다. 따라서 상대보다 앞선 전력을 보유하기 위해 부단히 애썼다. 총알부터 전략 핵무기에 이르기까지 모든 무기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이 벌어졌다. 그러했던 무기 중에는 제2차 세계대전을 거치며 지상전의 왕자가 된 전차도 있었다. 특히 1960년대까지만 해도 자고 일어나면 새로운 전차가 등장했다는 소리까지 들었을 정도였다.

제2차 세계대전 종전 직전에 소련은 이후 전차 개발 사상을 근본적으로 바꾼 T-54를 만들었다. 이전까지 작전 목적마다 종류가 달랐던 전차를 단일화한 것이다. 이는 미국의 M47 등장을 촉진했다. 그러자 소련이 개량형인 T-55를 선보였고 미국도 다시 개량형인 M48로 대응하고 나섰다. 이처럼 새로운 전차에 대한 집념은 제2차 세계대전 당시보다 격렬했다. 결국 기존 전차의 성능을 조금씩 개량하는 방식으로 압도적 우위를 확보할 수 없다고 생각한 소련은 새로운 전차를 만들겠다고 결심했다.

1958년부터 개발이 시작된 T-64의 목표를 한마디로 표현하자면 지금까지 존재한 모든 전차를 압도하는 것이었다. 전차의 3대 요소인 공격력·방어력·기동력 모두가 획기적으로 향상돼야 했다. 먼저 공격력을 높이기 위해 날개안정분리철갑탄(APFSDS탄)을 사용하는 대구경 활강포를 채택했다. 지금은 강선(腔線·총포의 내부에 나사 모양으로 판 홈)이 없는 활강포가 대세지만 당시에는 획기적 시도였다. 주포(主砲·군함이나 전차에 장치한 포 가운데 가장 위력이 센 포)로 대전차미사일의 발사도 가능하도록 설계됐다. 이에 더해서 영상합치식 광학거리측정기로 사격 정확도를 높이고 자동장전장치를 탑재해 3인만으로 전차를 운용할 수 있도록 계획했다. 방어력은 세라믹이 함유된 획기적인 복합장갑으로 향상하기로 했다. 터보차저를 부착해 출력을 높인 디젤엔진으로 기동력 향상도 노렸다. T-64는 제2세대 전차지만 위와 같은 이유로 제3세대 전차의 효시로 보기도 한다. 한마디로 ‘꿈의 전차’였다. 하지만 문제는 관련 기술 대부분이 그때까지 완성되지 않았다는 점이었다.

T-64 개발이 난항을 겪으면서 배치가 미뤄지자 소련은 T-55 차체에 대구경 활강포를 탑재한 T-62를 제작해 1962년부터 공급했다. T-64 배치 전까지의 전력 간극을 메우려는 임시 조치였는데 일선에서 의외의 호평을 받았다. T-64는 1964년에 일단 개발을 완료했으나 고장이 너무 많이 속출하자 소련군은 결국 대타였던 T-62를 주력으로 채택했다.


1980년대 동독 주둔 소련군에 배치된 T-64. 만일 계획대로 제시간에 개발이 이뤄졌다면 전차 역사를 선도했을지 모른다. 사진 위키미디어
1980년대 동독 주둔 소련군에 배치된 T-64. 만일 계획대로 제시간에 개발이 이뤄졌다면 전차 역사를 선도했을지 모른다. 사진 위키미디어
T-64는 이상을 구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가장 필요할 때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어정쩡한 전차가 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T-64는 이상을 구현하는 데 오랜 시간이 걸리면서 가장 필요할 때 제 역할을 하지 못한 어정쩡한 전차가 됐다. 사진 위키피디아

어정쩡한 전차가 된 ‘꿈의 전차’

이런 굴욕을 겪고 1969년에 이르러서 T-64를 본격적으로 양산할 수 있었다. 하지만 기대와 달리 엔진이 계속 말썽을 부려 군부를 실망하게 했다. 그러자 소련은 1971년에 T-62를 바탕으로 T-64의 공격력을 결합한 또 다른 임시 전차를 제작했다. 이것이 또 하나의 베스트셀러 전차인 T-72로, 성능은 T-64와 비슷하지만 제작비는 훨씬 저렴했다. 결국 T-64는 획기적인 전차를 목표로 개발이 시작됐지만 요구 수준을 달성하는 데 시간이 걸리면서 T-62와 T-72 사이에 껴버린 고가의 어정쩡한 전차가 됐다. 1987년까지 약 1만3000대가 생산됐지만 함께 활약한 T-62, T-72에 비하면 적은 숫자다. 구상은 시대를 앞섰지만 정작 배치됐을 때는 ‘최고’라는 표현을 쓸 수 없는 수준이 돼버린 것이다.

출현 시기를 놓쳐 실패하는 사례는 일반 제품이나 서비스도 마찬가지다. 기업의 발전을 위해 커다란 이상을 목표로 삼을 수는 있다. 하지만 그에 못지않게 시도를 뒷받침할 수 있도록 시장에서 꾸준히 결과를 내는 것도 중요하다. 왜냐하면 한 번 기회를 놓치면 이상을 실현해도 어려움을 겪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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