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은 내외부 상황을 전략적으로 분석한 뒤 이것을 재무적 언어로 풀어서 대표나 이사회에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경력 개발을 통해 임원으로 올라가 사장까지 노릴지, 고참 실무자로 평화롭게 다닐지는 조직 문화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임원은 내외부 상황을 전략적으로 분석한 뒤 이것을 재무적 언어로 풀어서 대표나 이사회에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경력 개발을 통해 임원으로 올라가 사장까지 노릴지, 고참 실무자로 평화롭게 다닐지는 조직 문화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현대인에게 경력 관리란 마음 한구석에 밀쳐 놓은 숙제 보따리이며, 평소에는 잊고 지내다 술 취하면 가끔 들여다보는 거울 같은 존재다. ‘내가 지금 이렇게 세월을 보내도 괜찮은 건가?’라는 가벼운 넋두리와도 잘 어울린다. 학문으로서 경력 관리는 자기 진단을 통해 찾아내는 경력 목표와 그것을 달성하기 위한 계획과 일련의 행동으로 구성된다. 그러나 받아들이는 입장에서는 세대마다 그 의미가 다르다. 20~30대는 ‘이직을 통한 몸값 올리기’이고 40~50대는 ‘오래 다닐 수 있는 평생직업 확보’란 뜻이다. 현실이 이론과 다르다 보니 경력 관리의 결과물이어야 할 ‘자기 성장’이나 ‘직장생활의 질 향상’은 물 건너갔다. 원한다고 할 수 있는 여건도 아니면서 마음고생의 재료로만 기능하는 경력 관리, 실행단계에서는 흔히 경력 개발이라 부르는 해묵은 과제를 들여다본다.

경력 개발에 대한 세상의 흔한 오해 한 가지는 커리어란 시간의 함수로 우상향하는 계단 그래프라는 믿음이다. 어느 조직이나 권한과 직위는 모두에게 골고루 나눠줄 수 없는 한정된 자원이다. 따라서 경력 단계를 밟아 위로 올라가는 경우가 예외적으로 일어나는 것이고 대부분 노동자는 조금 올라가다 멈춘다. 계단식 성장의 직선형 커리어(linear career)는 베이비부머가 일터로 쏟아져 들어오던 1980년대 산업 확장기에 적합했던 모델이다. 조직의 성장은 정체기에 접어들었고 대부분의 직원이 중간관리자에서 멈추는 현실에 부합하지 않는다.

회사원이 계급정년이 있는 군인도 아닌데 승급 좀 멈췄다고 실업자가 될 까닭은 없다. 다만 높은 급여에 부합하도록 후배들보다 뛰어난 실무 능력을 유지하든지 아니면 연봉을 직무에 맞춰야 한다. 이직을 위해 퇴근 후 새로운 기술을 배우러 다니기보다, 현 직장에서 쓰이는 협업 툴을 익히고 새로 도입되는 시스템을 꾸준히 공부하는 편이 더 나은 결과를 가져온다. 20년 다닌 홈그라운드를 수성하지 못한 이가 회사를 떠나 새로운 영역에서 성공한다는 시놉시스(간략한 줄거리)는 아침 드라마거리도 안 된다.

빠르게 성장하는 스타트업에도 직선형 커리어는 많지 않다. 한 회사에서 4~5년 정도 근무하며 승급보다 현금이나 주식 보상을 챙기고, 업무 경험을 즐기며 준비하다가 기회가 오면 창업팀에 끼려는 전이형 커리어(transitory career)가 주류를 이룬다. 초기 멤버로만 진입하면 보상에서 소외되지 않으며 조직의 관리자란 실속 없이 골치만 아프다는 사실을 아는 이들이다.

개발자나 투자자 같은 전문가형 커리어(expert career)도 지위에 별 의미를 두지 않는다. 이들은 동종 그룹 내에서 안정된 네트워킹을 유지하고 자신의 분야에서 전문가로 존경받는 것에 큰 보람을 느낀다. 급여가 높은 대신 스트레스도 감수해야 하는 임원 역할을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다. 성공한 경력 관리는 이렇게 높은 지위가 아니라 자기에게 맞는 종류의 일을 찾아 보람과 적당한 보상을 얻는다는 의미다.

부모가 보기에 좋은 경력 말고 본인에게 맞는 일을 찾는 제대로 된 경력 개발이라면 신입 시절에 하는 것이 당연히 효과적이다. 특히 첫 단추를 잘못 끼운 경우에 수습책으로 권할 만하다. 예컨대 대학 입시에서 학교 이름만 보고 대학을 골랐다면 졸업 후 자기가 갈 수 있는 한 가장 크고 좋은 회사에 입사한다. 그다음 그 회사 내에서 본인의 적성과 최대한 유사한 직무로 옮긴다. 입사 시점에서 비전공 직무에 지원하거나 경력사원이 해본 적 없는 분야에 지원하는 것은 구인 회사 입장에서 감당할 수 없는 리스크니까 하지 마시라. 경력 개발로 풀어야 할 상황이다.

40대가 되면 승진이나 성장이 멈추는 경력 정체가 온다. 개인의 역량은 뛰어난데 회사의 성장이 지체돼 승진할 자리가 없다면 전직이 답이다. 갈 만한 자리가 났고 올라가고도 싶은데 지명을 못 받는 원인은 대부분 상위 직무를 수행할 능력 부족이다. 초급 간부 직무는 개인 역량과 팀 관리 능력 두 가지로 충분하다. 똑똑하고 책임감 있고 배짱이 두둑하거나 겸손하거나 등이 개인 역량이라면 고객 관리, 직원 관리, 갈등 관리 등 타인에게 적절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것이 팀 관리 능력이다. 그러나 임원은 이렇게 답이 있는 문제를 잘 푸는 것이 아니라, 무엇이 문제인가부터 파악해야 한다. 내외부 상황을 전략적으로 분석한 뒤 이것을 재무적 언어로 풀어서 대표나 이사회에 제안할 수 있어야 한다. 경력 개발을 통해 임원으로 올라가 사장까지 노릴지, 고참 실무자로 평화롭게 다닐지는 조직 문화를 보고 판단해야 한다.


임원을 꿈꾼다면

임원 목표 경력 개발의 수단으로 학위를 생각한다면 반드시 30대에 끝내야 한다. MBA(경영학 석사 과정)라면 상위 20위권만 투자 대비 효용 가치가 있는데 영미권은 등록금만 2억원, 부부 생활비 1억원 소요, 거기에 준비 기간까지 포함해서 최소 3년간 수입이 없다는 점을 고려해야 한다. 젊어서는 취업할 때 졸업장의 도움을 받고, 늙어서는 재테크에 동문의 도움을 받을 수 있으니 형편이 된다면 가시라. 그러나 20위권 이하 학교라면 자비로는 안 가는 게 낫다. 졸업장이 필요한 게 아니라면 미국 대학의 온라인 강의도 좋다. 코세라 사이트의 경우는 과목당 월 6만원가량 든다. 온라인을 뒤져 보면 국내 대학이나 미국 대학이 개설한 무료 강의와 TED의 명강의가 있다. 꾸준한 독서도 자기 계발에 유용하다. 웬만한 서양의 베스트셀러는 거의 실시간으로 번역되는 시대다. 가장 피해야 할 것이 국내 대학원의 석사 과정인데 교환 가치는 보잘것없고 사회 진입을 늦추며 눈높이를 올려놔 취업만 어렵다.

경력 개발은 양날의 검이다. 경력 개발에 성공하면 화려한 커리어를 만들지만, 대가가 따른다. 부모는 자녀에게 성공한 모습을 보여주고 싶어 하나, 아이는 부모가 참석하지 않은 졸업식을 더 잘 기억한다. 호랑이 등을 이리저리 옮겨타며 달리는 삶보다 현업에 집중하고 내 주변 사람에게 잘하는 것이 더 좋은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프랑스의 철학자 르네 지라르(Rene Girard)가 지적했듯이 대부분의 현대인은 ‘타인의 욕망’을 따라간다. 하나의 목표를 달성하면 그다음 단계가 기다린다. 지쳐 떨어질 때까지 반복되는 패턴이다. 커리어 측면에서도 타인과 비교해서 인정받을 만한 객관적 성공은 영원히 채워지지 않는 갈증이다. 그래서 성공은 주관적 개념이어야 한다. 자신에게 주어졌던 환경과 자원에 비해 많은 것을 이뤘다는 자부심 또는 어려서 꿈꿨던 목표를 달성했다는 경력 만족감이 성공이다. 직장 경력을 통해 지식과 기술을 습득했다는 경력 만족, 가족을 부양했다는 경제적 만족도 성공이다. 경력 관리란 단어를 접했을 때 조바심 내지 않아도 된다. 미래를 위해 오늘을 희생할 필요 없이, 오늘에 충실해서 좋은 미래를 만들 수 있으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