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신데렐라처럼 데뷔한 엑조세(Exocet) 미사일. 이때의 활약 덕분에 성능 이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1982년 포클랜드 전쟁에서 신데렐라처럼 데뷔한 엑조세(Exocet) 미사일. 이때의 활약 덕분에 성능 이상으로 좋은 평가를 받아 상업적으로도 성공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1998년, 할리우드에서 일본 영화를 리메이크한 ‘고질라(Godzilla)’가 개봉했다. 도심을 파괴하는 무시무시한 거대 괴수를 그린 내용인데, 제작비를 고려하면 대작이라 할 수 있을지 모르나 그저 시간 때우기에나 적합한 졸작이었다. 원작에 출현했던 일본 원로 배우가 이것은 고질라가 아니라고 한탄했을 정도였다. 당연히 혹평을 받았고 흥행에도 실패했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국내에서는 평균 수준의 성적을 올렸다는 사실이다. 할리우드 영화라는 배경도 있었지만, 영화 속에 등장한 의외의 장면이 크게 이슈화한 덕도 일부 있었다. 불의의 공격을 받고 파괴된 일본 어선의 잔해를 조사하는 장면에서 동원산업이 생산한 참치 통조림이 뚜렷하게 클로즈업돼 나왔다. 이를 본 국내 관객은 환호했다. 내용상으로 일본 참치 통조림이 나왔어야 했는데, 일본어와 한국어를 구분할 줄 모르는 소품 담당자의 실수로 동원참지가 할리우드 영화에 전혀 예기치 않게 등판한 것이었다. 몇 초 정도에 불과했지만, 공짜로 엄청난 간접광고(PPL)의 행운을 얻은 동원산업은 이를 이용해 고질라에 나온 바로 그 참치라며 대대적인 마케팅을 펼쳤다.

최근에 이와 비슷한 사례가 국내 영화 때문에 외국에서 벌어졌다. 세계 영화사를 바꾼 ‘기생충’에 등장한 몇몇 소품으로 인해 소동이 일어난 것인데, 스페인의 보닐라 감자칩과 칠레의 비냐 모란데 와인이 주인공이다. 클로즈업된 동원 참치와 달리 이들 제품은 영화의 구석구석을 신중하게 살펴봐야 간신히 흔적을 알 수 있다. 그런데도 보닐라 감자칩은 판매가 20% 정도 늘어나 밤새워 일하는 중이라는 즐거운 푸념을 하고, 비냐 모란데 와인은 트위터에 홍보하는 글을 올렸다가 칠레 국내에서 숟가락을 얻는 행위라고 비난을 받기도 했다. 20여 년이라는 시차가 있지만, 우리가 외화에서 느꼈던 감정과 행동을 외국에서 한국 영화를 보고 따라 하니 격세지감이라 할 수 있다.

영화에 등장했다고 그것이 좋은 제품이라는 의미는 아니다. 하지만 소비자에게 인상적으로 작용할 수 있기에 기업은 이런 예상치 못한 호기를 제품 판매에 적극적으로 이용해야 한다. 비단 영화뿐만 아니라 소비자가 접하는 모든 환경이 기업에 대단히 중요한 마케팅 수단이다. 하지만 기회가 왔을 때 이를 포착해서 살리는 것은 순전히 기업의 능력이다.

생산과 소비가 극히 한정된 무기의 세계에서도 마찬가지다. 나름대로 많이 팔기 위해서 생산 업체는 마케팅을 하지만 무기는 성능, 가격은 물론 정치, 외교적 변수에 따라 거래가 좌우되는 제품이다. 그래서 아무리 업체가 노력해도 판매가 불가능한 사례도 흔하고 반대로 돈을 아무리 많이 준다고 해도 생산국이 판매를 거부하는 경우도 있다. 무기는 설계상 ‘스펙’이 좋다고 해도 실전에서 사용되지 않는 한 성능을 완벽하게 검증하기 어렵다. 그런데 인류사에 전쟁이 그친 적은 없지만 정작 만들어 놓고 한 번도 실전에서 사용되지 않은 무기도 의외로 많다. 예를 들어 대륙간 탄도유도탄(ICBM), 잠수함발사 탄도유도탄(SLBM) 같은 핵탄두를 탑재한 전략 무기는 인류를 공포에 떨게 하지만 아직 실전에서 사용된 적은 없다. 따라서 위력이 어느 정도인지 추정할 수는 있으나 실제로 사용했을 때 어떤 결과를 가져올지는 상상의 영역이다. 비단 이와 같은 전략 무기가 아니더라도 개발해 놓고 보유만 하다가 도태된 무기는 흔하다. 역설적이지만 무기는 비싼 돈을 들여 만들었어도 실전에서 사용하지 않고 시간이 지난 후 그냥 사라지는 것이 인류에게는 가장 좋다.


영화 ‘고질라’에 등장한 동원 참치 통조림. 5초 정도의 분량이었지만 동원산업에는 최고의 순간이었다. 단종된 제품이었으나 예상치 못한 인기에 힘입어 재생산해 판매했다. 사진 영화 ‘고질라’ 스틸컷
영화 ‘고질라’에 등장한 동원 참치 통조림. 5초 정도의 분량이었지만 동원산업에는 최고의 순간이었다. 단종된 제품이었으나 예상치 못한 인기에 힘입어 재생산해 판매했다. 사진 영화 ‘고질라’ 스틸컷
영화 ‘기생충’ 소품으로 등장한 자사 제품 앞에서 세자르 보닐라 사장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
영화 ‘기생충’ 소품으로 등장한 자사 제품 앞에서 세자르 보닐라 사장이 사진 촬영을 하고 있다. 사진 EPA연합

전쟁이 만든 기회

반대로 전쟁에서 예상치 못한 활약을 보여 판매에 성공하는 때도 있다. 프랑스의 엑조세(Exocet) 대함미사일이 여기에 가장 부합하는 사례라고 할 수 있다. 엑조세가 최초의 대함미사일도 아니고 성능도 동시대에 등장한 미국, 소련의 경쟁작과 비교했을 때 특별히 뛰어나다고 평가받지도 않았다. 특히 서방에서는 하푼(Harpoon) 아래로 평가된다. 그런데 1982년 발발한 포클랜드 전쟁에서 아르헨티나군이 발사한 엑조세가 영국의 최신 구축함 셰필드를 한 방에 격침해 버리는, 너무나 인상적인 전과를 남겼다. 이를 ‘엑조세 쇼크’라고 부르는데 1967년 중동전쟁 중 소련제 대함미사일에 의한 이른바 ‘스틱스 쇼크’와 더불어 대함미사일의 효용성을 만천하에 입증한 중요한 사건으로 기록됐다.

하지만 정작 당시 아르헨티나가 보유한 5발 중 제대로 된 전과를 올린 것은 이것뿐이었다. 결론적으로 대함미사일이 실전에서 사용된 사례가 흔치 않다 보니 성능 이상으로 명성을 얻은 것이었다. 당연히 프랑스는 동원 참치나 보닐라 감자칩처럼 절호의 기회를 놓치지 않았다. 덕분에 엑조세는 상업적으로도 성공한 무기의 반열에 올랐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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