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박한 대만 해군의 DDG-1801 지룽과 DDG-1802 수아오. 초도함 이름을 따서 대만에서 지룽급으로 불린다. 사진 중화민국 해군
정박한 대만 해군의 DDG-1801 지룽과 DDG-1802 수아오. 초도함 이름을 따서 대만에서 지룽급으로 불린다. 사진 중화민국 해군

무기 하면 싸울 때 사용하는 도구라는 생각이 강하다. 하지만 인류가 지구상에 등장한 직후부터 무기는 생존을 위해 사용해 온 대단히 중요한 수단이다. 날카로운 이빨이나 발톱이 없고 완력도 뒤지는 인간이 동물들과 경쟁을 벌여 살아남으려면 필연적으로 무기가 필요했다. 처음에는 당장 주변에서 구할 수 있는 돌이나 나뭇가지 등을 사용했다.

그러다가 점차 여러 재료를 가공해서 살상력을 높였다. 역사 이전을 구분하는 석기·청동기·철기 시대의 유물 대부분이 무기라는 점은 그만큼 귀중한 생존 도구라는 의미다. 그런 점에서 무기는 가장 오래된 공산품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스럽게 거래가 이뤄지는 대상이 됐고 어느덧 오늘날에 와서는 가장 비싼 종류의 상품이 됐다.

그래서 여타 상품처럼 무기도 생산자 입장에서는 많이 팔고 싶고 수요자 입장에서는 저렴한 가격에 좋은 품질의 것을 구매하고 싶어 한다. 이처럼 무기의 거래에도 경제 원리가 작용한다. 하지만 무역에서는 일반 공산품과 달리 정치·외교적인 변수가 경제적 요소보다 더욱 크게 작용한다. 사실 이 부분을 먼저 해결해야 거래가 성사될 수 있다.

가장 큰 이유는 수출국의 의도에 반하여 무기가 함부로 사용되는 것을 막기 위해서다. 자칫 적국으로 흘러 들어가기라도 하면 낭패를 볼 수 있다. 따라서 무기는 한정된 국가 사이에서만 거래가 이뤄지는 공산품이다. 그런데 국제 관계는 고정적인 것이 아니라 가변적이므로 최초 계약 당시와 달리 거래가 불가능해지는 경우도 종종 발생한다.

2019년 터키는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러시아로부터 도입한 S-400 방공 시스템을 일선에 배치했다. 그러자 미국은 기밀 정보가 러시아로 유출될 가능성이 크다며 의회의 동의를 얻어 F-35 전투기 공급을 거부했다. 애초 터키는 100대의 F-35를 도입하기로 계약했었고 2018년부터 매년 10대씩 순차적으로 인도받을 예정이었다.

더구나 터키는 F-35 프로젝트 시작 당시부터 공동 개발에 참여한 8개국 중 하나로 상당수의 부품 생산도 담당하고 있었다. 미국의 조치에 터키는 극렬히 반발하고 국제중재재판으로 가겠다고 언급했지만, S-400을 폐기하거나 F-35가 2선급 무기로 위상이 하락하지 않는 한 미국이 판매에 나설 가능성은 없다. 그만큼 무기의 거래는 차원이 다르다.

제작사인 록히드마틴으로서는 그만큼 생산 물량이 감소하는 것이지만 판매 금지 결정 이전에 터키 공급분으로 생산한 것이 두 대에 불과하고 이 또한 미국에서 자체 소화할 수 있으니 크게 문제 되지 않는다. 하지만 대안이 있었던 이번 사례와 달리 만들어 놓은 무기가 갑작스러운 환경 변화로 말미암아 애물단지가 되는 경우도 있다.

제작된 후 무려 30년을 방황하다가 현재 대만 해군의 주력으로 활약 중인 지룽(基隆)급 구축함이 대표적 사례다. 지룽급의 고단한 운명은 1973년 이란이 미국에 네 척의 최신 구축함을 주문하면서 시작됐다. 이는 미국의 주력인 스프루언스급 구축함에 상위 전투함인 버지니아급 순양함의 전투 체계를 결합한 형태여서 가히 최강의 스프루언스급이라 할 만했다.


2018년 6월 21일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열린 터키 공군용 F-35 1호기 출고식에서 축사하는 터키 방위산업청 부청장. 하지만 터키가 러시아로부터 S-400을 도입하면서 미국은 F-35 인도를 거부했다. 사진 AFP연합
2018년 6월 21일 텍사스 포트워스에서 열린 터키 공군용 F-35 1호기 출고식에서 축사하는 터키 방위산업청 부청장. 하지만 터키가 러시아로부터 S-400을 도입하면서 미국은 F-35 인도를 거부했다. 사진 AFP연합
미국 해군 소속으로 활약하던 당시의 DDG-993 키드. 예정됐던 함명은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황제이자 이란인에게 건국의 아버지로 알려진 키루스 2세였다. 사진 위키피디아
미국 해군 소속으로 활약하던 당시의 DDG-993 키드. 예정됐던 함명은 페르시아 제국을 건설한 위대한 황제이자 이란인에게 건국의 아버지로 알려진 키루스 2세였다. 사진 위키피디아

무기 거래 이면의 외교 변수

1978년부터 건조에 들어간 네 척의 구축함은 키루스 2세를 위시한 페르시아 역사에 위대한 군주들의 이름으로 명명돼 흔히 샤급으로 불렸다. 그런데 이듬해 이란 혁명이 발생하자 상황은 급변했다. 미국이 망명한 팔레비 국왕의 송환을 거부한 데 격분한 이란 시위대가 미국 대사관을 무단 점령하고 외교관들을 인질로 삼은 것이었다.

이렇게 적대 관계로 돌변하자 미국은 완공 직전이던 구축함들을 몰수해 자국 해군이 운용하도록 조치했다. 이때부터 초도함 DDG-993 키드(Kidd)의 이름을 따서 키드급으로 불리게 됐다. 하지만 미국의 주력이 타이콘데레가급 순양함과 알레이버크급 구축함으로 바뀌면서 운영 체계가 상이한 4척의 키드급을 별도로 유지하기가 갈수록 어려워졌다.

이에 호주, 그리스 등에 판매를 시도했으나 실패했다. 이런 우여곡절 끝에 마침내 2004년 중국의 방해로 신예 전투함 확보에 애를 먹던 대만에 공급이 결정됐다. 건조된 지 30년 가까이 된 구형함이라는 명분을 내세워 중국의 반발을 억제함과 동시에 대만 해군의 전력을 획기적으로 증진해 중국을 견제하는 효과도 얻었다.

이렇게 2006년 대대적인 개수를 거쳐 대만에 인도된 이 함은 초도함 DDG-1801 지룽의 이름을 따서 이후부터는 지룽급으로 불리고 있다. 처음 언급처럼 무기는 단지 경제적 측면으로만 거래될 수 없는 특이한 상품이다. 샤급에서 키드급으로, 다시 지룽급으로 바뀐 구축함의 운명을 보면 무기 이면의 국제 역학 관계가 얼마나 중요한 요소인지 알 수 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 목록
  • 인쇄
  • 스크랩
  • PDF 다운
ⓒ 조선경제아이 & economychosun.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