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보병의 근접전용 보조 화기였던 PPSh-41 기관단총.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도 사용했는데 탄창의 모양이 똬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따발총’으로 불렸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소련 보병의 근접전용 보조 화기였던 PPSh-41 기관단총. 한국전쟁 당시 북한군도 사용했는데 탄창의 모양이 똬리와 비슷하다고 해서 ‘따발총’으로 불렸다.

1950년 6월 25일 북한의 침략으로 벌어진 한국전쟁은 이후 3년 동안 커다란 아픔을 남겼다. 그런데 전쟁이 여전히 진행형이라는 사실을 간과하는 이들이 많다. 현재 휴전상태이므로 아직도 전쟁의 굴레에서 벗어난 것이 아니다. 다만 교전이 70년 전에 있어서 이제는 이를 기억하는 이들이 많지 않고 자료 등을 통해 간접적으로 알 수 있을 뿐이다.

이와 관련해서 개전 당시의 모습을 묘사한 자료를 보면 예외 없이 등장하는 것이 있는데, 바로 북한군이 남침 시 전면에 내세웠던 전차다. 당시 북한군은 소련에서 공여받은 T-34/85 전차를 242대 보유하고 있었다. 현재 북한군이 운용 중인 전차는 3500여 대가 넘는 것으로 추산되고 한국전쟁의 규모를 고려하면 사실 그다지 많은 수량은 아니었다.

실제로 유엔군이 본격 참전한 1950년 8월부터 전쟁사에서 북한군 전차의 활약상을 찾아보기 힘들다. 오히려 어디서 북한군 전차를 격파했다는 정도만 간략하게 등장한다. 하지만 개전 초에 국군은 단 한 대의 전차도 없었고 대전차 화기도 충분히 보유하지 못한 데다 대전차 전술도 숙지하지 못해 엄청난 곤욕을 치렀다.

결국 3일 만에 서울을 내주고 낙동강까지 밀려나야 했다. 그렇게 한 달 동안 당한 충격이 너무 커서 북한의 전차는 이후로도 오랫동안 국군에 트라우마로 남았다. 그런데 충격의 강도가 전차에는 미치지 못하지만, 전쟁을 거치며 인상적으로 뇌리에 자리 잡은 북한군의 무기가 하나 더 있다. 너무나 유명한 소련제 PPSh-41 기관단총이다.

사실 기관단총은 사거리가 짧고 위력이 떨어지지만, 연사력이 좋아 근접전에서 사용하는 제한적 용도의 무기다. 하지만 아군의 M1 개런드, M1 카빈 반자동소총 등과 비교하면 총탄을 난사하는 PPSh-41은 인상적이었다. 아군도 M3 기관단총 등을 사용했지만, 특유의 탄창 모습을 빗대 민간에서도 ‘따발총’이라고 불렀을 만큼 PPSh-41은 명성을 떨쳤다.


1931년부터 핀란드가 사용한 KP/-31 기관단총. 겨울 전쟁 당시 소련군에게 굴욕을 안겨주었는데, 모양만으로 알 수 있듯이 PPSh-41의 탄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사진 위키피디아
1931년부터 핀란드가 사용한 KP/-31 기관단총. 겨울 전쟁 당시 소련군에게 굴욕을 안겨주었는데, 모양만으로 알 수 있듯이 PPSh-41의 탄생에 커다란 영향을 끼쳤다. 사진 위키피디아

소련 ‘구국의 기관단총’ 탄생 비화

비록 우리에게는 불쾌한 대상일 수밖에 없지만, PPSh-41은 이미 사상 최대의 전쟁이었던 제2차 세계대전에서 명성을 얻었다. 특히 지옥의 시가전으로 유명한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대단한 활약을 펼쳐 독일군을 곤혹스럽게 했다. 전쟁이 끝날 때까지 종횡무진으로 활약을 펼쳐 소련에서는 이른바 ‘구국의 기관단총’으로 불릴 정도다.

성능이 최고라고 할 수는 없지만, PPSh-41은 저렴한 가격에 대량 생산이 가능하고 어지간해서는 고장이 나지 않을 정도로 안정성이 좋았다. 사실 병사의 입장에서 고장 나지 않는 것보다 중요한 것은 없다. 독일군도 유명한 MP40 기관단총이 있었지만, 일선에서 독일어로 된 사용 설명서까지 배포됐을 정도로 노획한 PPSh-41을 즐겨 사용했다.

하지만 총기 역사에 한 획을 그은 PPSh-41의 탄생은 소련군 역사에 길이 남을 굴욕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939년 11월 30일 소련은 핀란드를 침략했다. 유명한 겨울 전쟁이었는데, 당시 소련은 핀란드 성인 남성의 절반 정도의 압도적 전력을 동원했다. 석 달 후 소련은 승리했으나, 핀란드가 강화 조약에 서명하면서 승자와 패자가 나뉜 것뿐이었다.

소련군은 35만 명의 인명 피해를 봤고 전쟁에 투입한 대부분의 전차와 항공기를 상실했지만, 핀란드군의 손실은 소련군의 20%에도 미치지 않았다. 숫자로 따졌을 때 핀란드가 승자라고 해도 결코 과언이 아니다. 이런 결과가 나오게 된 데는 여러 이유가 있지만, 그중 하나가 핀란드군의 유격 전술에 소련군이 철저하게 말려들었던 점도 있었다.

소련군의 진격이 영하 40도까지 떨어지는 혹한에 막히자 심야에 스키를 탄 핀란드 소부대가 소련군 숙영지를 가로지르며 기관단총을 난사하고 수류탄을 투척했다. 이 같은 핀란드군의 비정규전은 상당히 뛰어난 효과를 발휘했다. 이때 혹독한 경험을 한 소련군에 핀란드군이 난사한 KP/-31 기관단총은 미움이자 경외의 대상이었다.


독·소전쟁 계기로 진품 명성 넘어서

기관단총의 필요성을 절감한 소련은 KP/-31을 참고해서 PPSh-41을 만들었다. 특유의 대용량 드럼식 탄창과 총열 냉각장치에서 보듯이 KP/-31을 그대로 베낀 것과 다름없을 정도였다. 치욕과 자존심은 그다음 문제였다. 결국 본격적으로 양산이 시작된 1941년에 독·소전쟁이 발발하면서 PPSh-41을 곧바로 실전에 투입했고 결국 무기사의 한 장을 차지했다.

시장에서 ‘짝퉁’이라 불리는 복제품은 시장을 교란하고 원작자에게 피해를 주지만, 그렇다고 명성이 원작을 넘을 수는 없다. 그런 점에서 볼 때 PPSh-41은 그들이 모방한 KP/-31보다 더 많이 사용되고 유명세를 떨쳤다는 점에서 특이한 사례라 할 수 있다. 일단 이기기 위해 베끼는 것도 마다하지 않는 무기라는 특성이 그런 결과를 낳은 것이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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