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iG-15는 이전까지 해당 분야의 변방으로 취급되던 소련이 냉전 시기에 미국과 맞서는 슈퍼파워가 되었음을 알린 전투기다. 사진은 1953년 북한 공군의 노금석 대위가 자유를 찾아 탈출할 때 몰고 온 MiG-15 기체다. 사진 위키피디아
MiG-15는 이전까지 해당 분야의 변방으로 취급되던 소련이 냉전 시기에 미국과 맞서는 슈퍼파워가 되었음을 알린 전투기다. 사진은 1953년 북한 공군의 노금석 대위가 자유를 찾아 탈출할 때 몰고 온 MiG-15 기체다. 사진 위키피디아

유엔군이 한만(韓滿) 국경을 향해 쾌속 진군 중이던 1950년 10월 25일, 불길한 조짐이 나타났다. 압록강 인근의 초산 일대를 시작으로 처음 보는 적이 등장한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중공군임이 밝혀졌지만, 유엔군 최고 지휘부는 이들을 제대로 된 무기도 보유하지 못한 전형적인 후진국 군대라고 폄하하며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사실 건국된 지 1년도 안 된 중국이 자국을 벗어나 대규모로 참전할 것으로 예상한 이는 그리 많지 않았다. 이런 예측처럼 실제로 중공군은 부족한 점이 많았다. 한 달을 준비해야 겨우 일주일 정도 공세를 지속할 수 있었을 정도로 전력이 열악했다. 반면 유엔군의 주축인 미군은 불과 5년 전에 사상 최대 전쟁을 승리로 이끈 최강의 군대였다.

그러나 중공군은 비정규전과 심리전을 이용해 아군의 허를 찌르는 데 능수능란했고 이에 대한 대비가 전혀 없던 유엔군은 당황했다. 아무리 그래도 미군은 이를 일시적인 것이라 오판했고 우세한 화력이 자신들을 보호해 줄 것으로 믿었다. 특히 북한이 남침한 다음 날부터 제공권을 장악해버린 공군은 감히 공산군이 넘볼 수 없는 철옹성이라 자신했다.

그런데 중공군이 등장한 지 일주일도 되지 않은 11월 1일, 압록강 부근에서 작전을 벌이던 미군 편대는 처음 보는 공산군 전투기를 목도했다. 갑자기 등장한 적의 공격으로 1기의 F-51과 1기의 F-80이 격추됐다. 미군 조종사들은 뭔가 잘못되고 있다는 예감을 받았다. 바로 동구권 제1세대 전투기(흔히 최초로 실전에 투입된 Me 262부터 초음속 이전의 제트전투기를 의미)를 대표한 MiG-15의 충격적인 데뷔 모습이었다.

전혀 예상치 못한 순간에 모습을 드러낸 MiG-15는 미군의 자신감을 일거에 무너뜨렸다. 그 당시까지 미군이 한반도에 투입한 전투기로 이를 상대하기는 어려웠다. 미군 최초의 제트전투기인 F-80과 이를 후속한 F-84도 속도부터 차이가 확연히 벌어졌다. 공교롭게도 MiG-15와 같은 뿌리의 엔진을 사용하는 해군의 F9F도 객관적인 열세를 보였다.


왼쪽부터 F-86과 MiG-15, 항공 전사의 전설이지만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6·25전쟁이 아니었다면 그 정도의 명성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진 위키미디어
왼쪽부터 F-86과 MiG-15, 항공 전사의 전설이지만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6·25전쟁이 아니었다면 그 정도의 명성을 얻지 못했을 수도 있다. 사진 위키미디어

곧바로 이어진 응전(應戰)

이처럼 전투기가 순식간에 압도당하니 폭격기도 원활히 작전을 펼칠 수 없었다. 태평양 전쟁 말기에 일본 상공을 유유자적하게 휘저으며 폭탄을 던지던 B-29는 고양이 앞에 쥐 신세가 돼버렸다. 11월 25일, 중공군의 2차 공세가 개시되면서 지상군이 붕괴하기 시작했을 때 이를 지원해야 할 공군의 활동이 MiG-15의 출몰로 위축됐다.

이처럼 전황이 급격히 바뀐 바로 그때, 급하게 태평양을 건너 일본에 도착한 항공모함에 실려 있던 전투기가 하역됐다. 이를 수령한 제4 전투비행단은 즉시 기종 전환 훈련을 시행한 후 12월 13일 한국으로 긴급히 전개했다. 그리고 유엔군이 38선까지 황급히 밀려 내려오던 12월 17일, 이들은 MiG-15를 사냥하러 하늘로 날아올랐다.

마치 영화 속 주인공처럼 가장 절실히 원하던 바로 그 순간에 F-86 세이버(Sabre)는 극적으로 모습을 드러냈다. F-86은 이미 오래전에 개발을 마치고 1949년부터 배치가 이뤄지고 있었지만, 군부가 6·25전쟁은 기존 전투기로 충분하다고 여겨 등판시키지 않고 있었다. 그랬던 F-86의 등장을 촉진했을 만큼 MiG-15의 충격은 대단했다.


F-86의 등장도 MiG-15 못지않게 극적이었다. 중공군의 참전 후 위기에 빠진 6·25전쟁의 반전을 이끈 주인공 중 하나다. 사진 위키미디어
F-86의 등장도 MiG-15 못지않게 극적이었다. 중공군의 참전 후 위기에 빠진 6·25전쟁의 반전을 이끈 주인공 중 하나다. 사진 위키미디어

생각보다 짧았던 전성기

마치 한 사람이 설계한 것처럼 기수(機首·비행기의 앞부분)에 공기 흡입구를 설치하고 35도의 후퇴각을 갖는 주익(主翼·좌우 날개) 때문에 외형마저 비슷해 우열을 가리기 어려울 만큼 성능 차이가 없었다. 따라서 조종사의 기량에 따라 승부가 결정되고는 했다. 물론 당시에는 자신의 전투기가 더 좋다고 자랑했지만, 하늘에서 싸우던 조종사는 상대의 뛰어남을 인정했다.

이처럼 F-86과 MiG-15는 제1세대 전투기 시대를 대표하는 라이벌로 등극하면서 오늘날까지 언급되는 항공 전사의 전설로 자리 잡았다. 그런데 등장 당시 가장 좋은 전투기였다는 점에서 이론의 여지가 없지만, 정작 두 전투기의 전성기는 길지 않았다. 6·25전쟁이 끝나자 미국과 소련에서 곧바로 2선급 전투기로 물러났다.

오늘날 주력인 제4세대 전투기가 지속적인 개량을 거쳐 30년 가까이 최고의 자리를 계속 차지하고 있는 것과 비교하면 5년 정도의 전성기는 너무 짧았다. 뛰어난 후속기가 속속 등장했기 때문이었는데, 그만큼 초창기 제트전투기의 기술 발전이 빨랐다. 이 때문에 6·25전쟁이 없었다면 F-86과 MiG-15는 수많은 전투기 중 하나로 짧은 생을 마감했을 것이다.

비즈니스의 세계도 마찬가지다. 아무리 성능이 좋더라도 존재를 어필할 기회가 없다면 성공하기 어렵다. 만일 그런 기회를 얻은 데다 치열하게 경쟁할 라이벌까지 있다면 금상첨화다. 그런 점에서 F-86과 MiG-15는 시대를 잘 타고난 ‘행운아’라고 할 수 있다. 두고두고 회자되는 명성은 이처럼 우연과 필연이 겹쳐야 얻을 수 있는 것인지도 모른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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