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7년 12월 8일 미국의 레이건(오른쪽) 전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중거리 핵전력 감축 조약(INF)에 서명하고 있다. 핵무기의 완전 폐기가 불가능하면 차라리 통제 가능한 국가들의 독과점을 용인하는 것이 차선이 되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1987년 12월 8일 미국의 레이건(오른쪽) 전 대통령과 소련의 고르바초프 전 서기장이 백악관 이스트룸에서 중거리 핵전력 감축 조약(INF)에 서명하고 있다. 핵무기의 완전 폐기가 불가능하면 차라리 통제 가능한 국가들의 독과점을 용인하는 것이 차선이 되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1945년 6월 23일. 마침내 미국은 오키나와 전투에서 승리했으나, 태평양의 작은 섬을 점령하는 데 무려 83일이 걸렸고 4만6000명의 군인이 전사했다. 반면, 패한 일본은 10만 명의 병력 외에도 무려 12만 명의 민간인이 죽었다. 문제는 상당수가 이른바 ‘옥쇄(玉碎·옥처럼 아름답게 부서진다는 뜻으로 죽음을 미화하는 데 사용된 표현)’에 의한 것이었다. 이는 말이 자결이지 권력의 강요에 의한 타살과 다름없었다.

생명을 우습게 아는 이성이 마비된 일본 군국주의자들의 이러한 극렬한 저항은 미국을 심각한 고민에 빠뜨렸다. 다음 목표가 이 전쟁의 최종 단계인 일본 본토 상륙이었는데, 오키나와 전투의 결과를 대입하니 일본은 물론 미국도 상상을 초월하는 피해가 예상됐기 때문이었다. 더구나 일본은 항복을 거부하며 ‘총옥쇄’를 외치고 있었다.

결국 두 발의 핵폭탄을 연이어 얻어맞고 나서야 일본은 저항이 불가능하다는 현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태평양전쟁은 일본 본토가 피바다로 변하기 직전에야 막을 내렸다. 이 때문에 핵폭탄은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서 약 30여만 명으로 추산되는 사람을 순식간에 사라지게 했지만, 최소 수백만의 인명을 살린 것으로 평가된다.

이렇게 제2차 세계대전을 매조지한 결정타가 되면서 핵폭탄은 모두가 원하는 필살기가 됐다. 당연히 미국은 이 초유의 무기를 자신들만 가지고 싶어 했다. 그래서 맨해튼 계획(제2차 세계대전 중에 미국이 주도하고 영국과 캐나다가 참여한 핵폭탄 개발 프로그램) 당시에 많은 역할을 담당한 영국이 전후 핵폭탄 개발을 추진하며 도움을 요청하자 지원을 거부하고 대신 핵우산을 제공하겠다고 태도를 바꿔 영국을 격분시켰다.

이처럼 동맹과 마찰도 불사했을 만큼 대단한 무기다 보니 전후 미국의 패권에 도전하는 유일한 세력이 된 소련의 핵폭탄 보유에 대한 열망이 컸던 것은 당연했다. 결국 소련은 맨해튼 계획에 참여했던 연구원 중에서 공산주의를 지지했던 이들의 도움과 간첩들의 활약 덕분에 시행착오를 줄이며 1949년 핵폭탄 실험에 성공했다.

이는 핵에 의한 균형과 공포로 대변되는 냉전의 시작을 알리는 신호탄이었다. 그렇게 해서 자기만의 보물이기를 원하던 미국의 희망은 불과 4년 만에 일장춘몽이 됐다. 그런데 흥미로운 점은 소련도 미국과 같은 착각을 했다는 것이다. 또 다른 경쟁자가 있으면 곤란하다고 판단해서 핵폭탄이 미국과 소련만 운용하는 무기가 되기를 원했다.

하지만 미국과 소련이 대두하기 이전에 세계사의 주역이었던 여러 나라가 가만 있지 않았다. 먼저 미국에 배신당한 후 독자 개발에 나선 영국은 1952년에 세 번째로 핵클럽 가입에 성공했다. 곧이어 1960년에 프랑스가, 1964년에 중국이 핵무기 보유국이 됐다. 공교롭게도 이들 국가는 현재 유엔(UN) 안전보장이사회 상임이사국이다.

결국 더 이상 확산은 곤란하다고 본 미국과 소련의 주도로 1969년 기존 5개국을 제외하고 핵무기의 개발과 보유를 금지한 핵확산금지조약(NPT)이 성립됐다. 그러나 이들의 의지와 달리 현재 비공식 보유국인 인도·파키스탄과 보유가 확실시되는 이스라엘 그리고 국제적 이슈인 북한·이란처럼 공포의 확산은 여전히 진행형이다.


왼쪽부터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맨해튼 계획의 일부로 개발한 원자 폭탄 ‘뚱보(Fat Man)’와 소련 최초의 핵폭탄인 ‘RDS-1’. RDS-1은 뚱보의 복제품이라고 할 정도로 유사하다. 미국에서 탈취한 많은 기술이 제작에 사용됐기 때문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왼쪽부터 미국이 제2차 세계대전 말기 맨해튼 계획의 일부로 개발한 원자 폭탄 ‘뚱보(Fat Man)’와 소련 최초의 핵폭탄인 ‘RDS-1’. RDS-1은 뚱보의 복제품이라고 할 정도로 유사하다. 미국에서 탈취한 많은 기술이 제작에 사용됐기 때문이다. 사진 위키피디아

어쩌면 유일한 대안 ‘독과점’

독과점으로 시장을 지배하기 원하지 않는 기업은 없다. 원론적으로 기업의 존재 이유가 이익의 창출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공공부문에서 제공하는 서비스 정도를 제외하고 독과점은 워낙 폐해가 크기 때문에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이를 막기 위한 각종 법률이 제정되어 있고 불가피하게 독과점일 수밖에 없는 경우는 공정 거래가 이뤄지도록 감시하고 있다.

그런데 앞서 언급한 핵무기 분야는 차라리 보유국이 적을수록 낫다고 보는 경우다. 파괴력이 워낙 커서 너무 많이 퍼지면 곤란하기 때문이다. 오늘날 국제 정세를 고려하면 핵무기는 적대적이어도 서로를 견제할 수 있는 이들만 보유하는 것이 그나마 차선책이 되어버렸다. 그래서 북한처럼 호전적이고 어디로 튈지 모르는 집단은 비핵화돼야 하는 것이다.

역설적이지만 냉전 시대는 인류 역사상 패권 국가 간의 직접 충돌이 없었던 시기였다. 20세기 초에 있었던 제1차 세계대전만 해도 당대 모든 강대국이 거리낌 없이 선전포고를 남발하고 전쟁을 시작했다. 이후 20년 후 발발한 제2차 세계대전도 마찬가지였다. 독일·일본·이탈리아·소련 등은 호전성을 대놓고 드러냈고 전쟁을 너무 쉽게 벌였다. 하지만 너무 강력한 무기가 등장하자 역설적으로 함부로 싸울 수 없게 됐다. 인류는 핵무기의 공포에서 벗어나고 싶어 하지만 패권국은 핵무기를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 핵무기가 옳지는 않지만, 현실이 이러니 결국 독과점이 용인되고 있다. 그만큼 현재 인류는 그것이 그나마 유일한 대안인 무서운 시대에 살고 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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