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초의 전차인 Mk 1. 탄생 당시에는 이동용 방패였지만 이후 진화를 거듭해 오늘날은 지상전의 왕좌가 되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최초의 전차인 Mk 1. 탄생 당시에는 이동용 방패였지만 이후 진화를 거듭해 오늘날은 지상전의 왕좌가 되었다. 사진 위키피디아

인간은 지구상에 등장한 이후 생존을 위해 다른 생물체와 경쟁을 벌였으나 사실 인간 사이의 경쟁이 가장 극심했다. 그러한 경쟁의 최고봉이 전쟁이다. 필연적으로 살상과 파괴를 동반하므로 전쟁은 일어나지 않는 것이 당연히 좋다. 하지만 칭기즈칸, 나폴레옹, 히틀러처럼 도발을 일삼는 자가 있는 한 아무리 외면해도 전쟁을 회피할 수 없다.

전쟁에서 패배는 죽음이거나 이에 준하는 굴욕을 의미한다. 그래서 스포츠와 달리 전쟁에서 아름다운 패배라는 말은 있을 수 없고 오로지 승리가 절대 선이자 모든 가치의 핵심이 된다. 이처럼 전쟁은 도덕이나 체면치레가 필요 없는 지극히 원초적인 행위이므로 이기기 위해 모든 수단을 동원한다. 그중에서도 가장 중요한 것은 단연코 무기다.

여타 동물과 비교하면 신체적으로 약한 축에 속하는 인간이 험난한 생존 경쟁에서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무기를 사용할 줄 알았기 때문이다. 간과하는 경향이 있지만 석기시대, 청동기시대, 철기시대처럼 역사를 구분 짓는 유물의 상당수가 무기다. 이처럼 무기는 생존을 위한 필수도구이기도 하다. 한마디로 인간과 무기는 떼어 놓고 생각하기 힘들다.

그래서 인류의 역사가 ‘도전과 응전’이라는 아놀드 토인비의 주장을 입증하는 분야 중 하나가 바로 무기의 세계이기도 하다. 일단 상대보다 강력한 무기를 가져야 싸움에서 이길 수 있기 때문이다. 그래서 새로운 무기는 당연히 기존에 존재한 무기보다 강력하다. 아니면 칼·창에서 총·포로 바뀐 것처럼 차원이 다르다.

무기를 살펴보면 칼과 전투기를 직접 연결할 수는 없지만, 정반합(正反合)처럼 쉬지 않고 도전과 응전을 해왔다. 그런 점에서 전차는 탄생 당시와 현재를 비교하면 현상은 그대로지만 본질은 다른 상당히 흥미로운 사례다. 오늘날 전차는 선두에서 전선을 돌파하고 적의 종심을 타격하는 공격용 무기지만 정작 방패나 갑옷처럼 방어를 위해 개발됐다.

100년 전인 1914년에 발발한 제1차 세계대전은 현대식 전쟁의 시작이라고 할 수 있다. 일단 이전 세기에 상상도 못 한 하늘과 물속이 싸움의 장소가 되었다는 것으로 모든 것이 설명된다. 전쟁이 발발한 지 한 달이 지난 9월에 있었던 마른 전투에서 노도(怒濤) 같던 독일의 진격이 멈추고 전선이 고착됐는데 당시에 이것이 지옥의 시작인 줄은 아무도 몰랐다.

전력을 추스른 후 얼마 지나지 않아 교전이 재개됐는데, 양측 지휘관은 나폴레옹 시대부터 내려오던 방식대로 무조건 돌격을 명했다. 하지만 착검하고 적진으로 용감하게 달려간 병사들을 맞이한 것은 무수한 포탄과 기관총이 난사하는 총탄이었다. 특히 기관총은 제1차 세계대전 서부전선을 상징하는 참호전의 악마이자 최악의 살상 도구였다.

수많은 병사가 외마디 비명도 지르지 못하고 쓰러져 갔고 그렇게 전선은 비참하게 죽어간 시신들로 산을 이루었다. 유럽 역사에서 보기 드물게 보불전쟁 후 제1차 세계대전까지 40년이 넘도록 강대국 간의 직접 충돌이 없는 평화가 이어진 결과였다. 평화가 이어지면서 교전 방법은 그대로지만 무기의 살상력은 차원이 다를 만큼 강력해진 것이었다.

이러한 사고(思考)와 현실의 커다란 괴리로 인해 전쟁의 참혹함은 가히 상상을 초월할 정도가 됐다. 그때서야 예전 방식대로 싸울 수 없음을 깨닫고 부랴부랴 다른 방법을 연구했다. 그러던 1916년 9월 15일, 솜 전투에서 참호 속에 있던 독일군은 저 멀리 영국군 진지로부터 철갑을 두른 거대한 물체가 굉음을 내며 다가오는 것을 보았다.


1916년 솜 전투 당시에 진지를 박차고 적진으로 돌격하는 영국군. 이들 모두는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참호전은 공격자가 매우 불리한 싸움이어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었다. 사진 영국 국방부
1916년 솜 전투 당시에 진지를 박차고 적진으로 돌격하는 영국군. 이들 모두는 전사한 것으로 알려진다. 이처럼 참호전은 공격자가 매우 불리한 싸움이어서 특단의 대책이 요구되었다. 사진 영국 국방부

살아남는 것이 이기는 것

기관총을 쏘았으나 탄환을 가볍게 튕겨낸 괴물들이 하나둘 방어선을 넘어오자 겁에 질린 독일군은 줄행랑쳤다. 그렇게 전차는 극적인 모습으로 전쟁에 데뷔했다. 그런데 돌격은 공격행위지만 이때 등장한 최초의 전차는 상대편 참호까지 가는 동안 내가 살아남기 위한 방어 수단에 가까웠다. 일종의 이동이 가능한 방패였던 것이다.

당연히 독일도 얼마 지나지 않아 전차의 방어력이 취약한 부위를 찾아내 반격을 시작했다. 이처럼 전차라는 도전은 곧바로 대전차전이라는 응전을 불러왔다. 그리고 제1차 세계대전에서 단지 가능성만 보여준 무기였던 전차는 이런 도전과 응전의 과정을 반복하며 20년 후 벌어진 제2차 세계대전에 이르러서는 전장을 주도하는 주인공으로 변모했다.

전차를 예로 들었지만 무기는, 특히 전시라면 드러난 문제점에 대한 대응책을 마련하는 것이 급선무다. 기업도 마찬가지다. 문제점이라는 도전이 발생하면 빨리 그리고 정확히 고쳐서 응전해야 시장에서 살아남을 수 있다. 비록 전쟁처럼 목숨을 걸어야 하는 정도는 아니지만, 시장도 그에 못지않게 치열한 경쟁이 벌어지는 곳임은 틀림없기 때문이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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