왼쪽부터 시범 비행 중인 MiG-15와 F-86. 이후 양국은 전투기 분야의 라이벌이 되었지만, 소련 전투기의 성능이 미국 전투기와 대등했던 시기는 1950년대 초뿐이었다. 사진 위키미디어
왼쪽부터 시범 비행 중인 MiG-15와 F-86. 이후 양국은 전투기 분야의 라이벌이 되었지만, 소련 전투기의 성능이 미국 전투기와 대등했던 시기는 1950년대 초뿐이었다. 사진 위키미디어

1950년 11월 1일 압록강 부근에서 작전 중이던 미 공군 편대는 갑자기 등장한 공산군 전투기 공격을 받았다. 순식간에 1기의 F-51과 1기의 F-80이 격추되었는데, 대응할 준비도 할 수 없던 상태에서 상황이 끝났을 만큼 낯선 전투기의 성능은 압도적이었다. 전투기 역사에서 공산권 제1세대 전투기를 대표한 MiG-15의 충격적인 데뷔 모습이었다.

사실 이를 상대하기 위해 서둘러 데뷔시킨 F-86에서 알 수 있듯이 당시 미국도 충분히 뛰어난 전투기를 보유하고 있었다. 그런데도 이 사건이 쇼크로 각인된 이유는 소련(러시아 건국 1991년)의 기술력을 낮추어 본 미국의 만용 때문이었다. 5년 전에 끝난 제2차 세계대전 당시만 해도 소련제 전투기의 성능이 좋지 않았기에 MiG-15에 대한 첩보가 있었음에도 방심했다.

MiG-15의 개발과 관련해서 많은 뒷이야기가 있지만, 어쨌든 이를 기점으로 이후 소련 그리고 현재의 러시아는 미국을 위시한 서방의 전투기와 맞서는 별도 규격 전투기 개발을 선도하고 생산하는 나라가 되었다. 소련의 급부상은 당연히 미국에 엄청난 자극을 주었고 그만큼 양국은 전투기 분야에서 치열하게 경쟁을 벌였다.

그런데 전투기 개발사를 살펴볼 때 소련이 미국과 가장 대등했던 때가 바로 MiG-15가 등장했을 당시였다. 이후 미국과 소련의 경쟁은 마치 장군 멍군처럼 보였지만, 사실 안으로 파고들면 미국의 앞선 발걸음에 소련은 겨우겨우 따라가기 바빴다. 결론적으로 MiG-15 다음에 등장한 소련제 전투기는 성능에서 동시대 미국제 전투기에 뒤졌다.

기존 전투기로 어느 정도 대응이 가능했으나, 당연히 소련은 조급했다. 단지 기체의 성능으로만 보자면 소련 전투기는 속도·상승력·선회력 같은 비행 성능은 최고 수준이었다. 하지만 갈수록 전투기에서 전자·통신·소프트웨어 같은 분야가 차지하는 비중이 커지면서 격차가 벌어졌다. 해당 분야에서 소련의 기술력이 뒤졌기 때문이었다.

1960년대 들어 미국이 당대 최강인 F-4 팬텀 II를 배치하며 본격적으로 제3세대 전투기 시대를 열었을 때도 마찬가지였다. 소련은 그제야 BVR(Beyond Visual Range·가시권 밖) 교전 능력을 보유한 신예기 개발에 착수할 수 있었다. 베트남 전쟁에서 제2세대 전투기인 MiG-17, MiG-21 등이 F-4와의 교전에서 생각보다 좋은 전과를 올렸음에도 초조할 수밖에 없었다.

결국 1972년부터 성능으로 F-4에 뒤지지 않는 MiG-23이 배치되면서 소련도 제3세대 전투기 시대에 본격 진입했다. 이후 MiG-23은 소련을 위시한 동구권에 5000여 기가 공급되어 상업적으로 대단한 성공을 거뒀다. 하지만 이는 자기가 속한 체제에 따라서 선택할 수 있는 전투기의 폭이 한정된 냉전 시기였기 때문에 벌어진 일종의 착시였다.

오히려 당시 미국은 F-15 같은 제4세대 전투기의 배치를 목전에 둔 상황이었다. 알음알음 성능이 어느 정도인지 알려졌기에 이제야 간신히 제3세대 전투기 시대에 진입한 소련은 후속기 개발에 즉시 나서야 했다. 다만 MiG-23에 대한 기대가 상당해서 설령 F-15가 데뷔해도 어느 정도 역할을 담당해 줄 것으로 예상했다.

하지만 1982년 제5차 중동전쟁 당시에 벌어진 베카 계곡 공중전의 결과는 이런 기대를 완전히 무너뜨렸다. 3일간 벌어진 공중전에 이스라엘은 F-15 등 80여 기를, 시리아는 MiG-23을 비롯한 100여 기를 투입했다. 하지만 결과는 이스라엘은 1기의 F-4만 잃은 반면, 시리아는 학살과 같은 85기를 격추당하며 참패했는데 그중에는 상당수의 MiG-23도 있었다.

조기경보기의 지시에 따라 이스라엘이 좋은 위치를 선점한 점도 있지만, 기본적으로 전투기의 성능 차이가 커서 벌어진 결과였다. 수적 우세 등이 더는 유효하지 않게 되었을 만큼 제4세대 전투기의 성능은 이전 세대 전투기와 완전히 차원이 달랐다. 그동안 앞선다고 자부하던 근접전 능력에서도 MiG-23을 위시한 소련 전투기가 뒤졌다.


러시아 5세대 전투기 Su-57. 올해 배치 예정이었지만, 정확한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사진 위키피디아
러시아 5세대 전투기 Su-57. 올해 배치 예정이었지만, 정확한 소식은 전해지지 않는다. 사진 위키피디아
왼쪽부터 상호 요격 중인 리비아 공군의 MiG-23과 미 해군의 F-4. 대표적인 제3세대 전투기들이나 실전 배치는 F-4가 10년 정도 빨랐다. 그 정도로 양국의 기술력 격차는 컸다. 사진 위키피디아
왼쪽부터 상호 요격 중인 리비아 공군의 MiG-23과 미 해군의 F-4. 대표적인 제3세대 전투기들이나 실전 배치는 F-4가 10년 정도 빨랐다. 그 정도로 양국의 기술력 격차는 컸다. 사진 위키피디아

늦었지만 포기할 수도 없어

결국 소련은 1980년대 중반에야 Su-27을 선보이며 제4세대 전투기 시대에 진입하는 데 성공했다. 그러나 마치 데자뷔처럼 이때가 미국은 스텔스를 기반으로 한 제5세대 전투기 사업을 시작한 시점이었다.

결국 미국은 2005년 F-22를 실전 배치하면서 새로운 시대를 열었고, 러시아는 그제야 제5세대 전투기 사업을 시작했고 현재도 진행형이다.

비즈니스 세계에서 시장 선점의 중요성은 두말할 필요가 없다. 뒤를 쫓다 좌절하는 후발주자가 한둘이 아니다. 그런데 군사 분야는 설령 그렇다고 도전을 포기할 수도 없다. 냉전 시대만큼은 아니더라도 경쟁자가 존재하는 한 대응해야 하기 때문이다. 전투기 개발사를 보면 고생스럽더라도 포기할 수 없는 후발주자의 고민을 한눈에 볼 수 있어 흥미롭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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