PPSh-41은 소련에서는 구국의 기관단총으로 불렸지만, 6·25전쟁 때 경험 때문에 우리에게는 불쾌한 기억일 수밖에 없다. 사진 위키피디아
PPSh-41은 소련에서는 구국의 기관단총으로 불렸지만, 6·25전쟁 때 경험 때문에 우리에게는 불쾌한 기억일 수밖에 없다. 사진 위키피디아

인간이 소비를 하는 첫 번째 이유는 생존하기 위해서다. 종교인이나 자연인처럼 아무리 무소유의 가치를 실현하기 위해 꾸준히 정진하는 이라도 살아 있는 동안 반드시 보유하거나 사용해야만 하는 것들이 존재할 수밖에 없다. 흔히 이를 생필품이라고 한다. 불가능한 것은 아니지만, 사람이 현대 사회에서 살아가는 한 자급자족은 대단히 어렵다.

생필품을 획득하려면 당연히 경제적 대가를 지불해야 한다. 설령 기부 물품처럼 베푸는 이의 선의에 의해서 무상으로 얻은 것이라도 결과적으로 경제 활동임은 분명하다. 재화가 탄생해서 사라질 때까지의 모든 과정을 살펴보면 적어도 한 번 이상은 대가가 치러지는 순간이 반드시 있기 때문이다. 적어도 경제 원리를 보자면 그렇다.

그런데 인간은 생필품이라도 좀 더 나은 것을 얻고자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 만족을 누리기 위해 이른바 살아가는 데 필요하지 않은 사치품까지도 소비한다. 이는 상당히 자연스러운 본능이자 자본주의가 유지되는 기저이기도 하다.

공산주의가 몰락한 이유 중 하나가 단지 양만 맞추면 된다고 보고 이런 욕구를 충족시키려 하지 않았던 점이다.

좋은 것을 소비하려는 인간의 본능은 나와 남을 비교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무인도에서 외부의 도움 없이 혼자 살아가야 하는 로빈슨 크루소 같은 처지라면 당장 생존하는 데 필요한 것 이상의 욕구가 존재하기 어렵다. 인간은 사회적 동물이어서 남보다 낫기를 바라는 것은 어쩌면 당연하고, 그 와중에 자연스럽게 비교가 이루어진다.

그래서 설령 같은 가치나 품질을 가졌어도 심리적으로 남의 것이 더 좋다고 여기는 경향이 강하다. 바로 남의 떡이 커 보이는 것이다. 결국 부러워하던 것을 획득해도 거기서 끝나지 않고 또 다른 경쟁 대상을 찾아다니기까지 한다. 과소비가 결코 좋은 것은 아니나 남의 떡이 커 보이는 현상은 경제를 움직이는 중요한 동인이기도 하다.

무기의 세계도 이런 본능을 볼 수 있는 곳이다. 특히 전시에 그렇다. 어쩌면 더욱 극명하게 남의 떡을 차지하거나 적어도 같은 떡을 갖기 위해 애쓴다. 그럴 수밖에 없는 이유는 현대전으로 올수록 어떤 무기를 사용하는가에 따라 승패가 좌우되기도 하지만, 무엇보다 전선에서 싸우는 병사들에게는 하나밖에 없는 목숨이 걸린 문제이기 때문이다.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노획한 PPSh-41로 무장하고 경계를 서는 독일 병사. 지속 사격 능력과 안정성이 뛰어나서 독일군도 즐겨 사용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스탈린그라드 전투 당시 노획한 PPSh-41로 무장하고 경계를 서는 독일 병사. 지속 사격 능력과 안정성이 뛰어나서 독일군도 즐겨 사용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독일의 MP40 기관단총. 제2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무기 중 하나로 피해를 많이 당한 소련 병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독일의 MP40 기관단총. 제2차 세계대전을 상징하는 대표적인 무기 중 하나로 피해를 많이 당한 소련 병사들에게 선망의 대상이 되기도 했다. 사진 위키피디아

상대 무기가 좋아 보이다

PPSh-41 기관단총은 우리에게 6·25전쟁 당시에 북한군이 사용했던 이른바 따발총으로 많이 알려져 있다. 그래서 군사 분야의 문외한들도 한 번 이상은 들어봤을 만큼 낯설지 않지만, 피해를 본 입장이었기에 결코 좋은 감정을 느낄 만한 무기가 아니다. 반면, 이를 개발한 소련에서는 제2차 세계대전 당시의 활약상 때문에 조국을 구한 기관단총이라고 불렸다.

오로지 근접전을 목적으로 탄생한 기관단총은 연사력이 중시되지만, 사거리·정확도·파괴력은 소총과 비교해 한참 떨어진다. 그래서 유효 사거리는 대략 100m 정도지만, 실제로는 50m를 벗어난 목표에 치명적인 타격을 가하기 힘들 정도다. 이 때문에 보병의 주력 화기는 아니고 대개 보조 화기나 비전투 병과나 포병·기갑 병과 등에서 사용하는 것이 일반적이다.

더구나 총이 전쟁의 승패에 커다란 역할을 차지한 것은 1870년의 보불전쟁이 마지막이었다. 이후부터는 기술의 발달에 힘입어 성능이 향상된 야포를 비롯한 다양한 중화기들이 전쟁을 이끌었다. 따라서 PPSh-41 기관단총이 실제로 전쟁에서 차지한 역할은 제한적이었다. 그런데도 과분할 정도로 찬사를 받는 이유는 필요할 때 반드시 작동했기 때문이다.

아무리 다양한 무기가 등장했어도 보통의 병사에게는 일단 자신이 들고 있는 총이 가장 중요하다. 그런데 적이 눈앞에 보이는 결정적인 순간에 고장이 나거나 작동 불량으로 무용지물이 되어 낭패를 준 총이 의외로 많다. 기관단총으로는 PPSh-41과 비슷한 시기에 탄생한 영국의 스텐(STEN)이 대표적이다. 그런 점에서 PPSh-41은 안정성으로 유명했다.

이처럼 평판이 좋았음에도 일선의 소련 병사들은 정작 독일의 MP40 기관단총이 더 좋다고 생각했다. 사실 두 기관단총은 객관적으로 성능 차이가 거의 없는 걸작이다. 단지 개전 초기에 혹독할 정도로 패배를 거듭하다 보니 소련군 중에서 막연히 독일제 무기의 성능이 좋다고 인식해 버린 이가 많았던 것이 가장 큰 이유였다.

반면, 독일 병사들은 지속 사격 능력이 뛰어나고 어지간해서 고장도 나지 않는다는 이유로 PPSh-41을 높게 평가했다. 그래서 양측 병사들은 상대 기관단총을 노획해 사용하기를 주저하지 않았다. 결론적으로 남의 떡이 더 커 보였던 것이다. 이처럼 전쟁 중 적의 무기를 사용하는 행위는 일반적이었다. 어떻게든 살아남는 것이 가장 중요하기 때문이었다.

남도현 군사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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