멜라니 퍼킨스 캔바 창업자 퓨전북스 창업자 ‘포브스’ ‘2022년 젊은 리더 30명’ / 사진 캔바
멜라니 퍼킨스 캔바 창업자 퓨전북스 창업자 ‘포브스’ ‘2022년 젊은 리더 30명’ / 사진 캔바

명함부터 발표 자료, 전단, 이력서, 소셜미디어(SNS) 포스팅, 로고까지 일상의 다양한 곳에 활용되는 디자인을 손쉽게 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기업이 있다. 바로 간편한 그래픽 디자인 툴을 제공하는 ‘캔바(CANVA)’다. 호주에서 창업한 캔바는 190개국에서 6000만 명(월간 활성 사용자 기준) 이상이 쓰고 있으며, 올해 매출은 10억달러(약 1조2000억원)를 넘어설 것으로 기대된다.

캔바는 올해 데카콘(기업가치 100억달러 이상인 비상장 스타트업) 지위를 얻었다. 전 세계 5번째로 큰 스타트업으로 주목받는다. 올해 9월까지 총 57억2600만달러(약 7조원)를 투자받으며, 기업가치를 400억달러(약 48조6000억원)로 평가받았다. 캔바를 키운 1987년생 멜라니 퍼킨스(Melanie Perkins)도 덩달아 억만장자 대열에 올랐다. 그는 호주에서 광산 재벌 ‘지나 라인하트’ 핸콕 프로스펙팅 회장에 이어 2위 여성 부자가 됐다.

퍼킨스는 호주 서부 도시 퍼스에서 태어나고 자랐으며, 이곳에서 창업을 했다. 2006년, 19세 대학교 신입생이었던 그는 디자인을 가르쳐주는 아르바이트를 하다 많은 이가 디자인 공부에 어려움을 겪는 것을 보고 창업 아이디어를 얻었다. 디자인 프로그램 ‘인디자인’ ‘포토샵’ 등은 사용 전 수백 개의 버튼을 공부해야 디자인을 할 수 있었다. 비전문가는 반년을 공부해도 디자인 작업에 어려움을 겪었다. 성능 좋은 컴퓨터가 필요하고, 프로그램 구매 비용도 비싸 접근성이 높지 않다는 점도 단점이었다.

퍼킨스는 2007년 웨스턴오스트레일리아대를 중퇴하고, 기술 지식이 없어도 사용 가능한 디자인 플랫폼을 개발하기로 마음먹었다. 자주 쓰는 기능을 모아 손쉽게 작업을 할 수 있게 하고, 따로 프로그램을 설치하지 않아도 온라인상에서 바로 이용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만드는 게 목표였다. 퍼킨스의 창업에 남자 친구 클리프 오브레히트(Cliff Obrecht)도 힘을 보탰다. 두 사람은 디자인 간편화를 위한 첫걸음으로 ‘학교 졸업 앨범 디자인 프로그램’을 만들기로 했다. 당장 마케팅, 소프트웨어 개발 경험도 없고 자본도 많지 않아 마이크로소프트(MS), 어도비 등 대기업들과 경쟁이 어렵다고 판단해 내린 선택이었다.

두 사람은 대출을 받고 아르바이트를 하며 초기 자본을 모아 캔바의 전신인 ‘퓨전북스(Fusion Books)’를 세웠다. 퍼킨스 부모님 집 거실을 사무실 삼아 일을 했다. 도움을 요청하기 위해 찾은 소프트웨어 개발사들은 사업 아이템을 두고 ‘불가능하다’ ‘비용이 너무 많이 들 것 같다’ 등 회의적인 의견을 내놨다. 두 사람은 비판에 굴하지 않고 출판 경험이 없는 사람들도 쉽고 빠르게 전문적인 졸업 앨범을 만들 수 있는 시스템을 구축했다. 가족들도 힘을 합쳐 호주에 있는 많은 학교에 보낼 샘플을 준비해줬다.

우려와 달리 퓨전북스는 점차 사업을 키울 수 있었다. 학생들과 교사는 퓨전북스를 사용해 온라인상에서 자신의 사진과 프로필을 쉽게 편집할 수 있고 원하는 레이아웃과 색상을 마음껏 선택할 수 있다는 점에 환호했다. 퓨전북스는 사업 첫해 15개교의 졸업 앨범을 만드는 데 그쳤지만, 점차 고객을 늘려 400개교의 졸업 앨범을 제작했다. 이윽고 호주 1위 졸업 앨범 업체로 올라서며 뉴질랜드와 프랑스에 진출했다.

퍼킨스는 여기에 만족하지 않았다. 창업할 때부터 세웠던 ‘전 세계 모든 사람이 무엇이든 디자인하고 어디에든 게시할 수 있게 하겠다’는 목표가 있었기 때문. 퍼킨스는 사업 확대를 꿈꾸며 프레젠테이션 자료를 만들고 투자자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초기 투자자를 찾는 건 순조롭지 않았다. 퓨전북스를 세웠던 호주 퍼스는 외딴 지역이었다. 벤처 투자금이 넘치는 미국은 물론 호주 내 대도시와 떨어져 있어 벤처 투자자에게 접근하는 것부터 쉽지 않았다. 그는 3년 동안 첫 투자를 받지 못했고, 100명이 넘는 투자자들에게 거절을 당했다.

퍼킨스는 실리콘밸리 유명 벤처캐피털리스트 빌 타이를 만난 이후 접점을 만들기 위해 간절히 SNS 메시지를 보내고, 좋아하지도 않는 ‘카이트서핑(서핑과 패러글라이딩을 접목한 레저 스포츠)’까지 배웠다. 그의 열정을 눈여겨본 빌 타이는 퍼킨스를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만나고, 다른 벤처캐피털리스트에게 소개까지 해줬다. 퍼킨스는 이후 빌 타이와 구글맵 공동설립자인 라스 라스무센, 켄 골드먼 전 야후 최고재무담당임원(CFO), 호주 정부로부터 300만달러(약 36억원)의 투자금을 얻어냈다.


“누구든 디자인할 수 있는 세상 만든다”

퍼킨스와 그의 남자 친구 오브레히트는 초기 투자금 덕분에 2013년 두 번째 스타트업인 캔바를 세울 수 있었다. ‘캔버스’에서 이름을 따온 캔바는 포스터, 메뉴판, 엽서 등 어떤 디자인이라도 쉽게 할 수 있도록 간편한 사용법을 추구했다. 몇 번의 드래그 앤드 드롭 방식으로 얼마든지 새로운 디자인을 만들어낼 수 있도록 만들었고 친구, 고객, 동료 등과 캔바를 이용해 실시간으로 작업을 공유할 수도 있게 했다. 만든 디자인은 SNS 계정에도 곧바로 공유할 수 있게 했다.

라스 라스무센은 당시 “페이스북과 트위터가 친구와 즉시 경험을 공유할 수 있는 세상을 만들었지만 디자인 툴은 그렇지 못했다”며 “디자인 시장에도 격변의 시대가 도래했고, 캔바에 답이 있다”고 했다. 전 구글 디자이너였던 카메론 아담스, 애플의 전설적인 마케터 가이 가와사키까지 캔바의 성장세에 힘을 보탰다.

캔바는 점차 영역을 넓혀나갔다. 컴퓨터, 스마트폰, 탭 등 모든 디지털 기기에서 캔바를 사용할 수 있게 하고 이력서, 명함 등의 종이 위주에서 동영상, 뉴스레터, SNS 포스팅 등 디지털 디자인까지 적용할 수 있도록 서비스를 확장했다. 2019년에는 고객들에게 고품질 자료를 제공하기 위해 펙셀과 픽사베이를 인수해 소비자들의 선택권을 늘렸다. 한 번만 클릭하면 배경을 없앨 수 있거나, SNS에 원하는 시간에 업로드 예약을 할 수 있는 기능도 추가해 더욱 호응을 얻었다.

캔바는 지난해 신종 코로나 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 대유행으로 덕을 보기도 했다. 증가한 긱 워커(gig worker·조직과 정해진 출퇴근 시간 없이 수입을 올리는 근로자)와 재택근무자들은 비즈니스 파트너들과 실시간으로 디자인을 작업·공유할 수 있는 캔바에 주목했다. 한 해 동안 캔바의 기업 고객은 네 배 늘었고 작업 중인 디자인도 세 배 이상 늘었다. 줌, 킴벌리클라크, 아메리칸 에어라인, CBRE 등 50만 개 넘는 기업과 9만 개 이상의 교육기관, 세계보건기구(WHO), 유엔 인권위원회 등 5만5000여 개 비영리단체가 캔바를 활용하고 있다. 캔바를 이용해 NFT (Non Fungible Token·대체 불가 토큰)를 제작할 수도 있다. NFT붐이 캔바의 인기를 더욱 높일 것으로 기대되는 이유다.

캔바의 인기가 높아지자, 투자자들도 계속해서 몰리고 있다. 2018년 유니콘(기업가치 10억달러 이상 비상장기업) 대열에 합류한 캔바는 3년 만에 데카콘으로 올라섰다. 캔바의 기업가치는 2020년 6월 60억달러(약 7조2000억원)로 평가받았으나, 올해 9월 400억달러(약 48조원)로 평가받았다. 이에 올해 초 결혼해 부부가 된 퍼킨스와 오브레히트는 호주에서 40세 이하 최고 부자가 됐다. 블룸버그 억만장자 지수에 따르면, 퍼킨스와 오브레히트의 재산은 각각 59억달러(약 7조원)로, 전 세계 492위다.

두 사람은 억만장자로 남기보다, 더 좋은 세상을 만들어나가는 데 보태겠다고 선언했다. 두 사람은 가지고 있는 지분의 30%를 캔바 재단에 양도하기로 약속했다. 공동창업자 오브레히트는 ‘포브스’와 인터뷰에서 “우리에게 동기부여를 하는 것은 ‘돈’이 아니라, 많은 이가 자신이 좋아하는 제품을 만들도록 하는 것”이라며 “부(富)를 사회에 환원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퍼킨스도 “캔바의 기업가치가 커질수록 세상에 긍정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우리의 능력도 커진다”고 말했다.

캔바는 ‘경제적 여유가 있는 소수뿐 아니라, 모든 사람이 디자인에 접근할 수 있어야 한다’며 비영리 조직과 교육기관에는 무료로 프리미엄 캔바를 제공하고 있다. 기업자선운동 1% 서약에 참여하고 있으며, 현재까지 200만 그루의 나무를 심기도 했다.

안소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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