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허욱 법무법인 세종 변호사
연세대 경영학·법학, 베이징대 법학 박사, 사법연수원 33기, 전 법무법인 율촌 상하이 대표처 대표

고속철도를 타고 중국의 드넓은 평야 지대를 달리거나, 차를 타고 지방 중소 도시를 관통하다 보면 뜬금없이 논 한복판 또는 도시 중심부에 아파트 단지나 테마파크, 거대한 쇼핑몰이 지어지다 말고 방치돼 있는 것을 종종 보곤 한다. 마감 공사가 제대로 마무리되지 않아 도색이 돼 있지 않은 회색빛 콘크리트 구조물과 철근들이 꽤 을씨년스러운 느낌까지 준다. 밤이 되면 미등 하나 들어오지 않는 이런 건축물은 어두운 기세를 내뿜으며 주변에 위화감을 조성한다. 

이러한 건축물을 중국에서는 란미루라고 한다. 중국 법률상 란미루에 관한 명확한 개념이 있는 건 아니다. 그러나 일반적으로는 상당 부분 공사가 진척됐지만 갑작스러운 자금 공급 중단, 관련 법규 위반에 따른 제재, 정책적인 이유 등으로 공사가 강제로 중단된 후 오래도록 시공이 재개되지 않아 방치된 건축물을 말한다. 

란미루가 발생하는 원인은 다양하다. 첫째는 사업 타당성 조사 부실이다. 부동산 개발 업체가 시장 조사 등 건설 프로젝트의 사업 타당성을 충분히 연구하지 않은 채로 개발에 착수하면 프로젝트 진행 과정에서 일어나는 갑작스러운 시장 리스크(위험)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하게 되므로 란미루가 생겨난다. 

둘째는 자금 공급 중단이다. 개발 후반으로 갈수록 자금이 부족해 공사가 중단되는 것이다. 프로젝트 설계 부실로 개발 착수 시기에 자금 준비가 부족하거나 자금 수요 예측에 오류가 있어서 개발 과정에서 필요한 자금을 제대로 확보하지 못하면 이런 일이 발생한다. 

셋째는 수요 조사 실패다. 개발한 부동산에 수요가 형성되지 않아 판매가 부진하거나 판매 통로가 막혀, 개발을 계속할수록 손실이 발생해 건축을 중단하는 경우다. 

넷째는 사법 리스크다. 건축에 필요한 허가를 받지 못하는 등 개발 업체가 개발 진행 과정에서 위법 행위를 하거나 개발 업체가 각종 경제적인 분쟁에 휩싸이게 되면서 사법기관이 건설 공정에 여러 가지 보전 조치를 취해서 공사가 중단되기도 한다.

이런 란미루는 토지 자원을 낭비하고 채권자와 입주 예정자, 시공업자 등 여러 이해 관계인에게 손해를 입힌다. 이에 중국 정부는 다양한 정책을 통해 란미루를 현금화해서 채권자의 채권을 상환하고, 후속 시공 업체를 선정해 완공할 수 있도록 장려하고 있다. 중국 파산법에 따르면 채무자의 계속된 영업을 위해 지불한 노동 보수와 사회보험 비용 및 그로부터 발생한 기타 채무는 공익채무다. 파산 비용과 공익채무는 채무자 재산으로 언제나 변제할 수 있다. 

이 규정은 란미루 공사를 이어받은 후속 시공 업체가 발생한 공사 대금을 적시에 지급받을 수 있도록 해 후속 시공 업체가 법률적으로 보호받을 수 있게 한다. 그러나 20년이 넘게 방치된 광둥성 선전의 어느 란미루 단지는 20년 전보다 현재 주변 집값이 수 배가 뛰어 란미루 처리 방안을 두고 분양받은사람들이 합의에 도달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한 상황이 됐다. 얽혀 버린 실타래 같은 란미루를 해결하는 일은 정부나 이해 관계자와의 간절한 바람을 외면하고 시간의 흐름 속에 방치되고 있다. 

한국 광주에서는 최근 대기업이 짓고 있던 아파트 외벽이 무너져 내리는 사고가 발생했다. 입주 예정자의 꿈이 멈춰 버렸거나 무너져 내렸다는 점에서 란미루와 사고가 난 한국의 아파트는 서로 닮았다. 두 건축물의 삭막한 무채색은 이제 빛바랜 과거 기록물에서나 볼 수 있기를 간절하게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