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민법전 제10조는 ‘민사 분쟁을 처리함에는 법률의 규정에 따르고, 법률에 규정이 없는 경우에는 관습을 적용할 수 있다. 다만 공서양속에 위배돼서는 안 된다’고 규정한다. 공서양속은 공공 질서나 동시대 사람끼리 공유하는 일반적인 도덕관념을 말한다. 중국 민법전이 공서양속 개념을 확실히 규정하고 있진 않지만, 중국 여러 법규에 산재해 있는 규정들을 살펴보면 중국 동시대의 일반적인 도덕관념이 어떤 것인지를 미루어 짐작할 수 있다.
올해 3월 중공중앙 사무처와 국무원 사무처는 ‘과학윤리 거버넌스 강화에 관한 의견(關於加強科技倫理治理的意見)’을 반포했다. 본 의견에서는 과학윤리 원칙을 명확히 할 것을 주문하면서 생명 존중을 강조했다. 여기에 따르면 과학기술 활동은 최대한 사람의 생명과 안전, 신체와 심리적인 건강에 영향을 줄 수 있는 상해와 위협을 최소화해야 한다. 또한 인격의 존엄과 개인의 사생활을 존중하고 과학기술 활동에 참여하는 사람의 알 권리와 선택권을 보장해야 한다. 종교와 신앙을 존중하고 문화 전통의 차이를 존중하며 공정, 공평의 법칙에 따라 사회의 서로 다른 조직을 포용성 있게 대할 것도 함께 주문했다. 4차 산업 혁명이 강조되면서 자율주행차와 인공지능(AI) 영역에서 과학과 윤리의 절충점을 찾는 노력이 계속되고 있는 가운데, 생명 존중과 알 권리, 종교, 신앙, 공정 등 인류 보편적인 가치를 역설한 것이다.
더불어 최근 중국 최고인민법원은 ‘반부정당경쟁법의 적용에 대한 사법해석(最高人民法院關於適用〈中華人民共和國反不正當競爭法〉若幹問題的解釋)’을 반포했다. 중국 반부정당경쟁법 제2조는 ‘사업자는 생산경영활동 과정에서 법률과 상업 도덕을 준수해야 한다’라고 규정한다. 이와 관련 이번 사법해석 제3조는 ‘특정한 상업 영역에서 보편적으로 지키거나 인정받는 행위규범’을 상업 도덕이라고 규정했다. 상업 도덕을 위반했는지를 판단하기 위해서는 사건의 구체적인 상황, 업계의 규칙 또는 상업 관례, 사업자의 주관적인 의사, 거래 상대방의 의사, 소비자 권익, 시장 경쟁 질서, 사회 공공 이익에 관한 영향 등을 종합적으로 고려할 것을 주문했다.
과학윤리와 공중도덕은 모두 공서양속의 각론에 해당한다고 할 수 있다. 공서양속, 과학윤리, 공중도덕 같은 일반 규정은 자칫 막연할 수 있어 법규의 예측 가능성을 떨어뜨리기도 한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는 빠르게 발전하는 세상을 법률이 제때 따라가지 못하는 법률 지체 현상이 일상이 된 현시대에 규정 자체의 유연성과 융통성을 앞세워 법규의 현실 적응력을 높이는 순기능을 하기도 한다.
중국의 법 현실이 우리와는 간극이 있다고 느끼는 경우가 많다. 현재를 살아가는 사람 간에 공유되는 공서양식이 우리와 다르기 때문이다. 사회주의 시장주의 경제 질서 아래서의 공서양속과 자본주의 시장주의 경제 질서 아래서의 공서양속은 다를 수밖에 없다. 그런데도 생명 존중의 과학윤리는 우리와 전혀 다르지 않은 공통 가치다. 팬데믹(pan-demic·감염병 대유행)을 놓고 봐도 제로(zero) 코로나를 추구하는 중국과 K방역을 앞세운 우리는 국민의 생명과 안전을 수호하자는 기본 가치가 같다. 다만 구체적인 방법에서 서로 다른 국가 상황을 반영해 채택한 방법이 다를 뿐이다. 다른 부분에만 천착해서 ‘다른 것은 틀리다’는 성급한 오판에서 벗어나 나와 다른 것이 틀린 것이 아니고 어떨 때는 그것이 더 옳은 것일 수도 있다는 너그러움을 가지는 자세가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