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19 확산으로 인한 상하이 봉쇄 조치로 시민이 출근하지 못하고 공장이 멈춰서는 일이 일어났다. 건물을 임차해 공장을 운영하던 사장은 상하이에서 이런 일이 일어날지 상상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 임차인은 애당초 임대차 계약에서 약정한 임대료를 제때 지급하지 못해 임대차 계약에서 약정한 해지 조건까지 이르게 됐다. 이때 건물주인 임대인은 임대차 계약을 해지할 수 있는가.
상하이 고급인민법원은 이런 문제의 해결법을 제시했다. 상하이 고급인민법원이 반포한 ‘코로나19 감염병 관련 사건의 법률 적용 문제에 관한 시리즈 문답3(關於涉新冠肺炎疫情案件法律適用問題的系列問答之三)’에 의하면 “상업용 건물의 임차인이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정상적인 영업을 하지 못한 사업장 임대료를 감액해달라고 청구할 수 있는가”라는 질문에 “임대 건물이 영리 목적으로 이용되고 코로나19 상황 또는 코로나19 방역 조치로 인해 임차인의 자금 회전이 어려움을 겪거나 또는 영업 수입이 현저히 감소했는데도 임차인이 약정에 따른 기한에 임대료를 지급하지 않았다는 이유로 임대인이 임대차 계약을 해지하는 경우에는 인민법원은 이를 지지하지 않는다”라고 규정했다.
이런 경우에 중국어로는 정세변경, 우리말로는 사정변경 원칙을 적용할 수 있다. 중국 민법전 제533조는 “계약 성립 후에 계약 기초가 됐던 조건에 당사자가 계약 체결 시에는 미처 예상할 수 없었던, 상업적 리스크(위험)에는 속하지 않는 중대한 변화로 계약의 계속된 이행이 당사자 일방에게 현저하게 불공평한 경우에는 불리한 영향을 받는 당사자는 상대방과 재협상할 수 있다. 합리적인 기한 내 합의에 도달하지 못하는 경우에는 당사자는 인민법원 또는 중재 기구에 계약의 변경 또는 해제를 청구할 수 있다. 인민법원 또는 중재 기구는 사건의 실제 상황을 고려해 공평 원칙에 따라 계약을 변경 또는 해제해야 한다”고 사정변경의 원칙을 규정한다.
사정변경과 구별해야 할 것은 불가항력과 상업적 리스크(商業風險)다. 불가항력은 계약 목적 자체가 이행 불가능하게 되는 경우다. 중국 민법전 제563조는 불가항력으로 계약 목적을 실현할 수 없게 된 경우를 계약 해제 사유로 규정한다. 중국에서 상업적 리스크란 영리 활동 과정에서 여러 불확실성으로 인해 사업 주체에게 이익이나 손실에 대한 기회나 가능성을 주는 모든 객관적 경제 현상을 말한다. 물가 변동, 화폐 가치와 환율 등락, 정치·경제·사회·문화적 환경 변화, 소비자 기호의 변화가 모두 이에 포함된다. 즉, 사정변경은 예측 가능성의 범위를 벗어난 것이고 상업 리스크는 계약 체결 당시에 당사자가 미처 예상하지 못한 사정이라도 객관적인 시각에서 보면 예견할 수 있었던 경우이기 때문에, 그로 인한 불이익은 결국 계약 당사자가 부담해야 한다. 주가 폭락이 대표적인 사례다.
한·중 국교를 수립한 지 30년이 됐다. 30년 동안의 한·중 관계를 둘러싼 변화만큼이나 극적인 사정변경을 나타내는 경우도 흔치 않다. 이 기간 한·중 관계 변화가 예측할 수 있는 범위를 벗어나 있다고 해도 두 나라가 현재 당면하고 있는 각종 현안은 해결 방법이 없는 불가항력이라고 할 수는 없다. 또한 양국 관계에서 다양하고 복잡한 상업적 리스크가 증가하고 있다는 건 그만큼 두 나라가 더 가까워지고 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이런 사정변경을 디딤돌 삼아 함께 천리를 내다보기 위해 한 층 더 오르는(欲窮千裏目,更上一層樓) 노력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