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중견기업을 운영하는 40대 중반의 박 대표는 어릴 때 별명이 ‘약골’이었다. 박 대표 어머니는 아들의 건강을 생각해 몸에 좋다는 보약이란 보약은 다 챙겨 먹였다. 박 대표의 기억에 어머니가 차려 준 식탁은 늘 산해진미로 가득했다.

어머니의 정성 덕분인지 박 대표는 청소년기를 지나면서 건장한 체격의 성인으로 자랐다. 박 대표는 ‘밥심으로 산다’는 집안의 건강 철학을 성인이 되어서도 계속 지켰다. 그는 매일 각종 영양제를 먹는 건 물론이고, 매 끼니 잘 챙겨 먹으려고 노력했다. 박 대표의 식탁에는 일주일에 엿새 이상 고기 반찬이 등장한다. 온 가족이 한 끼에 쌀밥 한 그릇씩 가득 채워 맛나게 뚝딱 비워낸다. 야채는 잘 먹지 않지만 영양제로 보충하니 부족함이 없어 보였다. 몸에 나쁘다는 술·담배는 아예 입에 대지도 않는다.


“잘 먹어야 건강하다”는 잘못된 신념

평소에 건강 관리를 잘해왔다고 생각한 박 대표는 얼마 전 병원을 찾았다. 40대 중반에 접어들면서 안개 낀 듯 머리가 맑지 않고 집중이 잘되지 않아서다. 집중력이 떨어진 것도 문제지만 갑자기 찾아드는 어지럼증과 편두통에 겁이 났다. 병원에서는 뇌 MRI(자기공명영상) 검사를 비롯한 종합검진을 권했다.

검사 결과는 놀라웠다. 박 대표는 술을 마시지 않는데도 지방간에 내장지방이 심했고, 콜레스테롤과 중성지방 수치가 높고 내당능장애가 있었다. 혈압도 높은 편이고, 머리에 미세 혈관 한두 곳이 막혔던 흔적도 발견됐다. 담당의는 꾸준히 운동하고 육류를 줄이고 소식하라는 권고와 함께 고지혈증에 대한 치료약과 혈전 예방약을 처방했다.

검사 결과, 박 대표의 몸은 겉으로는 멀쩡해 보이지만 속의 장기는 약한 것으로 나타났다. 박 대표는 타고난 체질이 약하기 때문에 평소에 남들보다 소식하는 게 옳았다. 하지만 잘 먹어야 건강하다는 잘못된 신념으로 몸에 불필요한 에너지를 많이 섭취했고, 이 때문에 인슐린 저항성이 높고, 에너지 대사가 느린 체질로 성장했다. 이로 인해 음식을 섭취하면 혈당이 쉽게 올라가고 고지혈증과 지방간, 내장지방이 증가했다. 동맥경화가 생기고 혈압이 올라가며 심혈관 질환의 발생 위험이 커졌다.

MRI에서는 뇌혈관이 막혔던 흔적까지 확인됐다. 나머지 혈관의 상태도 좋지 않을 것으로 추정된다. MRI에 보이지 않는다고 괜찮은 것이 아니다. 다른 혈관에 동맥경화, 죽상동맥경화증이 발생했을 가능성이 높다. 혈관 내피 안쪽에 주로 콜레스테롤로 구성된 죽종이 만들어져 혈관 속이 좁아진 것을 죽상동맥경화증이라고 한다. 이는 작은 동맥이 막히는 주된 원인이 되며 콜레스테롤 수치가 높은 것과 관련이 많다. 죽상동맥경화를 철저히 관리하지 않으면 또 다른 혈관으로 전이돼 뇌가 점점 더 나빠진다. 이는 피질하혈관 치매로 발전할 수 있다. 죽상동맥경화증은 작은 동맥 중에서도 혈압이 높은 곳에 잘 발생하므로 치매 발생 가능성이 높아질 수 있다. 양질의 음식을 먹는 것은 건강을 지키는 데 중요하다. 하지만 과하게 잘 먹고 많이 먹는 것은 건강에 문제를 일으킬 수 있다.


▒ 김철수
연세대 의대 졸업, 가정의학과 전문의, 경희대 한의학과 졸업,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