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가 방송 일 하거든요. 별도의 진료실에서 치료받을 수 있을까요.”

마흔 살 남성 P씨가 내원했다. 모자를 푹 눌러 쓴 그는 마스크도 착용했다. 탈모 치료 병원 특성상 모자를 쓴 사람이 많다. 상담 대기자 3명 중 1명은 모자를 쓰고 있다. 그래서 모자를 쓴 건 전혀 낯설지 않지만, 실내에서 마스크까지 한 사람은 흔치 않다.

진료실에 온 P씨가 앞머리를 들췄다. 이마 양 측면이 3㎝쯤 올라가 있었다. 이른바 M자 탈모다. 그는 “제가 배우인데 다른 사람이 얼굴을 알아볼까 봐 부담스럽다”라고 말했다. 그는 치료를 받을 별도의 공간을 찾았지만 특별 서비스는 할 수 없었다. 병원에 여유 공간이 있을 리 없기 때문이다. 그에게 “일부러 얼굴을 자세히 보지 않는 한 모자만 써도 잘 모른다”라고 했다.


탈모로 청년 배역 맡기 어려워져

P씨와 이야기를 더 나누었다. 그는 인기 연예인이 아니어서 출연 제의를 가려 받을 입장이 아니다. 그런데 이마가 올라가면서 맡을 수 있는 역할이 줄어들었다고 했다. 얼마 전까진 청년과 장년을 넘나드는 역할을 소화했는데, 탈모가 진행되면서 젊은 배역을 맡기 어렵다고 했다. 가운데 남은 머리카락으로 양 측면을 가리고는 있지만 갈수록 한계에 부딪힌다고 했다. 그가 인기 있는 방송인이면 배역을 골라서 선택할 수 있고, 생각에 따라선 탈모가 강점으로 작용할 수도 있다. 그러나 뜨기 전까지는 준수한 외모를 유지해야만 하는 게 현실이다.

그는 안드로겐형 탈모다. 부계에서 유전된 탈모인자를 보유했다. 안드로겐은 남성 생식계에 영향을 미치는 호르몬의 총칭이다. 안드로겐형 탈모는 모발 성장 조절 물질 DHT(다이하이드로테스토스테론)와 밀접한 관계가 있다. 테스토스테론이 5알파 환원효소와 만나 DHT로 전환된 뒤 모유두(모발을 형성하는 특수하고 작은 세포층) 세포막의 안드로겐 수용체와 결합하면 모발 증식 촉진인자를 감소시킨다. 또는 모근 파괴물질을 분비시켜 모발을 정상보다 빨리 퇴행기로 이행시켜 탈모가 진행된다.

남성이 DHT 영향을 받으면 앞머리와 정수리 사이 부분에서 굵었던 머리카락이 가늘고 여린 모발로 바뀐다. 모발의 성장기가 짧아진 탓이다. 탈모 형태는 앞머리가 M자형으로 파고들어가거나 정수리에서 모발 탈락이 시작하는 두 가지 유형이 있다.

DHT의 양이 많거나, 안드로겐 수용체가 활성화돼 있다면 탈모는 빠르게 진행된다. 만약 DHT의 양이 많더라도 안드로겐 수용체 수가 적거나 활성이 덜 돼 있다면 머리카락이 적게 빠진다. DHT의 양이 적어도 안드로겐 수용체 수가 많거나 활성화돼 있다면 머리카락이 많이 빠진다. 그래서 안드로겐형 탈모 치료의 주된 원리는 DHT를 억제하는 것이다. 이에 좋은 물질은 피나스테리드와 두타스테리드다.

P씨는 피나스테리드를 복용하고, 미녹시딜 성분 약물과 황산화제, 성장인자 치료를 함께해 시너지 효과를 높였다. 탈모 치료엔 최소 6개월 이상 필요한데, M자형 탈모는 시간이 더 걸릴 수 있다. 그도 약 1년간 치료를 받은 뒤 모발이 충분히 회복됐다. 탈모에서 벗어난 것처럼, 오랫동안 무명 배우 생활을 하는 그에게 청룡영화상 남우조연상을 기대해본다.


▒ 홍성재
원광대 의대 졸업, 의학 박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