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경재 단장은 오페라 작품을 100회 넘게 무대에 올린 베테랑 연출가다. / C영상미디어 한정호

“오페라단 운영도 기업 경영 못지않게 효율성이 중요하다. 기획과 캐스팅은 물론 행정적인 부분과 스폰서십 유치, 티켓 판매까지 아우르는 작업이기 때문이다.”

이경재(46)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은 수십여 편의 오페라 작품을 100회 넘게 무대에 올린 국내에서 손꼽히는 오페라 연출가다. 서울대학교에서 성악을, 미국 인디애나 주립대 대학원에서 오페라 연출을 전공했다. 2016년에는 ‘예술의전당 예술대상’ 연출상을 받았다. 그런 그가 지난해 8월 2년 임기의 서울시오페라단 단장에 취임하면서 새로운 도전에 직면했다. 개성 강한 예술가 단원들이 작품마다 최고의 성과를 끌어낼 수 있도록 도와야 하기 때문이다. 연출가 시절과 달리 마케팅과 홍보, 행정 지원 등 무대 밖 역할의 비중이 커졌다. 33년 역사를 자랑하는 공연단의 최고경영자(CEO)인 셈이다.

26~29일에는 단장 취임 이후 첫 대작 오페라인 ‘투란도트(연출 장수동)’를 무대에 올린다. 이 단장을 서울 광화문 세종문화회관에서 인터뷰했다.


중국이 배경으로 등장하는 오페라 ‘투란도트’의 공연 장면. / 트위터 캡처

단장으로서 중점을 두고 있는 부분은.
“사람(단장)이 바뀌었다고 해서 많은 것이 변해야 한다고 생각하지는 않는다. 전임자가 잘한 것은 더 세련되게 살려갈 것이다. 가장 중요하게 생각하는 건 공연을 많이 올리는 것이다. 음식점도 문을 닫는 날이 많으면 손님의 발길이 뜸해질 수밖에 없듯이 공연도 마찬가지다. 이를 통해 더 많은 사람이 오페라를 즐길 수 있도록 하는 것이 목표다.”

세종문화회관 상주단체라는 건 큰 장점인 것 같다.
“그 점을 최대한 살려 나갈 것이다. 대극장과 중극장(M시어터) 그리고 오는 10월 개관 예정인 소극장(S시어터) 등 공연장의 크기와 특색에 맞게 레퍼토리를 구성할 계획이다. 굽이쳐 흐르는 물길이 곧게 흐르려면 많은 시간이 필요하다. 기본적인 틀을 잘 잡아놓으면 후임자가 누가 되더라도 좋은 방향으로 발전을 지속할 수 있을 것이다.”

연출가 시절과 달리 수익에 대한 고민도 해야 하는 것 아닌가.
“외국에서는 예술감독과 경영감독을 분리해 운영하는 경우가 많다. 국내에서는 오랜 세월 통합해 운영해 왔기 때문에 단시간에 바꾸기는 어렵다. 세종문화회관 산하 단체의 지원부서와 전임 단장들을 비롯한 선배들에게 자주 의견을 구하며 배우고 있다.”

개성이 강한 예술가들을 이끄는 게 쉽지 않을 것 같다.
“설득보다 참고 기다리는 게 중요하다. 무작정 기다리는 게 아니라 시간이나 일정한 상황 변화를 목표로 정해놓고 기다린다. 기다림을 통해 나는 단원들의 목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게 되고, 단원들은 스스로가 한 말에 책임감을 갖게 된다. 화를 내거나 감정을 드러내는 건 시간 낭비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포기가 빠르다는 오해를 받기도 했다. 하지만 가능한 것과 그렇지 않은 것의 우선순위를 정하고 그에 따라 일을 추진해 나가는 것이 효율적이다.”

연출가 시절 배우들 간의 의견 충돌이 있으면 어떻게 했나.
“그게 없도록 준비를 철저히 하는 게 연출가의 중요한 역할이다. 그래도 충돌과 갈등의 위험은 곳곳에 도사리고 있다. 연기에 대한 의견 차이가 문제인 경우에는 내 주장을 내세우기보다 작곡가의 의도를 충실히 설명하면 대부분 수긍한다.”

연출에 간섭하고 싶을 때도 있나.
“내가 연출을 맡았을 때 단장이 간섭하려 들면 기분이 썩 좋지 않았다. 꼭 필요한 경우가 아니면 간섭하지 않는다. 게다가 ‘투란도트’ 연출을 맡은 장수동 선생님은 2003년 중국 영화감독 장이머우(張藝謀) 연출로 서울월드컵경기장 무대에 선보인 ‘투란도트’의 한국 측 연출을 맡았을 만큼 대단한 실력자다. 내가 간섭할 게 없다.”

‘투란도트’를 선택한 이유는.
“대극장 작품은 대중성이 중요하다고 생각했다. ‘투란도트’는 몰라도 ‘국민 아리아’로 불리는 ‘네순 도르마(Nessun dorma·공주는 잠 못 이루고)’를 모르는 사람은 거의 없을 것이다. 오페라 팬들은 이미 알고 있는 작품을 보는 걸 좋아한다. ‘투란도트’가 그동안 국내 무대에 많이 올랐지만 서울시오페라단 공연은 이번이 초연이라 특별한 의미가 있다. 보통의 오페라를 올리기에는 지나치게 큰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 맞는, 스케일이 큰 작품이라는 것도 선택 이유다.”

작품 배경이 중국이 아닌 당인리 발전소라는 것이 독특하다.
“스토리와 음악은 살리되 시대상을 반영할 수 있는 작품이 됐으면 좋겠다는 내 바람에 대한 장 선생님의 응답이다. 당인리 발전소(현 서울복합화력발전소)를 모티브로 기계문명이 파괴된 미래의 시공간을 배경으로 했다. ‘당인리’의 ‘당’이 ‘당나라 당(唐)’ 자라 원전의 배경인 중국과도 연결된다. ‘사랑이 사라진 도시에서의 삶이 윤택하거나 아름다울 수 없다’는 구원과 희망의 메시지를 담고 있다. 원전 텍스트와 음악에서 중국적인 색채가 워낙 강해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나도 결과가 궁금하다.”

투란도트 역은 2014 대한민국 오페라대상에서 여자주연상을 받은 소프라노 이화영과 김라희가 번갈아 맡는다. 칼라프 역은 유럽의 유명 오페라극장에서 이름을 알리고 있는 테너 박지응과 런던에서 솔리스트로 활동 중인 테너 한윤석이 맡았다.

중국 오페라의 수준은 어떤가.
“성장세가 무섭다. 1980년대 우리나라를 보는 것 같다. 국제무대에서는 아직 인지도가 낮지만, ‘이런 목소리가 있었나’ 싶을 만큼 놀라운 실력의 성악가들이 나오고 있다. ‘오페라극장’을 표방하는 공연장도 지역마다 많이 생겨나고 있다. 때마침 한국으로 성악을 비롯한 클래식 음악을 공부하러 오는 중국 학생도 늘고 있다. 잘 준비하면 우리에게도 새로운 시장이 열릴 것이다.”


▒ 이경재
서울대 성악과, 인디애나주립대 오페라 연출 석사, 인디애나주립대 오페라극장 상임무대감독