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린왕자 별빛축제’가 열리는 경기도 가평군 쁘띠프랑스의 야경. <사진 : 이우석>
‘어린왕자 별빛축제’가 열리는 경기도 가평군 쁘띠프랑스의 야경. <사진 : 이우석>

올해 설 연휴는 짧다. 대체 휴일을 포함해 나흘이다. 연휴기간 어디 귀성할 곳이 없는 이라면 이 기간을 이용해 짤막한 여행을 떠날 수 있다. 문제는 교통이다. 수도권에서 지방으로 떠날 때 자칫 잘못하면 귀성·귀경 행렬과 섞여, 끔찍한 노정이 될 수 있다.

하지만 아예 방법이 없는 것도 아니다. 전철을 이용하는 방법이다. 기존 경춘선과 1호선을 이용하면 춘천과 아산까지도 거침없이 다녀올 수 있다. 이번 설에는 인천과 춘천의 여행지를 추천한다.

인천 인천은 설 연휴 기간 접근 편의성이 상상 이상이다. 서울을 기준으로 동쪽과 남쪽 대부분이 귀성 행렬로 막히지만, 서쪽에 위치한 인천은 그리 막히지 않는다. 여차하면 인천공항고속도로를 통해 둘러갈 수도 있다. 이런 곳, 연휴 기간 중엔 절대 없다.


근현대사 질곡 간직한 ‘한국의 상하이’ 인천

인천은 근현대사의 많은 이야기를 품고 있다. 월미도의 무서운 바이킹과 디스코팡팡, 전해 들은 노랫말 속 성냥공장 정도가 아니다. 가장 유명한 ‘짜장면의 고향’과 나머지 모든 것이 유기적으로 결합되어 있다. 다시 말해 한국인의 삶 속 꽤 많은 것의 원조가 바로 인천이다.

인천에 왜 수많은 ‘원조’가 있을까. 가장 큰 이유는 바로 인천이 중국 상하이처럼 개항지이자 조계지(租界地)였기 때문이다. 구한말 청과 일본을 비롯해 외국 공동 조계지가 지금의 차이나타운 인근에 들어섰다. 서구문물이 인천을 거쳐 이 땅에 상륙했다.

월미도는 한국 현대사에서 가장 중심이 된 곳이다. 1950년 한국전쟁의 전세(戰勢)를 단박에 뒤집은 ‘인천상륙작전’이 여기서 펼쳐졌다. 상륙지 세 곳 중 하나였던 월미도를 바라볼 수 있는 자유공원에는 맥아더 장군의 당당한 동상이 서 있다. 바다는 간척이 되고 육지로 바뀌었지만 레드, 그린, 블루비치의 상륙지는 현재도 그 자취가 남아있다.

인천시내가 한눈에 내려 보이는 월미공원 정상(108m)을 감싸도는 산책로(2㎞)를 따라 요모조모 구경거리가 많다. 상륙작전 과정에서 월미도에 수천 발의 포탄과 네이팜탄이 날아들었다. 이름 그대로 쑥대밭,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 그 와중에도 살아남은 수목이 있었다. 수령 246살의 ‘평화의 어머니 나무(느티)’를 비롯해 ‘치유의 나무(은행)’ ‘그날을 기억하는 나무(은행)’ ‘영원한 친구 나무(상수리)’ 등 일곱 그루를 찾아보며 그 의미를 되새길 수 있다.

월미공원과 자유공원을 둘러본 후 신포시장을 구경하는 재미가 있다. 현대인들에겐 쫄면과 닭강정으로 유명한 시장이지만, 예전엔 인천에 발을 딛고 사는 왜인들과 청인들이 푸새(채소)며 생필품 등 난전(亂廛)을 벌였던 곳이다.

차이나타운에서의 즐거운 먹거리 투어도 좋지만 아래쪽 일본 거리도 볼 만하다. 목조로 지어진 구일본 우선주식회사 건물은 맛난 커피와 단팥죽을 파는 카페가 됐고, 석조 자연채광의 신식건물이었던 구일본 제일은행 건물은 현재 개항박물관이 됐다.

개항박물관에는 당시 인천에 최초로 놓인 철도와 등대에 대한 기록 등 다양한 신문물을 만날 수 있는데 지금 봐도 경이로울 정도니 옛 선조들이 봤을 때는 과연 어땠을까 상상이 간다.

인천엔 먹거리도 참 많다. 짜장면과 포춘쿠키 등 중국음식은 기본. 그 외에도 물텀벙거리, 화평동 냉면골목, 밴댕이 골목 등 이것저것 찾아 먹을 것이 많다. 특히 냉면을 빼놓을 수 없다. 인천에는 무려 70년 된 평양냉면 명가가 있다. ‘경인면옥’은 1947년 개업해 3대째 이어오는 인천냉면의 원류다. 물론 평양에서 내려온 집이다. 왜 평양냉면이 아니고 인천냉면인가. 이유는 이렇다. 평양에선 겨울에 메밀 틀에 국수를 뽑아 주로 동치미 국물에 말아 먹었다. 꿩이 잡히면 육수를 섞었지만 고기꾸미는 올리기 힘들었다. 하지만 외국 공관이 많았던 인천에는 고기부스러기를 구하기 쉬웠던 터라 냉면에 고깃덩이를 푸짐하게 넣고 육수를 냈다. 그것이 역으로 전국으로 퍼져 현재의 평양냉면이 됐다.


인천 한중문화회관 앞에 있는 차이나타운의 제2패루 인화문.
인천 한중문화회관 앞에 있는 차이나타운의 제2패루 인화문.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 같은 ‘쁘띠프랑스’

가평~춘천 ‘춘천 가는 기차는 내 맘을 싣고’ 김현철이 부른 ‘춘천 가는 기차’다. 누구나 가슴이 설레는 부드러운 감성의 리듬이 여행을 부추긴다. 청춘의 낭만이 서린 지역이다. 이름조차 훈훈한 봄 춘(春)이니 청춘과 어울린다.

차를 타고 간다면 북한강을 따라 물의 여정이 시작되는 가평~춘천 구간이 좋다. 마음을 쉬어갈 수 있는 아름다운 풍경으로 가득하다. 철도 또한 이 길로 났다. 운전대를 놓고 책 한권 챙겨 오손도손 낭만의 열차여행을 떠날 수 있다.

전철이니 중간에 쉬어가기에도 좋다. 주요 역에서 시티투어 버스를 운영한다. 가평역에서 시티투어버스(www.gptour.go.kr)를 이용하면 여러 곳을 다닐 수 있다. 쁘띠프랑스도 쉽게 간다. 아침고요수목원에선 ‘오색별빛 정원전’을 열고 자라섬에선 겨울축제를 열고 있다.

가평역에 내려 프랑스 테마마을이며 ‘작은 유럽’으로 각광받는 쁘띠프랑스에 가면 이색적인 겨울 풍경을 만끽할 수 있다. 쁘띠프랑스를 설립한 한홍섭 회장은 수십년간 도료회사를 경영한 전문가답게 심미안이 대단하다. 수백 번 프랑스 전역을 다녀오며 수집한 프랑스 전통문화 민예품, 미술 회화, 조각 등을 통해 프랑스보다 더 프랑스 같은 곳을 만들어냈다. 전시물만 있는 것이 아니라 공연도 풍성하다. 기뇰과 마리오네트 등 공연이 흥겹다. 실로 조종하는 코믹한 나무 인형이 어른들의 세상을 풍자하며 즐거움을 준다.

현재 ‘어린 왕자 별빛축제’를 열고 있어(2월 말까지) 저녁 8시까지 아름다운 겨울 별빛 아래 동화 속 세상에서 놀다 올 수 있다. 이름도 아름다운 강촌에선 오감 만족 레일바이크와 겨울철 최고 레포츠인 스키(엘리시안 강촌역)를 즐길 수 있다. 춘천의 입구 남산면에 위치한 수목원 제이드 가든은 순백의 겨울 설경을 자랑한다. 이탈리아 투스카니풍 건물과 다양한 식생이 펼쳐진 곳에서 맞는 겨울은 서울의 그것과는 사뭇 다른 느낌이다. 숲에서 흘러나온 청량한 공기는 폐부를 말끔히 씻어내는 기분이다. 경춘선의 종착지 춘천(남춘천역)에선 구봉산 정상의 카페에 앉아 호수를 감상하며 차를 마시는 호사가 기다린다. 닭갈비와 막국수 등 맛난 음식도 빼놓을 수 없다. 상대성 원리랄까. 연휴에는 특히 더 빨리 흐르는 시간을 보낸다. 여행수첩을 뒤적였더니 어느새 추억과 낭만이 아로새겨졌다.


▒ 이우석
성균관대 미술교육학과, 여행기자협회 회장, 14년째 여행·맛집 전문 기자로 활동 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