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기도에서 소규모 병원을 운영하는 김미소 원장은 요즘 들어 아내로부터 “표정관리를 하라”는 잔소리를 자주 듣는다. 올해로 54세가 된 김 원장은 일에 집중할 때 표정이 매우 심각하다. 어떨 때는 심각하다 못해 꼭 화난 사람 같을 때도 있다. 김 원장의 아내는 그런 그의 표정을 볼 때마다 “당신 얼굴에서 돌아가신 아버님의 얼굴이 보인다”며 걱정했다.

김 원장의 아내가 걱정하는 데는 이유가 있다. 김 원장의 아버지는 노인성 우울증을 앓다가 뒤늦게 치매가 발견돼 오랜 기간 중증 치매 치료를 받다가 돌아가셨다. 표정이 굳고 화난  것처럼 보이는 것은 우울증 증세이기도 하지만 파킨슨병의 주요 증상이기도 하다. 파킨슨병은 뇌 신경세포가 파괴돼 근육이 뻣뻣해지는 질환으로, 현재까지도 완치가 어려운 병이다.


신체적 불편 호소하는 환자 많아

노인성 우울증과 치매는 구분이 힘들다. 노인성 우울증은 치매의 원인이기도 하고 치매의 초기 증상이기도 하기 때문에 감별에 주의해야 한다. 노인성 우울증 환자의 절반이 인지력 저하를 호소하며, 치매 환자 10명 중 4명가량이 우울증 증상을 보인다.

일반적으로 우울증 진단은 △기분이 가라앉거나 △새로운 일에 흥미를 느끼지 못하거나 △기운이 없는 증상으로 판단한다. 세 가지 증상 가운데 두 가지 이상이 2주 이상 지속되면 우울증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노인성 우울증 환자는 기분보다는 신체적 불편을 호소하는 경우가 많다. 집중력 저하나 기억력이 떨어지는 것을 불평하는 경향이 있다. 죄책감이 없어지고 통찰력이 떨어진다. 감정은 무뎌져 우울한 기분을 오히려 덜 느낀다.

감정이 무뎌지는 것은 노인성 우울증의 주요 증상이지만, 치매에서 주로 나타나는 증상이기도 하다. 보통 치매가 발병⋅진행되면 감정 기복이 줄어들고 우울한 감정은 대체적으로 사라진다. 하지만 우울증 환자들은 죽고 싶다는 표현을 많이 하고 실제로 자살하는 경우도 많다. 수면 부족을 호소하고 몸이 아프다고 이야기한다.

치매와 노인성 우울증을 구분하기 힘든 또 다른 이유도 있다. 노인성 우울증 환자들은 검사를 힘들어해 성의 없이 대답하는 경향이 있다. 대부분의 질문에 ‘모른다’고 답해 중증 치매로 결과가 잘못 나오는 일이 빈번하다. 기억력이 떨어졌다고 느끼는 것은 노인성 우울증은 물론 치매 초기 증상이다. 기억력 저하는 일반 노인 4명 중 1명이 호소하는 증상이기도 하다.

이 같은 이유에서 노인성 치매가 의심된다면 우울증 치료부터 해 보는 것이 좋다. 그 후에도 환자가 인지력 저하를 계속 호소하면, 그때 혈관성 치매나 초기 치매를 의심해야 한다. 우울증은 남자보다 여자, 혼자 생활하는 사람, 친구나 돌봐줄 가족이 없는 경우, 약물 부작용이 있을 때, 오래 병치레했거나 우울증 병력이 있거나 가족 중에 우울증 환자가 있는 경우에 걸리기 쉽다. 최근에 사랑하는 사람을 잃은 정신적 충격도 우울증의 원인이다.


▒ 김철수
연세대 의대 졸업, 가정의학과 전문의, 경희대 한의학과 졸업,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