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은 미세먼지가 너무 심해서 안 되겠다.” 집 근처 산으로 등산을 가려던 50대 초반의 박모 원장은 날씨를 탓하며 발길을 돌렸다. 26㎡(8평) 남짓한 병원 원장실에서 하루 종일 환자를 보는 것이 일상인 박 원장은 일요일이면 주로 아내의 가사일을 도와주며 지낸다.

실내 체육관에서 매일 운동을 하고 가끔 등산을 가기는 하지만 바깥에 나가 일광욕을 하는 일은 거의 없다. 박 원장은 햇볕에 노출되는 시간이 부족하다고 생각해 비타민 D를 챙겨 먹는다. 박 원장뿐만 아니라 현대를 바쁘게 살아가는 많은 사람들은 자연광에 노출되는 시간이 부족하다.


자연광, 알츠하이머 치매 예방에 도움

햇볕을 매일 적당하게 쬐면 여러 가지 이유로 건강에 좋다. 비타민 D가 충분하게 합성돼 골다공증이 예방되고, 흑색종이라는 악성피부암의 발병이 줄어든다. 밤에는 잠이 들고 낮에 잠이 깨는 일주기 리듬이 강화돼 수면의 질이 좋아지고, 일산화질소의 양을 변화시켜 혈관을 이완시킨다.

자연광은 심지어 치매를 예방해주는 효과도 있다. 비타민 D는 골다공증을 예방할 뿐만 아니라 심혈관질환, 천식, 암, 당뇨, 고혈압 등을 예방하고 칼슘, 철, 마그네슘, 인, 아연과 같은 미네랄의 흡수를 돕는다. 햇볕을 쬐지 못해 비타민 D가 10ng/㎖(나노그램/밀리리터) 이하로 부족한 상태가 지속되면 혈관 치매가 20배 가까이 증가한다는 통계도 있다.

반대로 햇볕을 충분히 받으면 혈관 치매에 걸릴 확률이 줄어든다. 오메가-3 지방산과 비타민 D를 많이 섭취하는 사람들은 뇌에 아밀로이드반(노인반)이 제거되는 것으로 나타났다. 아밀로이드반은 알츠하이머에 걸린 사람의 뇌에 특징적으로 나타나는 물질이다. 비타민 D를 얻는 가장 손쉬운 방법은 햇볕을 쬐는 것이다.

햇볕을 너무 심하게 받으면 비흑색종피부암 발병 확률이 증가한다. 비흑색종피부암 환자에게서 알츠하이머 치매 발병률은 보통 사람의 5분의 1밖에 되지 않는 것으로 나타났다.

이런 결과를 볼 때 충분히 자연광을 쬐고 살면 혈관 치매가 예방되고 알츠하이머 치매 예방에도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낮 동안 자연광을 충분히 받으면 뇌 속의 시각교차상핵이 자극돼 야간 불면이 사라지고 낮시간에 조는 현상도 줄어든다. 반대로 일주기 리듬이 깨져 정상 수면 리듬을 갖지 못하거나 오랫동안 불면으로 고생하면 뇌가 약해지고 치매에 걸리기 쉽다. 밤에 잠을 잘 자지 못하거나 낮에 졸리는 현상, 일몰 증상이 나타나는 등의 수면 주기가 악화되고 기억력이 떨어지기 시작하면 일광욕을 시작해야 한다.

햇볕을 충분히 쬐면 피부와 혈액 속에 일산화질소량을 변화시켜 혈압이 떨어지므로 심장질환이 예방되고 나아가 뇌졸중의 위험을 떨어뜨리기 때문에 혈관 치매가 예방된다.

박 원장이 햇볕을 제대로 받지 못하고 비타민 D를 보충하는 지금의 생활 패턴을 바꾸지 않으면 골다공증은 예방할 수 있을지 몰라도 심혈관질환과 혈관 치매를 비롯한 알츠하이머 치매가 발생할 가능성이 높다.


▒ 김철수
연세대 의대 졸업, 가정의학과 전문의, 경희대 한의학과 졸업, 한의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