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만원 상당의 레만 슬림 화이트 로즈골드 펜을 들고 인터뷰 중인 캐롤 훕셔 까렌다쉬 회장. 사진 C영상미디어 이신영
50만원 상당의 레만 슬림 화이트 로즈골드 펜을 들고 인터뷰 중인 캐롤 훕셔 까렌다쉬 회장. 사진 C영상미디어 이신영

“로봇이 곳곳에 등장하는 4차 산업혁명 시대에 모든 것이 빠르게 변하고 있습니다. 변화와 혁신에 창의력은 필수죠. 학교에서도 아이들에게 창의력을 가르치지 않는 요즘, 까렌다쉬의 필기구 제품들은 창조적 사고방식을 키우는 데 큰 역할을 할 것으로 자신합니다.”

스위스의 고급 필기구, 화방용품, 액세서리 브랜드인 까렌다쉬(Caran d’Ache)의 캐롤 훕셔(Carole Hubscher) 회장은 ‘이코노미조선’과의 인터뷰에서 “저마다 지문이 다른 것처럼 손글씨도 자신만의 것을 창조해내는 일”이라고 강조했다.

훕셔 회장은 “연애편지도 손으로 쓰는 게 훨씬 우아하고 가치 있다”면서 “손글씨를 쓰는 일은 요가처럼 지친 사람을 힐링시키는 측면이 있어 디지털 시대에도 필기구를 찾는 사람은 줄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누가 썼는지 판가름하기 어려운 키보드 타이핑과 달리 손글씨는 내가 쓴 것을 증명한다”고도 했다.

실제로 휴대전화, 노트북, 태블릿PC가 일상화된 시대임에도 필기구 시장은 커지고 있다. 시장조사 기관 RnR 마켓리서치는 필기구 시장이 2015년부터 2019년 사이 연평균 5%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프리미엄 브랜드 및 제품에 대한 선호도가 높아지고 자신만의 맞춤형 필기구에 대한 관심이 늘어날 것으로 봤다. 글로벌 인더스트리 애널리스트(GIA)는 글로벌 문구 시장 규모가 2024년 2340억달러(약 250조원)를 넘어설 것으로 전망했다.

까렌다쉬는 1915년 설립된 제네바 연필 공업사를 아놀드 슈바이처가 1924년 인수하면서 시작됐다. 세계 최초로 수채화 색연필을 만들었다. 까렌다쉬는 가족회사인데 훕셔 회장의 증조부가 슈바이처 창업자의 비즈니스 파트너였다. 그는 증조부, 할아버지, 아버지에 이어 2012년부터 까렌다쉬를 맡았다.


까렌다쉬 849 볼펜. 849는 샤프, 만년필로도 출시되는 까렌다쉬 대표 제품이다. 사진 까렌다쉬
까렌다쉬 849 볼펜. 849는 샤프, 만년필로도 출시되는 까렌다쉬 대표 제품이다. 사진 까렌다쉬

개성 있는, 맞춤형 필기구를 찾는 소비자를 위한 차별화 전략은.
“펜에 이름을 새겨주는 맞춤형 서비스는 기본이다. 영국 명품 브랜드 폴 스미스, 워너 브라더스의 영화 저스티스 리그, 미국 출신 디자이너 알렉산더 지라드와의 컬래버레이션(협업)을 통해 한정판 제품을 선보였는데 반응이 뜨거웠다. 한국에서는 4월 알렉산더 지라드 한정판을 출시하는데, 초도 물량 2000개가 사전 주문으로 완판됐다. 곧 스위스우드 연필도 한정판으로 선보일 예정이다. 이 연필은 나무 향기가 강해 마치 오두막에 있는 느낌을 준다. 지금까지 진행한 컬래버레이션은 모두 유명 브랜드에서 먼저 까렌다쉬에 제안을 해왔다. 그만큼 까렌다쉬를 찾는 유명인이 많다.”

대표적인 까렌다쉬 팬은.
“패션디자이너 샤넬의 칼 라거펠트, 카스텔 바작, 캘빈 클라인과 세계적인 건축가 피터 마리노 등이다. 한국에서는 강경화 외교부 장관이 까렌다쉬 만년필을 애용한다.”

강경화 장관은 인사청문회, 국정감사, 외교통일위원회, 유엔(UN)총회 안보위원회 등에 참석할 때마다 연두색 펜을 손에 들었다. 까렌다쉬의 ‘플루 그린 849’ 제품이다. 이 때문에 국내에서 까렌다쉬는 ‘강경화 만년필’로 불리고 있다.

한국에 첫 플래그십 매장을 열었다.
“브랜드를 알리기 위한 것도 있지만, 매장 카페에서 모든 연령대의 방문객들이 그림을 그리고 글을 쓰며 시간을 보낼 수 있다.”

한국에서는 까렌다쉬 브랜드가 아직 생소한 것 같다.
“까렌다쉬는 수채화 색연필부터 사무용 필기구, 고급 만년필, 전문 화방용품까지 모든 세대를 위한 3500여종의 필기구를 만들고 있다. 저가부터 최고급 상품까지 다 만든다. 특히 제품 디자인, 연구·개발(R&D), 생산을 스위스에서 100% 하고 있다. 연필 하나를 만드는 데도 39단계를 거칠 정도로 품질을 자랑한다. 전 세계 어디에서도 보증기간은 평생이다. 그만큼 자신 있다는 것이다. 친환경적이고 아이들에게도 안전한 제품을 만든다.”

한국에서 만년필은 스위스 몽블랑, 색연필은 독일의 파버카스텔 제품이 널리 알려져 있다. 까렌다쉬만의 차별 포인트는.
“몽블랑은 고급 필기구만 만들지만 까렌다쉬는 어린이, 청년, 기업 임원까지 모든 세대, 모든 제품을 아우른다. 가령 우리는 만년필 펜대를 만드는 데에도 금, 은, 플라스틱, 로듐, 황동 등 다양한 소재를 사용한다. 다만, 거대 그룹에서 운영하는 몽블랑과 달리 까렌다쉬는 가족회사로 운영돼 기본 예산이 달라 오프라인 매장을 내는 속도는 다를 수 있다.”

최근 성장 추이가 궁금하다.
“스위스프랑화 가치가 높은 와중에도 연평균 5%의 매출 성장률을 기록하고 있다. 현재 전 세계 90여개국에 수출돼 판매되고 있으며 단독 브랜드 매장은 전 세계에 23개가 있다. 해외에 진출할 때는 자회사를 두기도 하지만, 현지 상황을 가장 잘 아는 해당국의 파트너를 두는 경우가 많다. 한국에서는 웨이무역과 더리더스앤컴퍼니가 파트너다.”

회장이 된 뒤 까렌다쉬의 가장 큰 변화는.
“개방이다. 이전에 까렌다쉬 임원들은 인터뷰도 전혀 안 하고 소극적이었다. 내가 회장으로 취임한 후에는 소셜미디어를 통한 홍보를 강화하고 온라인 판매 채널도 늘리고 있다.”

4대째 가족경영을 하고 있는데 장단점은.
“가족경영은 장기 비전을 가지고 리스크(위험)를 어느 정도 감수하고 사업을 추진할 수 있는 게 가장 큰 장점이다. 상장사의 경우 분기마다 경영성과 보고서를 만들어야 하니 미래를 단기적으로 바라볼 수밖에 없다. 하지만 가장 큰 위험도 가족이다. 까렌다쉬는 아무리 가족이라도 일반사원처럼 평가받아야 한다는 점을 원칙으로 삼고 있다.”


▒ 캐롤 훕셔(Carole Hubscher)
하버드대 경영전문가 과정(PMD) 이수, 스와치그룹 글로벌 마케팅 매니저, 브랜드스톰 파트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