순둥성 총재는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선전에선 헬스산업부터 항공·우주 산업까지 다양한 분야의 창업과 투자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사진 오광진 특파원
순둥성 총재는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인 선전에선 헬스산업부터 항공·우주 산업까지 다양한 분야의 창업과 투자가 활발하다”고 말했다. 사진 오광진 특파원

‘20여 년간 138개 중국 기업을 10개 국내외 증시에 상장, 연평균 내부수익률(IRR) 40.32%, 운용 펀드 규모 총 2749억위안(약 46조7330억원).’

중국 최대 벤처캐피털 선전창신투자그룹(深圳創新投資集團⋅이하 영문명 선전캐피털그룹)의 1999년 설립 이후 현재까지 성적표다. 2010년에는 한 해 동안 26개 투자기업을 상장시키는 세계 신기록을 세웠다. 선전캐피털그룹이 ‘중국 최대 기업공개(IPO) 제조기’로 불리는 이유다. 연평균 IRR은 국내 최대 벤처캐피털인 한국투자파트너스가 2001년 이후 설립한 10개 펀드에서 올린 평균(18%)의 두 배를 웃돈다. 운용자산도 2017년 말 기준으로 한국투자파트너스(2조164억원)의 두 배가 넘는 261억위안(약 4조4370억원)에 달했다.

선전캐피털그룹은 선전 1호 국유 벤처캐피털이다. 1층 로비에 들어서니 이 그룹이 2020년 완공 목표로 선전 난산구에 짓고 있는 50층 크기 신사옥 모형이 눈에 들어왔다. 선전은 올해로 40주년을 맞은 중국 개혁·개방의 상징이다. 중국 전체 벤처캐피털의 3분의 1이 밀집해 있다. 선전캐피털그룹의 고성장은 그런 선전의 질주를 보여주는 또 하나의 사례다. 순둥성(孫東升) 선전캐피털그룹 총재(CEO)를 만나 최근 선전의 산업 흐름과 선전캐피털그룹의 성장 비결을 들었다.


선전 창업의 새로운 추세는.
선전 창업의 새로운 추세는.

“텐센트와 화웨이가 선전의 간판 첨단 기업이지만 민간 드론으로 세계 시장을 장악한 DJI와 휘어지는 디스플레이를 개발한 로욜, 1인용 비행기구 제트팩 개발 업체 광치, 서비스 로봇 업체 유비테크, 유전자 분석 업체 BGI 등도 요즘 선전을 대표하는 창업 기업이라고 할 수 있다. 선전은 제조업 인프라가 잘 갖춰져 있어 창업할 때 중국 내 다른 지역보다 유리하다. 이 때문에 신흥 산업인 헬스 산업에서부터 항공·우주 산업까지 다양한 분야의 창업과 투자가 활발하다.”

선전에서 혁신 스타트업의 성공이 많은 이유는.
“실패를 관용하는 문화와 이민문화다. 자금을 동원하기가 비교적 쉽고 정부 지원이 잘되는 등의 여러 요인이 있지만 가장 중요한 요인은 창업하는 팀, 그 자체에 있다. 선전에는 이런 팀들이 창업에 실패해도 새로운 방향으로 다시 혁신을 시도할 수 있도록 용인하는 분위기가 있다. 또 각종 문화가 섞여 있고 강한 혁신 의식과 도전을 수용하는 이민문화를 선전에서 볼 수 있다.”

선전에 어떻게 이민문화가 생겼나.
“선전은 40년 전만 해도 작은 어촌에 불과했지만 이제 인구 1500만 명의 신도시로 성장했다. 이들은 모두 전국 각지에서 몰려왔다. 최근에는 해외에서도 온다. 특히 선전 경제특구는 초기에 중앙정부가 많은 지원 정책을 내놓은 개혁 실험지역이었다. 또 선전 시정부가 내륙의 관료화된 지방정부와 달리 시장화된 서비스형 정부를 지향한 것도 많은 젊은이들이 선전을 찾은 이유다.”

선전의 창업투자 시장도 혁신기업 양성에 기여하지 않았나.
“중국의 벤처캐피털 산업은 베이징, 상하이, 선전 3개 축으로 형성돼 있다. 선전에 중국 벤처캐피털의 3분의 1 정도가 모여 있다. 대략 2조~3조위안(약 340조~500조원)의 투자자본이 선전 스타트업의 자금줄이 되고 있다. 중국의 벤처캐피털은 1980년대 베이징에서 시작됐다. 그러나 당시엔 창업투자 환경이 제대로 갖춰지지 않아 대부분 주식투자로 방향을 틀었고, 사라진 곳도 적지 않았다. 1990년대 후반에 새로운 벤처캐피털이 많이 생겨났다. 하지만 투자기업이 상장해도 주식을 매도할 수 없었기 때문에 벤처캐피털들이 암흑 속에서 생존을 모색해야 하는 상황이었다. 그러다 2005년 비유동주 개혁으로 투자환경이 개선됐다.”

선전캐피털그룹의 고성장 비결은.
“설립 당시 대부분의 지방정부에는 보호주의가 있었다. 국유 창투사는 설립 지역 기업에만 투자하라는 식이었다. 하지만 선전시는 중국 전역에 있는 기업에 투자할 수 있도록 했다. 투자기업 가운데 선전 기업이 가장 많지만 30%를 넘지 않는다. 설립할 때 순이익의 8%를 전 직원에게 돌려주고, 2%를 우수팀에 주는 ‘8+2 인센티브 제도’를 도입한 것도 도움이 됐다. 국유기업에서 이런 인센티브를 주는 건 매우 공격적인 방식이다. 당시 중국의 창투사에서는 유일했다. 2016년엔 ‘10+4’로 인센티브제를 강화했다.”

선전 시정부의 역할이 적지 않은 것 같다.
“선전 시정부의 혁신이 선전캐피털그룹은 물론 선전의 경제 발전에 기여하고 있다. 최근 50억위안 규모 엔젤투자 모기금을 만든 게 대표적이다. 엔젤투자펀드에 투자하는 모기금 설립은 중국에서 처음이다.”


▒ 순둥성(孫東升)
일본 오사카대 공학박사, 산둥대 교수 겸 금속재료 연구소장, 선전캐피털그룹 글로벌 본부장, 투자위원회 비서장


Plus Point

선전캐피털그룹
한·중 기업의 가교 역할도

선전캐피털그룹은 한국의 SV인베스트먼트와 함께 한·중 공동펀드를 운용하면서 두 나라 기업의 가교 역할을 하고 있다. 2016년 1월에 결성한 1억달러 규모의 선전 중한산업투자기금이 그것이다. 상하이·선전거래소와 선전캐피털그룹의 설립 멤버인 칸즈둥(闞治東)이 2005년 세운 벤처캐피털 포천링크도 이 펀드의 운용사업자(GP)로 참여하고 있다.

그동안 중국 진출 한국 기업에 275억원, 중국의 유망 벤처기업에 200억원을 투자했다. 순둥성 선전캐피털그룹 총재는 “앞으로 바이오와 엔터테인먼트 등 양국 기업이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에 집중 투자할 예정”이라고 밝혔다.

중국의 벤처캐피털이 해외에 투자하는 사례는 아직 극소수다. 중국 국내에 투자하기도 바쁘기 때문이다. 반면 선전캐피털그룹은 국제화된 일류 종합금융그룹으로 비전을 정하고 국제부서를 별도로 둘 만큼 해외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선전캐피털그룹은 이미 2001년 싱가포르 국부펀드인 테마섹과 함께 공동펀드를 만들어 중국 내 기업뿐 아니라 해외 기업에도 투자하는 국제화 전략을 펴기 시작했다. 선전캐피털그룹은 이스라엘·미국과도 각각 공동펀드를 설립하는 등 점차 투자 지역을 확대하는 중이다. 핀란드와 러시아 등 유럽 기업에 투자할 공동 펀드도 설립했다. 순 총재는 “중국의 일대일로(一帶一路·육해상 실크로드) 건설을 계기로 국제협력에 더 속도를 낼 것”이라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