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외현 전 한겨레 기자·베이징특파원, 전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김외현
전 한겨레 기자·베이징특파원, 전 코인데스크코리아 편집장

장이밍 바이트댄스 창업자는 대학 졸업 이후 여러 기업을 거쳤지만, 실제로는 줄곧 검색 기술이라는 하나의 목표를 놓지 않았다. 여행 상품 검색 서비스 쿠쉰, 트위터 형식의 SNS(소셜미디어) 판포우 그리고 부동산 검색 서비스 주주팡 등 장이밍은 데이터 수집과 검색 기술 역량을 꾸준히 연마했다. 특히 주주팡에서는 모바일 산업의 미래를 확신하게 됐다.

장이밍은 2011년 주주팡 최고경영자(CEO)를 사임한 뒤, 이듬해 초 자신의 능력을 발굴해줬던 투자자 왕충을 찾아가 사업계획을 설명했다. 커피숍에서 왕충을 만난 장이밍은 냅킨에 아이디어의 얼개를 그렸다. 그의 이야기를 곰곰이 경청하던 왕충은 그 자리에서 투자 결정을 내렸다. 훗날 왕충은 “그 냅킨을 어쨌는지는 나도, 장이밍도 기억이 없다. 다만 그건 오늘날 터우탸오(바이트댄스의 뉴스 추천 서비스)의 모습이었다”고 말했다.

이렇게 탄생한 기업이 바로 바이트댄스(쯔제탸오둥)다. 장이밍은 “모바일 인터넷이 확산할수록 개인화된 정보 포털이 필요해진다. 우리는 모바일 인터넷을 위해 태어난 회사다”라고 말했다.

장이밍의 바이트댄스 구상은 기본적으로 스마트폰 이용 정보를 수집해 분석한 뒤 이용자들이 선호할 것으로 판단되는 콘텐츠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지금은 전 세계 많은 서비스가 채택하고 있는 인공지능(AI) 빅데이터 분석 서비스이지만, 장이밍은 그 가능성을 일찍 눈여겨보고 실행에 나선 셈이다.

바이트댄스는 먼저 일종의 ‘유머 게시판 앱’을 여러 개 만들어 동시에 시장에 내놨다. 각각 네티즌의 관심을 받는 웃기는 글 또는 감동적인 글, 사진, 만화, 동영상, 맛집 등을 이용자별로 개인화해서 추천하는 앱이었다. 각각의 앱이 누리던 인기는 그중에서 가장 성공한 네이한똰즈(2012년 3월 서비스 개시)로 수렴됐다.

이어서 2012년 8월 바이트댄스는 ‘진르터우탸오(오늘의 헤드라인이라는 뜻, 터우탸오로 줄여서 쓰임)’를 내놓는다. 터우탸오는 다양한 매체의 기사를 종합해 자연어 분석으로 분류한 뒤 이용자의 취향에 맞는 기사를 추천하는 서비스다. 자체 기사 없이 인위적 편집을 완전히 배제하고 순전히 알고리즘에 의존하므로, 언론사나 포털이 아니라 이용자 본인이 기사의 중요도를 결정하는 방식이라는 게 바이트댄스의 설명이다. ‘당신의 관심사가 바로 헤드라인’이라는 슬로건을 내건 터우탸오는 서비스 개시 3개월 만에 이용자 수가 1000만 명에 이르렀다. 2020년 6월 현재는 월간 활성이용자(MAU) 수가 4억1000만 명에 이르는 규모가 방대한 플랫폼으로 성장했다.

세계적 논란이 된 틱톡(중국명 더우인) 역시 바이트댄스가 위 두 서비스와 똑같은 방식을 도입해 2016년 8월 중국 시장에, 2017년 세계 시장에 각각 내놓은 서비스다. 단, 텍스트가 아니라 3~60초의 짧은 영상 콘텐츠를 분류해 추천해준다는 게 다를 뿐이다. 본사를 실리콘밸리에 세우고, 디즈니 출신의 미국 법인 CEO를 앉히는 등 강한 ‘탈중국’ 성향도 보였다. ‘짧은 동영상에 올인한다’를 모토로 삼은 틱톡은 40개 언어로 서비스되고 있으며, 2021년 1월 현재 월간 활성이용자가 10억 명에 이르는 세계적 서비스가 됐다.

사실 틱톡은 ‘메이드 인 차이나(Made in China)’가 세계 1위를 차지한 드문 사례다. 심지어 위챗 같은 중국 내 주요 서비스는 물론, 유튜브와 페이스북 등 미국발 글로벌 서비스도 틱톡과 유사한 서비스를 선보이고 있다. 중국이 만든 서비스의 글로벌화라는 관점에서 장이밍은 실로 화려한 성과를 만들어낸 것으로 평가된다. 그는 앞서 터우탸오가 성공했던 시절 “구글은 국경이 없는 기업이다. 나는 터우탸오가 구글만큼이나 국경 없는 서비스가 되기를 바란다”고 말한 바 있다. 그는 틱톡에 이르러 이를 실현한 셈이다.

바이트댄스의 성공은 2019년 시사 주간지 ‘타임’이 선정한 ‘가장 영향력 있는 100인’에 장이밍의 이름을 올려놨다. 당시 ‘타임’은 “많은 양적 분석에 근거할 때, 장이밍은 세계 최고의 기업가다. 그는 인상적인 리더다”라고 그를 소개했다.


중국 네 번째 부자가 된 뒤에도 여전히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회사를 활보하는 장이밍은 회사에서 ‘이밍’으로 불린다. 바이트댄스는 구성원 모두가 직함이나 형, 누나 등 호칭을 쓰지 않고 이름을 부르도록 하고 있다. 사진은 2019년 바이트댄스 사무실에 선 장이밍. 사진 블룸버그
중국 네 번째 부자가 된 뒤에도 여전히 청바지에 티셔츠 차림으로 회사를 활보하는 장이밍은 회사에서 ‘이밍’으로 불린다. 바이트댄스는 구성원 모두가 직함이나 형, 누나 등 호칭을 쓰지 않고 이름을 부르도록 하고 있다. 사진은 2019년 바이트댄스 사무실에 선 장이밍. 사진 블룸버그

BAT 뒤이은 중국 IT 산업 2세대

물론 순탄하기만 했던 것은 아니다. 우선, 네이한똰즈는 아이러니하게도 흥행과 성공이 문제가 됐다. 2017년 이용자 수가 2억 명에 이르렀던 네이한똰즈의 이용자들은 자기들끼리 ‘똰여우’라고 부르며 서로만 통하는 은어를 만들어 썼다. 이들은 자기 차량에 ‘네이한똰즈tv’라는 스티커를 붙여 결속력을 과시하기도 했다.

그러던 중 2018년 4월 인터넷 관리 당국이 돌연 네이한똰즈의 콘텐츠 내용이 저속하다면서 서비스 영구 중단을 통보했다. 일각에서는 중국 공산당이 유머 게시판의 정치 조직화를 경계하며 내린 결정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분노한 ‘똰여우’는 전국 곳곳에서 보기 드문 자동차 시위까지 벌였지만 소용없었다. 장이밍은 사과 성명을 내고 서비스를 중단했다.

장이밍이 또 맞닥뜨린 시련은 미국의 전임 트럼프 정부의 압박이었다.

도널드 트럼프 행정부는 바이트댄스에 틱톡 서비스를 미국 기업에 매각하라고 명령했다. 중국 정부가 미국인 틱톡 이용자의 데이터에 접근해 안보상 위험을 초래한다는 이유였다. 실제로 매각되진 않았지만, 마이크로소프트(MS) 등 미국의 어느 기업과 매각 협상이 이뤄지고 있다는 언론 보도가 잇따랐다.

중국에서는 장이밍이 쉽게 두 손 들고 무릎 꿇었다는 매서운 비판이 나왔다. 딸이 캐나다에서 자택 구금되는 등 무역전쟁의 타격을 정면으로 맞은 런정페이 화웨이 회장과 비교하는 시각도 대두됐다. 다만, 미국으로부터 틱톡 매각 압박을 받기 전에, 장이밍은 이미 중국 당국으로부터 판포우와 네이한똰즈 등의 폐쇄를 먼저 경험했다는 부분도 짚어둘 필요가 있다.

장이밍의 등장은 중국 IT 산업이 2세대로 접어들었음을 의미한다. 흔히 중국의 IT 대기업은 1세대 BAT(바이두·알리바바·텐센트)에서 2세대 TMD(터우탸오·메이퇀·디디추싱)로 한 단계 진화했다는 이야기를 한다. 장이밍의 행보가 주목받는 이유다. 다만, 그가 평소 보이고 있는 소탈한 모습은 1세대의 마화텅, 리옌훙 등이 늘 양복 차림으로 등장하고 실제 정치인을 겸한 것과는 차이가 두드러진다. 장이밍은 여전히 티셔츠에 청바지 차림을 즐긴다.

장이밍이 가장 많이 인용하는 말은 “공간에는 형태가 있지만 꿈에는 끝이 없다”이다. 그가 이 말을 처음 본 곳은 베이징의 어느 공사장이었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