콘래드 37의 대표 메뉴 ‘토마호크 스테이크’
콘래드 37의 대표 메뉴 ‘토마호크 스테이크’

대한민국 최고의 로비스트로 불리는 분이 와인을 한잔 하잔다. 평론가를 제외하면 현존 최고의 미식가로 인정받는 그의 초대에 응하지 않을 이는 많지 않다. 어디냐고 물었다. 여의도란다. 엥? 여의도에 그의 격에 맞는 레스토랑이 있었나? 63은 아닐 테고 CCMM? 바람 지나간 지 오랜데…. 그럼 도대체 어디란 말이지? 아주 간단한 문자 메시지가 날아 왔다. ‘콘래드 37.’ 아차차! 콘래드가 있었지. 한국의 맨해튼, 여의도에 자리한 ‘에지’ 있는 호텔. 단숨에 달려갔다. 늘 그렇듯 호텔의 엘리베이터는 안정감을 준다. 35, 36, 37층… 땡. 숨을 크게 몰아쉬고 발을 내딛는다. 호텔의 음식은 비싸다. 그만큼 모든 디테일이 만족스러워야 한다. 정식 명칭은 ‘콘래드 37 그릴 앤 바’. 블랙을 베이스로 한 모던한 분위기가 심박동을 빠르게 한다. 매니저가 기분 좋게 리드한다.


37층, 여의도 야경 즐길 수 있어

기다리고 있는 호스트보다 먼저 내 눈 가득 들어온 건 여의도의 야경. 앉으면서도 시선은 창밖에 꽂혀있다. 여의도 공원과 한강 그리고 멀리 마포가 내려다보이는 그야말로 100만달러짜리 사이트다.

“전 세계 호텔은 거의 다 가봤는데 이만한 야경은 많지 않아.” 와인을 건네며 그가 입을 열었다. 그렇겠다. LG트윈타워의 사장이나 회장실이면 모를까, 이런 장관을 만들어 낼 곳은 여기밖에 없다. 콘래드 37을 자주 찾는 이유는 외국의 VIP들을 모시기에 손색없는 곳이어서란다. 경제인은 물론이고 정치인들도 높은 점수를 줄 만큼 요리도 훌륭하다.

다음 잔을 채울 무렵 콘래드 37의 시그니처 메뉴가 등장했다. 오우 마이 굿! 약간 과장을 하자면 사내의 손에 스쿼시 라켓만한 크기의 스테이크가 들려있다. 주인공은 바로 ‘토마호크(Tomahawk) 스테이크’. 콘래드 37의 주방을 진두지휘하는 데이비드 밋포드(David Mitford) 셰프의 시그니처 메뉴다. 미국 인디언들이 썼던 휴대용 도끼(토마호크) 모양과 같다 하여 이름이 이렇게 붙여졌다. 소의 립 아이(꽃 등심) 부위를 뼈를 제거하지 않은 채 재단해서 요리한다. 그러다 보니 30㎝가 넘는 길이의 갈비뼈가 라켓의 손잡이처럼 붙어있다. 스테이크의 핵심은 육질이기도 하지만 사실 ‘레스팅(resting)’에 있다. 말 그대로 쉬게 하는 거다. 요리가 맛있어지려면 뜸이 중요하다. 그 시간 동안 들쑥날쑥했던 맛과 향, 온도 그리고 간이 제 자리를 잡아간다. 촌스럽게 스테이크를 주문해 놓고 ‘빨리 빨리’를 외치다 보니 만날 피가 질질 흐르는 스테이크를 먹게 되는 안쓰러운 장면이 연출된다.

완벽한 레스팅 타이밍을 맞추기 위해, 먹이를 주시하는 치타처럼 숨을 고르며 와인을 한 모금 마신다. 이윽고 해체쇼가 이어진다. 커다란 뼈를 손잡이 삼아 스테이크를 가른다. 모름지기 스테이크에 자른다는 표현은 어울리지 않는다. 근육 내 지방 분포 등을 면밀히 고려해서 갈라내야 진정한 마니아다. ‘맛있게 드세요’라는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달려들었다. 한 점을 입으로 옮기고 눈을 감는다. 고기의 단면이 혀에 척 달라붙는다. 밀착감이 좋다. 자칫 수분이나 지방이 정상치를 밑돌면 혀에 감기지 않고 겉도는 느낌이 들 때가 있다. 총괄 셰프 데이비드 밋포드는 한 치의 오차도 허용하지 않는다. 얄미울 정도로 치밀하게 계산된 스테이크 설계도에 푹 빠지고 말았다. 국내에서는 처음 선보인 메뉴라 초기에는 벤치마킹하러 오는 레스토랑의 오너와 셰프들이 손님보다 많았단다. 느닷없이 궁금해진다. 왜? 도대체 왜 토마호크를 시그니처 메뉴로 삼았을까?

“함께 나눠 먹는 콘셉트(sharing concept)의 대표 음식을 시작하게 된 여러 이유들이 있습니다만, 그중 가장 기본적인 이유는 ‘사람은 본능적으로 다른 이들과 함께 많은 것을 조금씩 맛보고 싶어 한다’라는 점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한국의 음식문화를 한국인보다 더 사랑하는 데이비드의 철학이 만든 작품이다. 매니저가 다가온다. 표정과 목소리톤이 좋다. ‘요리가 마음에 드냐’고 묻는다. 확신에 차 있지만 겸손한 태도가 마음에 든다. “글로벌 기업의 CEO들과 심지어 해외의 수상들도 데이비드의 음식을 먹으면 친구가 됩니다. 묘한 매력이 있는 모양이에요. 37층의 야경도 한 몫을 하겠지만요.”

중력의 영향을 덜 받아서일까. 몸도 마음도 지상보다 훨씬 가볍게 느껴진다. 다음 메뉴는 ‘랜드 앤 시, 에스페타다 스퀴어(Land and sea, Espetada skewer).’ 프레젠테이션이 설치미술을 연상케 한다. 동그란 고리가 달린 긴 꼬치에 안심, 파프리카, 새우, 관자, 랍스터, 대파가 꿰여 있다. 요녀석을 세워서 동그란 고리를 스탠드에 걸어준다. 공중에 동동 떠 있는 포르투갈식 꼬치요리 밑에는 초리소 볶음밥이 있다.


안심, 랍스터, 관자 꼬치요리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10서울 국제금융 센터
주소 서울시 영등포구 국제금융로 10
서울 국제금융 센터

고기와 해산물에서 흘러내리는 육즙을 담아내 한층 농후한 밥맛을 만들겠다는 셰프의 의도가 느껴진다. 국내에는 거의 알려져 있지 않지만 남유럽을 많이 여행했다면 아주 익숙한 메뉴일 게다. 유명 셰프가 이런 말을 한 적이 있다. 운동화도 튀기면 맛있다고.

이 말에 덧붙이고 싶다. 고무신도 꼬치에 꿰서 그릴에 구우면 맛있어지노라고. 폭신하게 씹히는 안심, 살이 터질 정도로 탱탱한 새우살, 주상절리처럼 부서지는 관자, 두말 하면 입 아픈 랍스터 그리고 짭쪼롬한 볶음밥까지…. 잔재주를 피우지 않아서 더 좋다. 식재료가 가진 특유의 향취를 고스란히 뽑아내는 게 진정한 실력이라 믿는 나로서는 높은 점수를 줄 수밖에 없다.

비즈니스는 설득이다. 설득은 오감으로 하는 거라 배웠다. 눈으로 귀로 입으로 코로 그리고 중력으로 밀어붙이는데 안 넘어갈 상대가 있겠는가! 이게 콘래드 37 그릴 앤 바의 매력이다.


▒ 김유진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MBC 프로덕션 예능제작국 PD, 국립중앙박물관 식음료 총괄 컨설턴트, 신세계백화점 F&B 자문. 저서 <나도 부자될거다>, <장사의 신> 등 집필


2 랜드 앤 시, 에스페타다 스퀴어

추천메뉴

1 토마호크 스테이크
립 아이 스테이크로 크기에 한 번 그리고
맛에 두 번 놀란다

포루투갈 스타일 꼬치 그릴 구이. 랍스터, 관자, 안심의 하모니가 빼어나다

3 서큘런트 시푸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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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샤토브리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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