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년으로 기억한다. ‘드라이 피니쉬’라는 맥주를 론칭하는 온라인 광고의 모델 섭외를 받았다. 소믈리에, 디자이너, 셰프와 함께 맥주를 마시고 평가하는 작품이란다. 거기서 ‘씨네드 쉐프’의 총괄 주방장 유성남을 만났다. 영화를 보며 식사를 즐기는 공간으로 명성을 떨치던 ‘씨네드 쉐프’. 최고의 핫 플레이스로 주목받던 곳의 사령관은 영화배우 버금갈 만큼 외모가 도드라졌다. 첫 만남의 기억은 이게 전부다. 스타 셰프라는 용어조차 없던 시절, 그의 행보는 단연 독보적이었다.

원래는 디자이너 출신이라고 했다. 대기업에서 5년간 근무하다 즐기는 삶을 누리고 싶어 때려치웠단다. 그 뒤 호주로 넘어가 어학연수도 하고 셰프가 되기 위해 요리학교도 다녔다. 부모님의 반대가 심했다. 지원금이 끊겼다. ‘르 코르동 블루 오스트레일리아’는 학비를 감당하기가 어려웠다. 급기야 한국으로 돌아왔지만 요리는 끊을 수 없을 만큼 간절했다. 결국 르 꼬르동 블루 숙명 아카데미에 진학해 학업을 이어갔다. 학비와 생활비를 대기 위해 낮에는 예비 셰프로 밤에는 디자이너로 이중생활을 병행했다. 졸업과 동시에 날개를 달았다. 더 바 도포, 팔레 드 고몽 등을 거쳐 ‘씨네드 쉐프’의 총괄 셰프 자리를 꿰찼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그의 이름은 유명세를 떨쳤다. 이후 대한민국 최고의 클럽, 옥타곤에 스카우트돼 1년 동안 틀을 깬 컨설팅을 만끽했다. 클럽에서 즐기는 최고의 다이닝! 그의 콘셉트는 전 세계 클럽 인기투표에서 7위를 차지하는 기염을 토했다. 이후 중국 대륙의 러브콜이 이어졌다. 한마디로 ‘K FOOD’의 원조격이다. 돈도 벌었겠다 인기도 하늘을 찌르겠다, 이 정도면 자신만의 ‘으리으리한’ 레스토랑을 꿈꿀 만도 한데 그의 생각은 달랐다. 외진 곳에 아지트를 만들고 싶었다. 감각적인 고객들과 편안하게 교감할 수 있는, 그를 닮은 베이스캠프. 그렇게 탄생한 곳이 바로 ‘브루터스’다.


육회 파스타
육회 파스타

꽃등심, 안심, 채끝살을 한 접시에 담은 ‘소고기 모둠 플래터’

테이블 5개의 작은 레스토랑. 소박하다. 하지만 자리에 앉으면 뉴욕 메트로폴리탄 박물관 옆 골목의 와인바로 순간 이동한 듯한 묘한 기분이 든다. 그의 음식은 상당히 편안하다. 일부러 어깨에 힘을 줘 젠 체하지 않는다.

오픈과 동시에 세간의 주목을 받았던 ‘소고기 모둠 플래터’가 간판 메뉴. 한낱 소고기에 이런 근사한 수식어를 붙이냐고 타박할 분들에게 약간의 힌트를 주자면 이 메뉴는 대한민국 소고기 서빙의 역사를 바꿔 놓았다. 팬과 그릴에서 제대로 구운 투 플러스 꽃등심, 안심, 채끝살을 한 접시에 내보였다. 동시에 여러 가지 부위를 먹을 수 있으니 만족도가 배가 된다. 이게 전부가 아니다. 스테이크를 젓가락으로 먹을 수 있는 방식을 최초로 도입했다. 커트러리로 고기 덩어리를 자르던 통념을 무참히 파괴했다. 조리법은 양식인데 플레이팅은 한식이다. 상식을 깼다. 아무도 경박하다 손가락질 못했다. 더 맛있고 더 편했기 때문이다.

개발 동기가 재미있다. 와인 애호가인 단골은 습관적으로 잔의 허리춤을 쥐고 있다. 아로마 때문이다. 애지중지 쥐고 있던 녀석을 한 모금 넘기고 나면 포크와 나이프가 참 거추장스럽게 느껴진다. 이걸 관찰했다. 고객이 폼보다는 편안하게 요리에 접근하게 할 방법은 없을까? 이 작은 차이가 명품을 만들었다. 모두가 ‘젓가락 스테이크’를 궁금해했다. 하루가 멀다 하고 취재가 이어졌다. 아주 작은 배려가 커다란 반향을 가져온 것이다. 묵직한 접시에 담긴 고기에서 은은한 불향이 배어나온다. 젓가락으로 안심을 한 점 들어 입속에 넣었다. 잘려있지만 분명 스테이크가 맞다. 향, 질감, 육즙 어느 것 하나 아쉽지 않다. 찡그렸던 미간이 스르르 풀린다. 나도 모르게 손이 와인잔으로 간다.

다음은 꽃등심. 워낙 익숙한 부위라 엄격한 심사의 잣대를 들이댔다. 코를 대고 킁킁거린 뒤, 혀 위에 올려 표면의 질감과 볼륨감을 측정했다. 맛있다. 속살이 실크처럼 보드랍다. 오래도록 입에 두고 싶은데 그만큼 참을성이 없다. 목구멍으로 쏙 빨려 들어간다. 무방비 상태에서 당하고 말았다. 채끝은 앞의 두 부위에 비해 좀 더 민감하다. 자칫 과하거나 모자라면 혈액 속 헤모글로빈향과 맞닥뜨리게 되는데…. 만만치 않은 녀석이다.

왠지 뽀빠이의 영원한 숙적 브루터스를 많이 닮아있다. 사랑하는 사람을 위해서는 물불 가리지 않는 순정남. 실제로 그는 매일 물 그리고 불과 씨름을 한다. 단골을 위해서다. 그래서일까? 요즘 뜬다는 핫한 기업의 CEO들은 아지트 삼아 하루가 멀다 하고 브루터스의 문턱을 넘나든다.


유성남 브루터스 총괄 주방장은 양질의 해산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간을 하지 않는다. 꽃게, 새우, 조개에서 나오는 육즙만으로 요리를 완성한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양수열>
유성남 브루터스 총괄 주방장은 양질의 해산물을 사용하기 때문에 간을 하지 않는다. 꽃게, 새우, 조개에서 나오는 육즙만으로 요리를 완성한다. <사진 : C영상미디어 양수열>

육회와 올리브오일 파스타가 만난 ‘육회 파스타’

고기도 맛보았으니 어디 파스타를 한번 주문해볼까? 브루터스에는 시그니처 파스타가 있다. 정우성, 신하균, 박수진씨 등도 극찬했다는 바로 그 메뉴, 육회 파스타. 재치가 돋보인다. 먹기도 전에 맛이 그려진다.

엄격히 말하자면 서양식 비프 타르타르 스테이크(육회와 흡사)를 파스타에 토핑한 메뉴다. 네이밍에 대한 감각이 남다른 유성남 대표의 작품인 셈이다. 한번 테스트를 해보시라. 육회 파스타와 타르타르 파스타 중 어느 쪽이 더 호기심이 생기는지.

외식업은 예술이다. 오감을 동원해 고객을 만족시켜야 살아남는다. 암소 한우로 만든 이 파스타가 회자되는 데는 그리 많은 시간이 소요되지 않았다. 플레이팅도 매력적이다.

브루터스는 어른들의 놀이터다. 먹고 마시고 유쾌하게 수다를 떨어도 어색하지 않은 분위기 덕에 오늘 밤도 이곳에 모인 어른들은 얼굴이 발그레하다.

주소 서울특별시 용산구 소월로 38길 30 전화번호 02-749-3830


▒ 김유진
성균관대 신문방송학과, MBC 프로덕션 예능제작국 PD, 주요 저서 <장사의 신>


추천메뉴

소고기 모둠 플래터(9만9000원)
투 플러스 한우 꽃등심, 안심, 살치살 스테이크를 동시에 맛볼 수 있다

소고기보다 돼지(4만원)
로즈마리와 펜넬로 마리네이드한 한돈을 오븐에 구워 앤초비 소스와 곁들여 낸다

브루터스 유기농 샐러드(1만6000원)
계약 재배하는 유기농 채소와 최상급 올리브오일의 만남

파에야(3만5000원)
100% 서해안 알배기 암게와 새우, 홍합, 모시조개로 맛을 낸 샤프란 라이스

육회 파스타(2만5000원)
육회와 올리브오일 파스타의 조화가 흥을 돋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