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던 스피스가 티샷을 치는 모습
조던 스피스가 티샷을 치는 모습

올해 마스터스를 보고 용기를 얻었다는 주말골퍼들이 의외로 많다. 세계 최고의 골퍼가 어이없는 실수를 하는 게 골프의 속성이다. 그렇다면 연습량도 부족한 아마추어 골퍼가 실수하는 것은 당연한 것 아닌가. 실수에 연연해하고 창피하게 생각할 필요 없다는 위안일 것이다. 얼마 전 끝난 시즌 첫 메이저 대회를 미국 오거스타 내셔널 골프클럽 현장에서 취재했다. 오거스타 내셔널은 절경이라는 표현이 어울린다. TV 화면에 멋진 모습이 나오도록 연못에 녹색 물감까지 푼다. 하지만 인간의 실수와 극적인 드라마는 날것 그대로다. 이번 마스터스는 우승자보다도 다 잡은 승리를 놓친 조던 스피스에게 더 많은 조명이 쏟아졌다. 마스터스 사상 네 번째 대회 2연패를 눈앞에 뒀다가 놓친 스피스의 벌겋게 달아오른 볼과 충혈된 눈은 오래도록 기억에 남을 것 같다. 골프가 얼마나 잔인한 운동일 수 있는지 보여줬다. 그런데 답을 하나 갖고 싶었다. 어떻게 하면 잔인한 골프의 속성에서 조금이라도 자신을 지키고 의연하게 대처할 수 있을까? 그 해답을 알면 인생도 좀 더 자기 주도적으로 살 수 있지 않을까.


12번홀서 실수 잇따라… 두 번이나 물에 빠뜨리고 7타

지난해 마스터스에서 최저타 타이기록을 세워 ‘백인 타이거 우즈’로도 불리는 스피스는 155야드 파3 12번홀에서 두 차례나 공을 물에 빠트렸다. 파3홀에서 더블파보다도 한 타 더 친 7타를 기록했다. 첫 번째 샷은 9번 아이언으로 쳤는데 약간 짧았다. 두 번째 물에 빠트린 샷은 80야드 거리에서 드롭하고 친 로브 웨지 샷이었다. 그런데 뒤땅을 쳤다. 정상급 프로골퍼라면 눈 감고도 홀 1m 이내에 붙일 수 있는 거리다.

스피스는 인터뷰에서 그 상황을 자세하게 이야기했다. ‘굿 보이’란 별명대로 분노를 삭일 줄 알고 주변을 불편하게 하지 않으려 애쓰는 청년이다.

그는 우선 12번홀에서 심호흡 한 번 하면서 먼저 몸과 마음의 평정을 지키지 못한 것을 후회했다. 전반 9홀에서 4연속 버디를 잡으며 5타 차 선두를 달리던 그는 10번과 11번홀에서 연속 보기를 했다. 파세이브를 하겠다는 생각은 잘못이 아니었는데 심리적으로 소극적인 샷을 하게 돼 나온 결과라고 했다. 그래서 12번홀에서 자기도 모르게 스윙이 빨라지더라는 것이다. 이야기를 들으며 주말골퍼와 정상급 골퍼가 실력 차이는 크겠지만 생각하는 것은 크게 다르지 않다는 걸 느꼈다.

샷 선택도 잘못됐다고 한다. 그는 드로(draw) 샷을 자연스럽게 치는 골퍼다. 핀 위치가 그린 오른편에 있어 페이드(fade)를 치는 게 좋겠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번 대회 내내 그는 샷 실수가 많았는데 주로 페이드 샷을 의도적으로 치려다 나온 것들이었다. 흔들리는 상태에서 스스로도 믿을 수 없는 샷 방식을 선택한 것이다.

스피스가 내린 결론은 이렇다. “여전히 여유 있는 선두였기 때문에 12번홀에서 심호흡 한 번 하고 제일 잘할 수 있는 플레이를 했어야 했다.”

한덕현(의사-스포츠·심리) 중앙대의대 교수는 확률을 바탕으로 설명했다. “심리적으로 쫓길 땐 평소 가장 실수가 적은 방법을 선택하는 게 맞다. 프로야구 감독들도 대타를 낼 땐 같은 타율이라면 평소 기복이 가장 적은 타자를 선택한다. 그게 성공할 확률이 가장 높기 때문이다.”

2002년 마스터스를 2연패 했던 타이거 우즈는 “모든 상황에 대해 미리 마음속에 그려 놓고 코스에 나선다”며 “승리를 지킬 수 있는 자신만의 길을 갈 수 있어야 한다”고 했다.

한두홀만 잘 버텼으면 벌써 80대 타수를 치거나 싱글을 했을 주말골퍼들이 많다. 그런 상황이 오면 여러분에게 가장 안전한 확률이 무엇인지 미리 생각해 놓자. 스피스가 깨달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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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스터스(Masters) 미 프로골프(PGA) 4대 메이저대회 중 하나로, 우승자에게 그린 재킷이 주어지는 것으로 유명하다. 1934년 시작해 매년 미국 오거스타에서 열린다. 올해 마스터스 그린 재킷의 주인공은 대니 월렛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