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9세까지 장수하며 60년간 재위했던 청나라 건륭제. <사진 : 정지천 제공>
89세까지 장수하며 60년간 재위했던 청나라 건륭제. <사진 : 정지천 제공>

중국의 역대 황제 가운데 가장 장수했던 청나라의 건륭제는 무려 60년이나 황제의 자리에 있으면서 89세까지 살았다. 요즘으로 보면 100세가 훨씬 넘게 장수한 것인데, 중국 역사에서는 기적과 같은 일이라고 한다. 그렇게 장수한 비결은 ‘양생법(養生法)’을 철저하게 실천한 덕으로 볼 수밖에 없다.

첫째, 동정(動靜)의 조화(調和)이다. 건륭은 만주족 출신답게 운동을 매우 좋아했다. 어릴 적부터 말을 타고 활쏘기를 즐겼고 80세의 고령이 되어서도 사냥을 나갔을 정도로 체력단련에 적극 참여했기에 면역력이 증강됐다. 또한 여행을 매우 좋아해 명산대천이나 고찰 등에 많은 족적을 남겼다. 6회에 걸쳐 강남을 순행했기에 건륭이 강남을 다닌 이야기는 모르는 백성들이 없을 정도였다고 한다. 그런데 건륭이 운동하고 돌아다니는 것만 좋아했을까? 만약 그랬다면 89세까지 장수하기가 어렵지 않았나 싶다. 왜냐하면 몸과 마음의 조화가 깨지기 때문이다. 운동과 더불어 독서와 시서화도 즐겼으니 일생에 작문이 1300여 편이 되고 4만여 수의 시를 썼으며 글씨 쓰고 그림 그리기도 즐기며 정신수양을 했다.

이처럼 건륭이 운동과 유람을 많이 하는 한편으로 조용히 실내에서 시서화를 즐긴 것은 한의학적으로 상당한 의미가 있다. 지나치게 많이 움직이거나 운동하는 것은 기(氣)와 혈(血)을 너무 소모시켜 좋지 않고, 그렇다고 너무 가만히 앉거나 누워 지내면 기가 소통되지 않고 맺히게 되며 어혈(瘀血)을 생기게 하므로 조화가 필요한 것이다. 서양의학적으로도 활동이 너무 지나치면 에너지 대사가 너무 많고 그 과정에서 산소를 많이 소모하여 ‘활성산소’가 많이 생성되는데 온갖 성인병을 유발하고 노화를 촉진하는 유해물질이다. 반면 활동이나 운동이 너무 부족하면 신진대사가 느리고 땀과 대소변 배출도 지연돼 각종 노폐물이 쌓이게 된다.

건륭은 신체 활동 면에서 움직임과 고요함이 조화를 이루었기에 장수할 수 있었던 것으로 여겨진다.


시 4만수 쓰며 심신 조화시켜

둘째, 늘 보약을 복용했다. 물론 당대 최고의 명의로 구성된 어의들이 고대로부터 전해 내려온 장수 비방으로 만들어 낸 것이다. 처방 중에는 신장을 보충하는 약이 많은 편인데 특히 유명한 것은 ‘귀령집(龜齡集)’이다. 십장생의 하나인 거북의 장수를 닮고자 이름을 지은 것으로 녹용, 참새 뇌, 해마, 잠자리, 수컷 누에나방, 인삼, 부자, 음양곽, 당귀, 구기자, 숙지황, 국화 등 33종의 보약재가 들어 있다. 명, 청대의 황제가 모두 좋아했는데 따뜻한 성질을 가진 약재가 위주가 되어 신장의 양기가 허약한 경우에 쓰는 처방이다.

셋째, 다양한 음식요법을 실천했다. 신선한 채소를 위주로 했고 육류는 적게 먹었는데 신선한 산짐승 고기를 좋아했다.

피서산장에 갔을 때 주로 먹은 사슴고기는 만주족에게 최고의 음식으로 오장을 보충하고 혈맥을 조절하며 비위장을 보강하고 기와 혈을 도와주며 몸에 양기를 넣어주고 뼈와 근육을 튼튼하게 해 준다. 그리고 각종 약죽을 즐겨 먹었는데, 죽은 노인들의 비위장을 돕는 데 아주 좋다. 특히 아침에 일어나면 바로 ‘연와탕(燕窩湯)’을 먹었는데 이후의 황제들에게도 전통으로 내려왔다. 연와탕은 바다제비집 스프로, 따뜻하지도 차갑지도 않은 중간 성질에 음기를 보충하고 원기와 정을 보태주므로 허약한 몸을 회복시키는 데 탁월하다. 또한 폐에 윤기를 넣어주므로 허약해서 생긴 기침, 폐결핵의 회복에 좋고 소변이 잦은 것을 그치게 한다. 그리고 떡도 즐겨 먹었다. 청나라 황궁에는 8가지 한약재로 만든 팔진고(八珍糕)라는 떡이 내려오는데 건륭은 자신의 몸에 맞도록 몇 가지 약재를 변경해서 만든 ‘건륭팔진고’를 매일 4개씩 먹었다. 이 떡은 비위장을 건실하게 하고 기운을 도우며 신장의 기를 굳건하게 지키는 효과가 있다.

건륭제는 사슴고기를 즐겨 먹었다. <사진 : 조선일보 DB>
건륭제는 사슴고기를 즐겨 먹었다. <사진 : 조선일보 DB>


절제있는 생활 습관

넷째, 매일 술을 즐겨 마셨다. 술은 백약의 으뜸으로 혈을 잘 통하게 하고 위와 장을 따뜻하게 하며 양기를 보양할 뿐만 아니라 바람과 찬 기운을 물리치며 해독작용이 있기 때문이다. 그런데 보통 술이 아니라 한약재로 만든 장수주였는데 ‘귀령주’, ‘송령태평춘주’, ‘옥천주’, ‘도소주’ 등이다. 과음하지 않고 한약재나 곡식으로 담근 술을 적당히 마시면 건강장수에 도움이 된다.

다섯째, 절제를 잘 했다. 좋은 술과 미녀가 가득한 황궁에서 유혹에 넘어가지 않기는 대단히 어려웠으니 술과 여색에 빠져 건강을 해치고 요절한 황제들이 부지기수였다. 그러나 건륭은 취하게 마시지 않았고 여색에 빠지지 않았다. 초인적인 자제력을 실천했던 것이다. 건륭은 어디를 가나 담배를 꼭 피웠다. 한 번 피우기 시작하면 많이 피웠는데 어느 날 기침이 자꾸 나서 어의에게 진찰을 받았다.

어의가 담배 탓이라고 했더니 다시는 담배를 들여오지 말라고 명했는데 얼마 지나지 않아 기침이 멎었다고 한다. 다른 황제들은 대부분 고집이 강해서 자기가 좋아하는 것이면 건강에 좋든 해롭든 상관없이 지속했지만 건륭은 나쁜 습관을 제때 버렸던 것이다. 의사의 말을 잘 듣는 것이 장수에 유리하다.

마지막으로 ‘십상사물(十常四勿)’을 빼놓을 수 없다. ‘십상’은 10가지 동작을 자주 하는 것으로 도인법(導引法), 즉 요즘의 건강체조에 해당되는데 이빨을 서로 부딪치고, 침을 삼키고, 귀를 튕기고, 코를 주무르고, 눈동자를 움직이며, 얼굴을 쓰다듬고, 발의 용천(涌泉) 경혈을 안마하고, 배를 돌리고, 사지를 펴고, 항문을 조이는 것이다. ‘사물’은 해서는 안 되는 4가지로 먹을 때 말하지 않고, 누워서 말하지 않으며, 마실 때 취하지 않고, 색에 열중하지 않는 것이다.


▒ 정지천
동국대 한의과대학 졸업, 한의학박사, 동국대 한의대 한방내과 교수 서울 동국한방병원 병원장, 서울 강남한방병원 병원장 역임


건륭황제(1711~99)의 장수비결
1 동정(動靜)의 조화(調和)를 이루다
2 보약을 자주 복용하다
3 다양한 음식요법을 실천하다
4 한약재로 만든 장수주를 즐겨 마시다
5 술, 담배, 여색 등을 절제하다
6 늘 건강 체조를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