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계도 사람처럼 다이어트를 한다. 슬림한 체형을 만드는 게 쉽지 않은 건 시계도 마찬가지. 그 중에서도 울트라 신(Ultra thin)은 두께가 얇은 시계의 정점이다.

‘얇은 시계’의 기준

두께가 얇은 시계에 대한 호불호는 꽤 갈리는 편이다. 어떤 사람은 우아한 느낌 때문에 좋아하고, 어떤 사람은 남성적이지 않다고 싫어한다. 하지만 드레스 워치 분야에서만큼은 ‘두꺼운 시계’를 꺼리는 것이 일반적이다. 시간 표시 기능만 있는 심플 워치를 기준으로 평범한 시계의 무브먼트 두께는 오토매틱 모델과 핸드와인딩을 막론하고 4㎜내외이며, 시계 두께는 10㎜ 정도다.

현재 울트라 신 무브먼트의 기준은 그 절반 수준인 오토매틱 2.5㎜ 이하, 핸드와인딩 2㎜ 이하로 잡고 있다.

거기에 시계를 구성하는 케이스백, 다이얼, 핸즈, 글라스 등을 더하면 약 5㎜ 정도의 두께가 된다. 투르비용, 미니트 리피터 등의 기능을 더한 컴플리케이션 워치는 10㎜ 이하의 두께라면 매우 얇은 것으로 간주한다.

하지만 울트라 신 컴플리케이션 분야는 브랜드마다 매우 다른 조합으로 기능을 구성하고 있어 정확한 기준이 없다. 다만 울트라 신과 컴플리케이션 모두 하이엔드 메이커의 전유물로 여겨져 온 분야이기 때문에 울트라 신 컴플리케이션 워치의 존재 유무가 브랜드의 역량을 어느 정도 가늠케 한다.

간혹 2.5㎜가 넘는 두께의 무브먼트를 탑재한 심플 워치 중 울트라 신 모델로 시계를 홍보하는 경우가 있는데, 이는 엄밀히 말해 슬림 워치이며 울트라 신 워치로 보지 않는다.


피아제
piaget

울트라 신 워치를 대표하는 브랜드로는 바쉐론 콘스탄틴, 예거 르쿨트르, 피아제가 있다.

세 브랜드는 두께 경쟁을 벌이며 서로 기록을 갈아치우고 있는 중이다. 모두 하이엔드 워치를 생산하는 메이커들이며 다양한 인하우스 무브먼트 라인업을 보유하고 있다. 하지만 울트라 신 워치 분야에 관해서라면 단연 피아제가 챔피언이라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피아제는 브랜드 정체성을 울트라 신으로 봐도 될 만큼 이 분야에 놀라운 집중력을 보이고 있기 때문이다. 다양한 분야에서‘가장 얇은 시계’ 기록을 보유하고 있을 뿐 아니라 발표한 인하우스 무브먼트의 대부분이 울트라 신 또는 슬림에 속한다.

이미 1957년에 두께 2㎜의 핸드와인딩 무브먼트인 9P를 발표했기 때문에 그 역사가 60여년에 이른다. 심지어 1960년에 개발한 오토매틱 무브먼트인 12P의 두께 2.3㎜는 개발 후 50년이 넘도록 깨지지 않은 기록이다. 그 중에서도‘최고’라는 수식어가 아깝지 않은 시계를 하나만 꼽는다면 단연 알티플라노 900P. 2014년에 발표한 알티플라노 900P는 단순히 시계의 두께뿐 아니라 무브먼트의 메커니즘까지 주목할 만큼 역작으로 꼽힌다. 케이스백 안쪽 면을 무브먼트의 메인 플레이트로 삼아 시계가 곧 무브먼트이고, 무브먼트가 곧 시계인 독창적인 설계를 선보였다. 덕분에 시계의 두께는 3.65㎜에 불과하며, 이는 기존의 울트라 신 워치보다 1㎜ 가량 더 얇다. 1㎜차이라는 것이 그리 대수롭지 않게 여겨질 수도 있지만, 울트라 신 분야에서 1㎜는 시계 두께의 약 20% 이상을 차지할 만큼 큰 수치다. 이렇게 재미난 구조 덕분에 기능적으로는 세컨드 핸드마저 생략한 심플 워치지만, 기어 트레인이 다이얼 전면부에 드러나 복잡하고 기계적인 아름다움을 선사한다. 여러 시계 전문 협회와 매체들이 이 시계를‘2014년 최고의 시계’로 선정했을 만큼 완성도가 높으며 이 기록은 상당히 오랜 기간 깨지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바쉐론 콘스탄틴
Vacheron Constantin

최상위 하이엔드 워치 브랜드 중 하나로 꼽히는 바쉐론 콘스탄틴 역시 개발이 어려운 울트라 신 워치 분야에 적극적인 모습을 보여왔다. 패트리모니 미니트 리피터 울트라 신 칼리버 1731 모델은 세상에서 가장 얇은 핸드와인딩 미니트 리피터(소리로 시간을 알려주는 기능)무브먼트 기록을 가진 두께 3.9㎜의 무브먼트 1731을 탑재하고 있다. 컴플리케이션 워치 중에서도 난이도가 높은 미니트 리피터 기능이 있지만 두께가 평범한 심플 워치보다 얇은 8.09㎜에 불과하다. 8시 방향 케이스 옆면에 보이는 방아쇠 모양의 장치가 미니트 리피터를 구동시키는 슬라이드 버튼이다.


예거 르쿨트르
Jaeger LeCoultre

예거 르쿨트르는 세상에서 가장 많은 종류의 인하우스 무브먼트를 보유한 메이커이기 때문에 만들어보지 않은 종류의 무브먼트가 거의 없는 브랜드다. 울트라 신 워치도 1907년부터 제작해왔으며 현재까지 매우 다양한 베리에이션으로 선보이고 있다.

마스터 울트라 신 스켈레트는 2015년에 발표한 모델로 공예적인 면모가 부각된 울트라 신 워치다. 두께가 1.85㎜에 불과한 인하우스 핸드와인딩 무브먼트 849를 스켈레토나이즈화한 849A SQ를 탑재했으며, 인덱스가 위치한 다이얼 바깥 부분을 기요셰 패턴과 에나멜링, 주얼리 세팅 등으로 장식해 4가지 버전으로 선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