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랑스 작가 가운데 국제적으로 가장 많이 언급되는 생존 작가 중에 크리스티앙 볼탄스키(Christian Boltanski·1944~)와 다니엘 뷔렌(Daniel Buren·1938~)이 있다. 각 나라마다 대표적인 작가들이 있는데, 볼탄스키와 뷔렌처럼 예술 경향이 명료하게 대비되는 작가들을 대표적인 작가로 가진 나라는 거의 없다. 볼탄스키의 작품은 음울함 그 자체고, 뷔렌의 최근 작품은 빛의 유희 그 자체다. 이처럼 어두움과 빛의 양극성을 통해 그들은 프랑스의 현대미술을 이끌어 나가고 있으며, 세계 예술계에 영향을 주고 있다.
- 크리스티앙 볼탄스키(작은 사진)의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전시 작품 ‘Chance(운)’
- 크리스티앙 볼탄스키(작은 사진)의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전시 작품 ‘Chance(운)’
“지금 당신이 촬영되고 있다는 사실을 알고 있나요?” 볼탄스키의 아틀리에를 방문해 인터뷰를 시작하기 전, 그가 필자에게 던진 첫 마디다. 그의 설명이 바로 이어진다. 한 번도 져본 적이 없다는 호주 최고의 갬블러인 데이비드 월시(David Walsh)가 볼탄스키가 8년 내에 죽을 것이라며, 내기를 제안해 왔다. 볼탄스키는 자신의 목숨과 관련된 이 내기를 받아들였고, 그의 아틀리에는 중단 없이 촬영되기 시작했다. 볼탄스키가 8년 내에 죽지 않으면 월시는 이 작품(8년간 24시간 동안 아틀리에를 촬영한 영상)에 대한 높은 가격을 지불해야 하고, 반대로 볼탄스키가 죽으면 작품 가격을 지불하지 않아도 된다.

볼탄스키, 8년간 24시간 내내 실시간 촬영 중
“지금 우리들의 모습이 호주의 태즈메이니아 섬의 한 동굴에 실시간으로 상영 및 저장되는데, 당신 모습이 보고 싶으면 나중에 그 섬에 가서 보세요”라며, 볼탄스키는 갬블러처럼 포커페이스를 하고 남의 이야기를 하듯이 덤덤히 말한다. 2010년 1월부터 시작된 이러한 세기의 내기를 알고 있는 사람들은 볼탄스키에 대해 영혼을 판 ‘파우스트 박사’로, 월시는 ‘악마 메피스토펠레스’로 지칭했다. 사실 월시는 유명한 갬블러이기도 하지만, 호주 모나 미술관(MONA·Museum of Old and New Art)의 관장이기도 하다. 월시는 이곳에 죽음과 성(sex)에 관련된 자신의 독특한 컬렉션을 전시하고 있다.

다니엘 뷔렌에게 처음으로 인터뷰를 요청할 때, 그의 아틀리에에서 하자고 했다. 그러자 그는 아틀리에가 없다고 말했다. 당시에는 뷔렌과 같이 국제적인 작가가 아틀리에도 없다는 사실에 놀랐지만 오히려 아틀리에 부재 자체가 그의 작업의 특징을 잘 설명하고 있음을 곧 깨달았다. 근대 작업들이 시공간과 상관없는 ‘ex situ(out of place)’였던 것에 반대하여, 뷔렌은 ‘in situ(in place)’ 작업, 즉 전시 현장의 시공간에 맞추어 작업을 하고 있다. 그래서 뷔렌의 모든 작품의 부제에는 ‘in situ’라고 쓰여 있다. 건축을 하듯이 현장에서 모든 작업을 하는 것이 뷔렌 작품의 특징이다 보니 아틀리에가 없는 것이 오히려 그의 예술철학에 맞는다.

- 다니엘 뷔렌(작은 사진)의 파리 상설전시 작품인 ‘Les Deux Plateaux(두 고원, 일명 ‘뷔렌의 기둥’)’
- 다니엘 뷔렌(작은 사진)의 파리 상설전시 작품인 ‘Les Deux Plateaux(두 고원, 일명 ‘뷔렌의 기둥’)’

모뉴멘타 전시 두 작가의 대비성 보여줘
어두움의 작가 볼탄스키와 빛의 작가 뷔렌을 비교하기에는 모뉴멘타 전시가 가장 적절하다. 프랑스는 매년 세계적인 예술가 한 명을 그랑 팔레(Grand Palais)에서 열리는 ‘모뉴멘타 (Monumenta)’전에 초대한다. 그랑 팔레는 길이 240m, 높이 45m의 건축물로, 1900년 파리만국박람회를 기념해 건립된 파리의 대표적인 건축물 중 하나다. ‘모뉴멘타’전에는 지금까지 안젤름 키퍼(2007·독일), 리처드 세라(2008·미국), 크리스티앙 볼탄스키(2010·프랑스), 아니시 카푸어(2011·영국), 다니엘 뷔렌(2012·프랑스), 카바코프 부부(2014·러시아)가 초대됐다. 이 가운데 프랑스 작가는 볼탄스키와 뷔렌뿐이다.

볼탄스키를 제외한 모든 모뉴멘타 작가들은 파리의 태양 빛이 가장 아름답고 화려한 5월에서 7월 사이에 전시를 했다. 그런데 볼탄스키는 파리의 가장 음울한 때로 기분마저 저절로 나빠지는 한겨울인 1월로 전시기간(1월13일~2월22일)을 잡았다. 관람객들이 집밖으로 나오고 싶지 않고 외국인들의 파리 방문이 적은 때인데도, 자신의 작품 완성도를 위해 그같이 요구했다. 더욱이 이 거대한 그랑 팔레에 일부러 난방도 켜지 않아 더욱 을씨년스러웠다. 그랑 팔레에 들어가면 녹슨 알루미늄 비스킷 상자들을 벽돌처럼 사용한 기억의 벽 혹은 통곡의 벽에 마주친다. 그리고 눈앞에 펼쳐진 수십만 벌의 헌 옷들이 일정한 간격으로 펼쳐져 거대한 집단 공동묘지 같이 배열되었다. 전시장의 또 다른 곳에는 헌 옷들이 작은 언덕처럼 쌓여 있는데, 그 위로 크레인이 내려와 수십 장의 옷들을 임의적으로 집어 끌어올린 후 공중에서 떨어뜨린다. 필연이 아니라 우연으로 점철되는 인생과 공중에서 산화되는 삶이 오버랩되며, 그랑 팔레의 차가운 공기를 더 서늘하게 만들어 버린다. 이러한 볼탄스키의 예술철학은 그의 베니스 비엔날레 프랑스관 전시 제목이었던 ‘Chance(불운과 행운을 모두 포함하는 운(運))’에서 잘 요약된다. 태어남과 죽음도 일종의 ‘운(chance)’이며, 삶이란 인간의 의지로도 어쩔 수 없이 많은 부분이 외부에 의해서 결정된다는 의미다. 이 같은 볼탄스키의 예술철학은 그가 왜 월시의 내기에 응했는지 설명해준다.

2013년 다니엘 뷔렌의 모뉴멘타는 이와 정반대였다. 다소 어둡고 좁은 입구를 통해 전시장에 이르면, 눈앞에 화사하고 거대한 빛의 유희가 펼쳐진다. 그랑 팔레를 가득 채운 377개의 투명한 PVC 원반이 1300여개의 얇은 기둥에 의해 지탱되고 있다. 이 기둥은 뷔렌의 ‘시각적 도구’인 흑백 줄무늬로 되어 있다. 원반은 노란색, 주황색, 빨간색, 초록색 등 4가지 색깔로 이뤄져 스테인드글라스 효과를 내고 있다. 빛의 세기에 따라 전시장 바닥의 색깔이 예민하게 반응한다. 그랑 팔레의 천창을 통해 쏟아지는 햇빛이 강렬할 때는 빛이 원반을 통과하면서 전시장 바닥에 똑같이 강렬한 색깔의 원반을 복사해 붙인다. 해가 구름 사이로 숨으면 전시장 바닥은 미처 마르지 않은 서로 다른 색깔의 수채화 물감이 만나 번진 것처럼 맑고 부드러워진다. 시시각각 변하는 파리 봄빛의 수다스런 변덕이 시각화되어 관람객들의 눈앞에 펼쳐진다. 뷔렌의 작품 아래서 사람들은 마치 야외에 피크닉이라도 온 것처럼 드러누워 음악을 듣기도, 모여 앉아서 토론을 하기도, 혹은 연인들이 얼굴을 맞대고 시간을 잊은 듯 사랑을 속삭인다. 또 다른 곳에서는 아이들이 신나게 뛰어 다닌다. 뷔렌의 작품은 그림자마저도 화려한 빛으로 바꿔 버린다.

예술가들의 다양성 자연스럽게 받아들이는 프랑스
무채색의 음울한 ‘운(chance)’을 재현하는 볼탄스키와 빛의 즐거운 ‘유희(play)’를 발산하는 뷔렌. 많은 관람객들은 이처럼 양극적인 두 예술가를 통해, 양극을 모두 받아들일 수 있는 양의적(兩意的)으로 사는 방법을 습득한다. 프랑스에는 극우도 극좌도 존재하지만, 프랑스인들은 프랑스식 극우와 극좌 양극을 오가며 잘 지내고 있다. 이처럼 다양성을 받아들일 수 있는 나라가 프랑스이고, 그래서 많은 지성인들과 예술가들이 파리로 왔으며, 덕분에 파리는 예술의 도시가 될 수 있었다. 볼탄스키와 뷔렌의 양극적인 예술가 덕분인지 프랑스에는 여전히 이러한 양의적인 현상이 아직까지 잘 유지되고 있다.

 

※ 심은록 감신대 객원교수·미술평론가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철학인문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은 뒤, 2008~11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초청연구원[CNRS-CEIFR(UMR CNRS 8034)]을 지냈다. 현재 프랑스에서 미술비평가 및 예술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나비 왕자의 새벽 작전—오토니엘의 예술세계(ACC프로젝트, 2011)’, ‘내 머릿속의 섬(그림 장 미셀 오토니엘. 재미마주, 2012)’,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가?(아트북스, 2013)’, ‘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현대문학, 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