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들은 해냈다. 그리고 이제 엿 됐다(You made it, and you are fucked).”
미국 몇몇 대중매체에 의해 올해 가장 훌륭하다는 졸업연설의 첫마디로 평가받는 말이다. 바로 영화배우 로버트 드 니로의 연설로 그는 지난 5월22일 뉴욕대(NYU) 예술대 티시(Tisch) 스쿨 졸업식의 연사로 초청 받았다. 이 연설 첫 마디는 졸업식에 참석했던 청중들의 속이 후련할 정도로 통쾌한 웃음을 터트리게 했다. 고상한 말보다는 욕이 먼저 튀어나올 정도로 현재 예술계의 어려운 상황을 정확하고도 속시원하게 표현했기 때문이다. 드 니로는 학생들이 지금까지 힘들게 공부해 졸업하게 됐지만 앞으로는 지금보다 훨씬 더 힘든 문제들에 부딪혀야 함을 자신의 경험에 비추어 설명했다. 그는 이를 열정을 가지고 극복하라며 용기를 주었다.
- ‘해부 탁자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답다’라는 로트레아몽의 시구(詩句)를 재현한 아네스 바르다 감독의 설치 작품.
- ‘해부 탁자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답다’라는 로트레아몽의 시구(詩句)를 재현한 아네스 바르다 감독의 설치 작품.

로버트 드 니로의 연설이 있던 다음 날인 5월23일 프랑스 칸 영화제에서 ‘명예황금종려상 수상자’로 발표된 아네스 바르다는 한 콘퍼런스에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는 상보다는 차라리 내 영화의 재정적 후원을 원한다. 여성 영화 아티스트들은 도움이 필요한 것이 아니라 돈이 필요하다.” 프랑스 여류 감독의 대명사인 바르다와 같은 노감독도 돈의 문제에서 자유롭지 못한 것이다. 아네스 바르다는 명예 황금종려상 수상소감에서 “나는 여성이고 내 영화들로 많은 돈을 벌지는 못했다. 무수한 어려움을 겪었지만 대신 자유라는 커다란 행복을 얻었다”라고 밝히기도 했다. 바르다는 젊은 예술인들에게 수많은 현실 속에서의 실망과 어려움에 ‘저항’하라고 말했다. 아네스 바르다의 이번 수상은 대중성과 상업성에 타협하지 않고, 예술적 이상과 자유를 추구해왔던 ‘저항의 종려상’인 셈이다. 

1. 퐁피두센터에서 개최될 전시 ‘바르다/쿠바(Varda/Cuba 2015.11.11~2016.2.1)’전 중의 한 작품. 2. 아네스 바르다 감독이 직접 ‘해부 탁자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답다! 로트레아몽, 말도로르의 노래’라고 쓴 종이쪽지. 작은 노란 팻말에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져가라’고 쓰여 있다.
1. 퐁피두센터에서 개최될 전시 ‘바르다/쿠바(Varda/Cuba 2015.11.11~2016.2.1)’전 중의 한 작품.
2. 아네스 바르다 감독이 직접 ‘해부 탁자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답다! 로트레아몽, 말도로르의 노래’라고 쓴 종이쪽지. 작은 노란 팻말에는 ‘원하는 사람은 누구나 가져가라’고 쓰여 있다.

실시간 화법 사용한 영화로 주목
‘누벨바그의 대모(代母)’라고 불리는 바르다는 ‘5시부터 7시까지의 클레오’(1962)에서 영화 속의 시간과 상영시간이 거의 일치하는 실시간 화법을 사용하여 프랑스 영화계의 주목을 받았다. 1970년대부터는 페미니스트 운동에 참여하기 시작했고, 다큐멘터리적 영상, 일상과 현실에 대한 관심, 여성문제에 대한 실천적 노력을 보여주었다. 그녀는 영화뿐만 아니라 미술 쪽에서도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바르다 영화의 한 컷 한 컷은 마치 사진 작품과도 같고 그녀의 설치 작품은 영화의 한 장면 같다.

파리의 퐁피두센터에서는 이러한 바르다의 공로에 경의를 표하며 ‘바르다/쿠바’ (Varda/Cuba 2015.11.11~2016.2.1)전을 개최할 예정이다. 필자는 일 년 전 퐁피두센터 바로 옆에 위치한 나탈리 오바댜 갤러리(galerie Nathalie Obadia)에서 아네스 바르다 감독을 만나 인터뷰했다. 첫 눈에 아주 쉽게 그녀를 알아 볼 수 있었다. 그녀는 젊었을 때부터 유지해온 한결같은 바가지 모양의 헤어스타일이었고 한 번 보면 결코 잊을 수 없는  강하고 독특한 인상을 가지고 있었다.

당시 나탈리 오바댜 갤러리에는 바르다의 여러 사진 작품들과 설치 작품이 전시되고 있었다. 갤러리 한 구석에 낡은 벽을 만들어 세운 뒤 이끼를 깔고, 해부탁자 위에는 재봉틀과 우산이 놓여 있었다. 해부탁자는 실험실에서 실험물체와 실험도구와 함께 있어야 어울리고, 우산은 비오는 날 거리에서 장화나 비옷과 함께 어울리며, 재봉틀은 실내에서 의류와 함께 있어야 자연스럽다. 그런데 엉뚱한 세 개의 오브제가 서로 만나고 있다. 이는 외부 혹은 타인과의 만남을 의미한다. ‘타인과의 만남’이란 논리적 사고를 잠시 중단하고 편견과 선입견을 배제한, 예상할 수 없는 만남을 의미한다. 바르다가 평생 동안 시각예술을 통해서 추구하는 것도 바로 이러한 ‘예상할 수 없는 열린 만남’을 우리에게 보여주려는 것이다. 이 설치 작품 옆에는 ‘해부탁자 위에서의 재봉틀과 우산의 우연한 만남처럼 아름답다!’라고 바르다가 친필로 쓴 작은 쪽지가 쌓여 있었다.

- 파리 나탈리 오바댜 갤러리에서 만난 아네스 바르다 감독은 한결같이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다.
- 파리 나탈리 오바댜 갤러리에서 만난 아네스 바르다 감독은 한결같이 독특한 헤어스타일을 유지하고 있었다.

해부탁자·우산·재봉틀, 어울리지 않는 오브제 활용
바르다는 이처럼 외부로 나가 타인과 만나려는 노력을 멈추지 않고 있다. 지난 6월5일 바르다는 프랑스 라디오와의 대담에서 앞으로의 계획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했다. “놀라운 사진작가인 JR과 영화 작업을 할 계획이다. 그는 비록 내 손주뻘이지만 우리는 서로 잘 이해하고 있으며 그도 나처럼 세계를 산책하며 낯선 얼굴들, 사람들을 발견해내는 데 지대한 호기심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바르다의 예술작품을 통해서 JR의 사진작품들 속에서 보아오던 타인의 얼굴들을 만나게 될 것이다.

 그녀는 ‘작가’라는 타이틀과 함께 ‘미술관 역사상 최다관람’이라는 기록을 세우고 있는 중이다.

 

※ 심은록 감신대 객원교수·미술평론가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철학인문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은 뒤, 2008~11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초청연구원[CNRS-CEIFR(UMR CNRS 8034)]을 지냈다. 현재 프랑스에서 미술비평가 및 예술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나비 왕자의 새벽 작전—오토니엘의 예술세계(ACC프로젝트, 2011)’, ‘내 머릿속의 섬(그림 장 미셀 오토니엘. 재미마주, 2012)’,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가?(아트북스, 2013)’, ‘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현대문학, 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