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태양이 나, 젊은 루이를 따른다. 위대한 왕이 나타나자, 별들의 무리가 자취를 감춘다.”
바로크 음악의 장중하고 찬란한 음악이 울려 퍼지는 가운데, 태양의 도래가 선포된다. 창문 밖으로 태양이 떠오르고, 무대 위에서도 태양이 떠오른다. 금빛 찬란한 태양으로 분장한 소년왕 루이14세가 서서히 무대 위로 모습을 드러내자, 별들(귀족들)이 허리를 굽혀 경의를 표한다.
- 장 미셀 오토니엘의 ‘아름다운 댄스’. 분수가 작동될 때의 모습이다.
- 장 미셀 오토니엘의 ‘아름다운 댄스’. 분수가 작동될 때의 모습이다.

당시 열다섯 살의 루이14세는 태양신 아폴론에 걸맞은 눈부신 무대의상을 입고 우아하게 발레를 한다. 이 소년왕의 당당한 몸짓, 날렵한 발짓, 유려한 손짓은 관람객들을 휘어잡는다. 장 밥티스트 륄리의 ‘밤의 발레’의 피날레에서 태양의 역할을 맡아 발레를 하고 있는 루이14세의 모습이다. 그는 타고난 감수성으로 발레 및 모든 예술을 좋아했으며, 최초 발레리나 중의 한 명이기도 하다. 이 공연은 루브르궁의 지척에 있는 쁘띠 부르봉 실(室)에서, 1653년 2월23일 저녁 6시부터 그 다음날 새벽 6시까지 12시간 동안 지속되었다. 새로운 태양이 떠오르는 시각, 태양왕 루이14세가 등장하며 별들을 사라지게 한다. 여기서 별들은 프롱드의 난(1648~53) 등으로 5년여간 루이14세를 괴롭혀온 귀족들을 상징한다. 이때부터 루이14세는 태양왕으로 불리며, 그는 칼과 창을 사용하지 않고도 귀족들의 머리를 숙이게 하는 방법을 배웠다.

루이14세는 세력가 귀족들을 베르사유 궁전으로 불러들여 침소를 제공하고, 최고의 예술과 풍류를 즐기게 했다. 아침에 일어나면서부터 침상에 들 때까지의 모든 에티켓을 왕이 직접 시연하며 귀족들도 따르게 했다. 에티켓을 잘 지켜야 뼛속까지 고상한 귀족인 것처럼 여기게 만들었으며, 예술을 잘 알아야 품위 있는 지성인인 것처럼 그렇게 귀족들을 유연하고 유약하게 만들었다. 예절 바르고 품위 있는 나긋나긋한 신하들을 통치하기는 한결 쉬웠고, 이렇게 루이14세는 절대 권력을 잡았다. 예술은 힘이었다.

루이14세의 발레가 예술이라는 마법에 의해 다시 부활되었다. 바로크 양식의 고색창연한 베르사유 성의 정원에 처음으로 현대조각 작품이 영구 설치됐다. 이 영광의 주인공은 프랑스 조각가 장 미셀 오토니엘이다. 그의 작품 ‘아름다운 댄스’는 루이14세가 좋아한 베르사유 정원 내의 ‘수상연극의 숲’에 설치되었다(2015년 5월11일 오프닝). 이 숲은 ‘왕의 야외살롱’처럼 연극·발레·음악회가 개최되었던 곳이다. 그 후 오랫동안 잊혀져 야외행사 설치물을 저장하는 창고처럼 사용되었다. 2011년 이 숲을 복구하기 위한 콩쿠르가 개최되었고, 약 140팀이 경쟁에 참여했다. 그 중에 조경예술가 루이 베네쉬와 조각가 오토니엘로 구성된 팀이 최종적으로 선정되었다. 르노트르(베르사유 정원기획가)와 르브렁(베르사유궁의 화가)과 같은 제2의 베르사유 콤비가 탄생한 셈이다.

오토니엘은 루이14세의 발레를 재현하기 위해 태양왕 본인에 의해 쓰인 책인 <베르사유의 정원에서 거동하는 법>(1689)을 보면서, 왕이 숲·오솔길·정원에서 산책하고 휴식하는 모습을 연구했다. 그러던 중 루이14세의 영혼이 도운 것일까? 오토니엘의 한 조력자가 아주 우연히 라울-오제르포이에의 책(1701)을 미국 보스턴 도서관에서 발견했다. 이 책은 안무표기법을 발명한 라울-오제르포이에가 루이14세를 위하여 댄스 스텝을 기록한 것이었다. 이 책을 연구하며 오토니엘은 왕의 춤추는 모습을 좀 더 정확하게 알 수 있었다. 그는 춤추는 태양왕의 화려함과 율동의 표현을 극대화하기 위해 분수 내에 작품을 설치했다. 또한 작업하는 내내 르노트르 정원의 완벽한 균형, 17~18세기 바로크 양식의 건축이 지닌 품위 등 전체적인 환경과의 조화도 잊지 않았다.

오토니엘의 작품 ‘아름다운 댄스’는 ‘아폴론의 앙트레(발레극의 서두)’, ‘평화의 리고동(17~18세기 무용)’, ‘아르킬레우스의 부레(무용)’라는 발레극의 이름을 지닌 세 개의 분수로 이루어졌다. ‘아름다운 댄스’는 태양왕 루이14세의 절제적이면서도 유려한 동작을 연상시키는 부드러운 황금빛 선으로 구성됐다. 수백 개의 영롱한 금빛구슬로 엮어진 황금빛 선은 왕이 춤추는 스텝 같고 레이스처럼 하얗게 부서지는 물결은 그 춤의 리듬을 시각화한다. ‘아름다운 댄스’를 바라보며 베르사유 방문자들은 부활한 태양왕과 함께 춤을 춘다.

오토니엘은 자신의 예술을 통해 “아름다운 마법에 걸린 세상을 만들고 싶다”고 말한다. 그는 계산적이고 꿈이 없는 이 시대에 다시금 환상을 꿈꿀 수 있는 세계를 만들 수 있는 마법사가 되고 싶다고 한다. 루브르 박물관의 지척의 지하철 입구로 사용되는 작품 ‘야행자들의 키오스크’(2000)도 바로 이러한 마법의 일환에서 만들어졌다. 오토니엘은 어두운 밤을 지새우며 돌아다니는 야행자들이 따스하고 화려한 빛이 비치는 키오스크에 잠시라도 머물러 꿈을 꾸고 갈 수 있기를 바랐다. 그의 대부분의 작품은 이처럼 환상과 연결되어 있다. 오토니엘의 작품이 처음부터 이처럼 밝고 아름다운 것은 아니었다. 그는 첫 사랑의 깊은 상처로 죽음처럼 끔찍하게 슬프고 괴이한 작품을 오랫동안 만들었다. 이러한 조의(弔意)의 기간을 서서히 벗어나면서 유리 작품이 나오기 시작했다. 오토니엘의 대부분의 유리구슬들은 베네치아의 무라노 섬의 유리 장인들이 숨결을 불어넣은 것이다. 유리 안에 ‘숨’ 혹은 ‘생명’을 집어넣었다. 또한 그의 유리구슬들은 과거의 아픔을 잊지 않으려는 듯이 완벽하지 않은 인간을 상징하는 듯 작은 상처를 지니고 있다. 상처 있는 구슬들, 그러나 ‘숨’을 담고 있는 구슬들로 만들어졌기에 오토니엘의 작품은 애잔하게 밝고 슬플 정도로 환상적이다.

(좌) 파리 아틀리에에서 만난 장 미셀 오토니엘. (우) 밤에 불이 켜진 ‘야행자의 키오스크’. 루브르 박물관 근처인 팔레-루아얄 지하철역 입구이자 설치 작품이다.
(좌) 파리 아틀리에에서 만난 장 미셀 오토니엘.
(우) 밤에 불이 켜진 ‘야행자의 키오스크’. 루브르 박물관 근처인 팔레-루아얄 지하철역 입구이자 설치 작품이다.

 

※ 심은록 감신대 객원교수·미술평론가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철학인문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은 뒤, 2008~11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초청연구원[CNRS-CEIFR(UMR CNRS 8034)]을 지냈다. 현재 프랑스에서 미술비평가 및 예술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나비 왕자의 새벽 작전—오토니엘의 예술세계(ACC프로젝트, 2011)’, ‘내 머릿속의 섬(그림 장 미셀 오토니엘. 재미마주, 2012)’,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가?(아트북스, 2013)’, ‘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현대문학, 2014)’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