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년을 맞을 때나 결혼과 같은 중요한 통과의례를 치를 때마다, 인류의 가장 오래된 습관 중 하나가 ‘점(占)’을 치는 것이다.
동양이든 서양이든 신분의 고하를 막론하고, 유명한 점쟁이를 찾아가거나 재미 삼아 잡지 뒤편에 있는 신년 운세를 보기도 한다. 동양에서 가장 오래된 점복술(占卜術)의 원전이 ‘주역(周易)’이다. 주역은 천지만물이 끊임없이 변하는 가운데 인간사와 엮이며 발생하는 나쁜 운을 피하고 좋은 운을 잡기 위한 일상의 지혜이며 동시에 가장 어려운 우주적인 철학이기도 하다.
(좌),(우) 황루이의 대표작들은 주역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그의 아틀리에에는 주역의 괘가 그려진 우산이 공처럼 뭉쳐져 있는데 금방이라도 굴러다니며 운명을 점칠 것 같다. 베이징 아틀리에와 그의 작품들.
(좌),(우) 황루이의 대표작들은 주역을 주제로 삼고 있다. 그의 아틀리에에는 주역의 괘가 그려진 우산이 공처럼 뭉쳐져 있는데 금방이라도 굴러다니며 운명을 점칠 것 같다. 베이징 아틀리에와 그의 작품들.

- 황루이
- 황루이

이를 예술화하고 현대화하며 또한 어려운 사상을 즐길 수 있는 유희로 만드는 자가 있으니, 바로 중국 예술가 황루이(黃銳·Hwang Rui)다. 또한 그는 베이징의 빼놓을 수 없는 관광 지역인 798예술단지를 설립한 인물이기도 하다.

1952년 베이징에서 태어난 황루이는 문화혁명(1966~1976)을 비롯한 중국의 근현대적 격변기를 모두 겪었다. 그는 1976년 제1차 천안문 사태 때 천안문 광장에서 ‘인민의 추모’라는 자작시를 낭송해서 구금된다. 1979년 중국의 미술체제 밖에 있는 작가들과 함께 중국국립미술관의 철제 담벽에 ‘싱싱미전(星星美展)’을 개최하나, 그 다음 날 ‘전시취소명령’을 받는다. 싱싱미전은 기성의 권위에 대한 도전과 창작의 자유, 민주화를 요구하는 시위 형식의 전시였다.

다음 해 황루이는 제2회 싱싱미전을 개최하는데, 이때 아이웨이웨이, 왕케핑, 마더셩, 왕루옌 등 30여명이 참여하여 기존 문화와 전통을 전복하는 작품을 선보인다.

당시 황루이는 마음껏 자신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는 추상 위주의 평면회화를 주로 그렸다. 여기서 ‘싱싱’은 ‘별들’을 의미하지만, 미술시장의 비싼 작가들인 ‘스타작가’를 말하는 것이 아니었다. 문화혁명 시절에는 오로지 하나의 ‘태양(마오쩌둥)’만 존재했었다. 십년 이상 밤낮없이 떠 있는 강렬한 태양 때문에 중국인들은 시각을 상실했고, 별들은 자취를 감추어야 했다.

별들이 보인다는 것은 절대 권력의 상실인 동시에 개개인이 자신의 빛을 발할 수 있고, 각각 다른 관점을 가질 수 있다는 의미이다. 싱싱미전은 중국 현대미술의 기폭제 역할을 했으나 예술에 대한 정부의 탄압이 가속되면서 많은 멤버들이 중국을 떠나야 했다. 황루이도 1984년 일본으로 떠났지만 베이징을 드나들며 민주적 성향을 가진 인사들을 계속 만났다. 그러자 중국 당국은 1995년부터 5년간 그의 입국을 금지했다.

황루이는 2002년 귀국해 외국 관람객들이 가장 많이 찾는 명소 중의 하나가 된 798단지를  예술 지역으로 만들었다. 중국 베이징의 따산즈(大山子) 예술구는 세계 4대 아트 스페이스 중의 하나로 간주된다. 따산즈 예술구에서도 핵심은 798(七九八) 지역이다. 황루이가 본래 목적했던 바와는 달리 많이 변질되었지만, 그는 이 단지의 설립과 존속을 위해 많이 노력한 사람들 중 한 명이다. 그런데 놀랍게도 그의 아틀리에는 798단지 내에 있지 않았다. 그는 “쫓겨났다”고 말했다. 그의 울분과 저항이 그의 작품 ‘Chai-na(Demolition-here)’에 담겨 있다. 여러 개의 네모 모양의 칸으로 구성된 이 작품에는 중국 건물, 유적지, 철거 장면, 중국인들, 동심 등의 일상적인 풍경이 재현되었다. 그리고 ‘CHINA’ 혹은 ‘折-那’라는 문자가 각 칸의 한 가운데 크게 쓰여져 있다. ‘折-那’의 뜻은 ‘(건물을) 부수다, 철거하다’라는 의미이다. ‘折(chai)-那(na)’는 중국어로 ‘chaina’로 발음돼 국명인 China(중국)과 발음이 같다. 중국을 부순다는 의미로도 해석되는 것이다. 798단지의 상업적 변질, 경제발전과 올림픽을 위한 수많은 철거 작업으로 유적지와 생활터전이 파괴되고, 이로 인한 전통과 정신적 파괴를 의미하는 셈이다. 이는 왕조가 바뀔 때마다 무언가 파괴되고 다시 세워지는 숙명적인 역사의 수레바퀴를 말하기도 한다.

최근 황루이의 대표작들은 주역을 주제로 삼고 있다. 회화, 설치, 조각, 퍼포먼스 등에서 다양하게 재현된다. 그의 아틀리에에는 주역의 괘가 그려진 우산이 공처럼 뭉쳐져 있는데 금방이라도 굴러다니며 운명을 점칠 것 같았다. 그는 30년 동안 주역을 예술적 언어로 재현해 왔다. 주역과 시각예술의 관계를 설명해 달라고 하자 다음과 같이 대답한다.

“주역은 너무나 심오한 학문이기에 끝이 보이지 않는다. 역사는 항상 반복되며 순환한다. 주역은 이러한 변화를 보여주는 탐색과정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떤 상황에 처해 있는지, 이 상황에서는 얼마나 가능성이 있는지, 어떠한 부분에 변화를 줄 수 있는지를 끊임없이 연구하며 발전시켜야 한다. 내 작품도 꾸준히 새로운 변화를 주고, 아틀리에도 계속적인 변화를 도모하고 있다… 주역을 일종의 문자라고 여겨도 좋다. 또한 주역은 시각적인 음양기호로, 그 기호의 조합으로 괘가 만들어진다. 나의 예술을 통해 주역을 시각적으로 좀 더 쉽게 받아들일 수 있게 하려고 지속적으로 노력하고 있다.”

사람들은 그들 앞에 놓인 운명을 알기 위해 점을 친다. 하지만 황루이는 이 운명에 복종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끊임없이 저항하며 운명을 개척하기 위해 역술의 예술을 한다.

오랜 역사 속에서 자신의 운명을 비추어 보며 그의 운명에 순응하기 위해서가 아니라 운명을 바꾸기 위해 주역의 예술을 한다. 황루이는 ‘동양의 까뮈’로 불리기도 한다. 까뮈는 ‘저항한다. 고로 나는 존재한다’는 말을 남겼다. 황루이는 유아독존적 태양에 반대하여 개개의 수많은 별들이 빛을 발할 수 있도록 꾸준히 별들의 ‘전쟁’, 아니 ‘게임’을 하고 있다. 전쟁에서는 과정이 아닌 결과만이 중요하기에, 패자는 물론 승자까지도 지울 수 없는 상처와 파괴를 남긴다. 하지만 게임에서는 과정 그 자체를 즐긴다. 이러한 의미에서 삶은 아무리 고단할지라도 전쟁이 아니라 게임이어야 한다. 그래서 황루이는 주역을 바탕으로 ‘변화의 게임’을 현대적으로 재해석하고 예술적으로 언어화하며 유희하고 있다. 그는 함께 게임을 즐기자고 우리를 그의 예술세계로 초대하고 있다.   


심은록 미술 평론가

프랑스 파리 사회과학고등연구원(EHESS)에서 철학인문과학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동 대학원에서 박사후 과정을 밟은 뒤, 2008~2011년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에서 초청연구원[CNRS-CEIFR(UMR CNRS 8034)]을 지냈다. 현재 프랑스에서 미술비평가 및 예술 전문 기자로 활동하고 있다. 저서로 ‘나비 왕자의 새벽 작전—오토니엘의 예술세계(ACC프로젝트, 2011)’, ‘내 머릿속의 섬(그림 장 미셀 오토니엘. 재미마주, 2012)’, ‘세계에서 가장 비싼 작가 10—무엇이 그들을 그토록 특별하게 만드는가?(아트북스, 2013)’, ‘양의의 예술, 이우환과의 대화 그리고 산책(현대문학, 2014)’ 등이 있다.